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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l 20. 2024

서울시 태국구 치앙마이동

1/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12월인데도 한낮에 내리꽂는 이 뙤약볕은 마치 세비야 같군. 낮고 파란 하늘, 습하지 않은 공기, 매번 버튼을 눌러야 들어오는 신호등은 꼭 밴쿠버 같잖아? 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이 냄새, 고무와 선인장을 묘하게 섞은 듯한, 골목마다 풍기는 마리화나 스멜은 딱 암스테르담 같다. 우유와 설탕을 섞은 홍차, 한쪽 면만 구운 두툼한 토스트, 무단횡단이 차라리 안전한 도로 사정은 또 런던 같단 말이지. 저, 길가에 초롱초롱 걸린 등불들은 얼마 전 갔던 남원 같은데.


뭐가 그렇게 '같다는' 건지, 만난 지 반나절 된 도시에다 경험했던 세상의 이곳저곳을 치덕치덕 갖다 붙이는 중이었다. 10여 년 전 '꽃보다 할배'에서 일섭 할배가 꼭 어디만 가면 '여그는 쩌그 종로 어드메 같네', '여그는 저짝 미사리 어디 같네' 하시던 것을 보고 왜 저러실까 하며 깔깔 웃었었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러실까?

곤충의 더듬이처럼 여행자에게 '경험에서 나오는 촉'이란 게 있다면, 새로운 자극을 마주칠 때마다 지난 기억들을 더듬는 건 적응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니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해두자. 단, 일섭 할배처럼 "그러니까 안 가봐도(먹어봐도/해봐도) 돼야!"만 덧붙이지 않는다면.


안타깝게도 도착 이튿날, 우선 발길 닿는 대로의 한 바퀴를 돌아본 후의 난 "그러니까 안..."을 내뱉기 직전이었다. 현지인 하나 없이 관광객들로 가득 찬 카페 거리와 K팝이 왕왕 울리는 쇼핑몰만의 탓은 아니었다. 치앙마이에서도 예외 없는 '리뷰 이벤트'에 맛집으로 등극한 곳에서 날파리와 겸상하여 먹은 떡진 팟타이 탓도 아니었다. 16박 17일, 부르지도 않은 도시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짊어지고 제 발로 찾아와 마주치는 모든 것과 내외하던 진짜 이유는, 내가 애초에 '이 도시를 경험하리라'는 계획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치앙마이. 관광을 작정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과 같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와보니 그 비유가 참 적절하다 싶다. 우선 ‘동남아’ 하면 떠오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없다. 고개를 젖히면 빌딩 사이사이 산이 보이는 우리나라 여느 거리에서처럼, 치앙마이는 눈 닿는 곳 어디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 소도시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관광으로 흥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있는 사원들을 제외하면 ‘이곳에서 외국인이 반드시 가 봐야 할’ 관광지란 많지 않다. '휴양'으로는 파타야나 끄라비에, '관광'으로는 방콕에 밀린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쿠킹 클래스, 나이트 사파리, 치앙라이나 빠이로 향하는 근교 여행 등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액티비티들을 계획하는데, 그것들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서 경험해 봤다는 이유로 이번 일정에선 고려되지 않았다. 요가, 골프, 마사지, 클럽, 야시장 쇼핑과 같이 한 달 이상 장기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누린다는 일상의 것들은 ‘한국에서도 안 하던 짓’이라는 이유로 굳이 알아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평소에도 식당보다 더 자주 가는 웬 카페 리스트만 구글맵에 잔뜩 찍어가지고 왔으니, 새로울 게 있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오만한 여행자에게도 변명은 있다. 세모눈을 하고 살갗에 닿는 모든 새로움에 익숙한 관등성명을 묻던 첫날,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 '낯설지 않음'을 찾아 이 낯선 곳까지 왔다는 것을. 12월의 끝자락, 한 해 내내 치열함과 상실이 삶에서 2교대 근무하듯 반복된 후였다. 일상에 머물러 있을 힘도, 그렇다고 온전한 새로움에 내던져질 힘도 없었다. 여행을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여행이 처절하게 필요한 상태였다고 할까. 하필이면 크리스마스고, 하필이면 연말연시였지만, 그러니 더더욱 반드시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지독한 외로움에 잠겨 죽을(?) 거라면, 그래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인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이곳에 다시 돌아올 구석이 남아 있을 테니까.



치앙마이는 여러 모로 적당했다. 일단 낯선 장소, 하지만 어딘지 익숙한 풍경과 사람들, 크게 품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을 볼거리와 먹을거리. 싼 물가, 잘 터지는 와이파이, 발 닿는 곳곳에 있는 공유 오피스 등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는 이곳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온 여행자들로 북적일 극성수기 동남아에서도 ‘워케이션’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든 혼자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페인도 끊은 주제에, 웬 카페 리스트만 구글맵에 한가득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안 해본 경험이나 도파민 터지는 액티비티가 아닌, 안정적으로 노트북을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에어컨, 와이파이가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래, 나는 여행자가 아니다. 입술을 한번 꾹 물고, 이때까지 눈치만 보던 캐리어를 연다. 자, 지금부터 아주 단단한 3주를 지내는 거야.


때로는 익숙함이 낯섦보다 멀어지기도 하고, 낯섦이 익숙함보다 더 다정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떠나기 전날 밤, 끝까지 가는 게 맞는가를 되물으며 마지막으로 챙겨 넣었던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4시간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깨달았다. 이 시간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도움 되는',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을까에 대롱대롱 매달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 시간이 어떻게 흐르건, 내게 참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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