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 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bert 이홍규 Nov 14. 2021

[원서 서평] 『편집장의 장례식』, 웨스 앤더슨(編)

<프렌치 디스패치>의 문학적 원동력

[이 글은 영화 관람 전에 책을 읽고 작성되었으며, 영화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원문에 게재된 기사들의 한글 번역본을 찾지 못해 직접 번역하였으니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양해 부탁 드립니다.]


웨스 앤더슨과 더 뉴요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더 뉴요커(이하 '뉴요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잡지 『뉴요커』를 접하게 된 것은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11학년, 즉 15~16살 때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학교의 도서관에서 스케치 드로잉이 그려진 커버와, 『뉴요커』가 게재한 르포르타주, 단편 소설들에 마법처럼 빠져 들었다. 심지어 UC 버클리 대학교에서 40년 동안 수집해왔던 『뉴요커』 컬렉션을 버린다는 소식을 듣자, 600달러를 지불하고 가져왔다는 일화까지 고백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녀 본 입장에서도, 북미 문학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문예지 『뉴요커』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어떠한 인물이었을지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인생의 어떤 때보다 자신을 찾기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어떠한 이미지로 비칠지에 집중하던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집중할 수 있었던 앤더슨 감독이 몹시 부럽게 느껴진다. 웨스 앤더슨 본인은 자신의 창작적 에너지의 기원, 또는 여러 기원 중 하나를 고등학교 시절 접했던 뉴요커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25년 전, 〈바틀 로켓〉(1996)으로 데뷔한 이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까지, 웨스 앤더슨 감독은 감각적인 비주얼과 건조하지만 따뜻한 유머 센스를 조합하고 발전시켜가면서 본인의 이름을 하나의 영화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의 영화에서만 느껴지는 화면 구성과 편집 호흡이 심화되는 그의 후기작들에서는 마치 웨스 앤더슨이 웨스 앤더슨을 패러디하는 듯한 감상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2013년,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SNL)〉에서는, 〈사악한 침입자들의 한밤 중 모임 (Midnight Coterie of Sinister Intruders)〉이라는 제목으로 앤더슨 감독의 개인적 친구이자 그의 페르소나 중 한 명인 오웬 윌슨으로 샘 록웰을 캐스팅해, 앤더슨 감독 특유의 비주얼 감성을 패러디한 호러 영화 예고편을 디지털 쇼트로 공개했는데, 엄청난 센스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Wes Anderson Horror Trailer〉 [출처: YouTube @SNL]


한편, 『우연히, 웨스 앤더슨 (Accidentally Wes Anderson)』이라는 웹사이트는 어떤가. 앤더슨 감독 특유의 프레임 구성과 색 배치를 연상시키는 사진들을 모아 놓은 이 패러디 웹사이트는 결국 출판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Accidentally Wes Anderson』 [출처: Amazon]


물론 이 모든 패러디는 사실 일종의 애정이자, 존경을 담은 헌사라고 여겨진다. 사진 하나만 보아도 생각나는 감독과 작품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가 대중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또한 얼마나 독보적인 미학을 관철시켜오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서 파생되는 패러디는 여러 번 회자되었지만, 그 특유의 영화적 지능, 창작적 감수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논의된 적이 없는 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부분은 앤더슨 감독 본인이 자신의 인생사에 대해 왈가왈부 논하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임이 큰데, 그는 자신의 열 번째 작품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공개하면서 마치 25년간 마음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한 번에 터뜨리듯이 풀어낸다.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20세기 초 가상의 도시 블라제에 자리 잡은 영어 신문사에 일하는 기자들과 그들의 취재 대상을 다룬 4부작 앤솔러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의 공개와 함께 앤더슨 감독은 작품의 영감이 된 『뉴요커』와 기타 문예지의 기사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 『편집장의 장례식 (An Editor's Burial)』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다.


『편집장의 장례식』은 앤더슨 감독과 실제 『뉴요커』의 투고 작가인 수전 모리슨의 대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앤더슨 감독은 〈프렌치 디스패치〉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항상 앤솔러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뉴요커』에 대한 영화 또한 만들고 싶었으며, 마지막으로 프랑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설명한다.


앤설로지, 『뉴요커』, 프랑스. 이 커다란 세 개의 발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제 친구이자 공동 작가인 휴고 기네스가 이야기해오던 '역이민(reverse immigration)' 장르로 진화했습니다. 기네스는 유럽으로 이민 가는 미국인들이 역이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이민이라는 주제가 상당히 재미있는데, 앤더슨과 모리슨은 해외에서 생활하는 경험에 대해 일련의 낯설게 보기, 또는 각성해서 보기가 가능해진다는 의미의 대담을 나눈다.


편하지 않은 곳에 있거나, 타지에 있을 때, 다른 시선을 장착하게 됩니다. 마치 파일럿 라이트가 항상 켜진 상태와 같죠. … 타국에서는 철물점에 들어가는 행위도 박물관 관람처럼 느껴집니다.


『뉴요커』라는 잡지에 익숙지 않은 비영어권 관객, 독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뉴요커』라는 잡지에 약 100년간 실려온 기사와 작품들에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바로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이는 웨스 앤더슨의 작품군에서도 느껴지는 감상이다. 그는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보는 자신의 시선을 영상화한다. 시선만이 바뀌었는데, 일상이 환상으로 변하는 영화적 마술이다.


창작(을 하는 이들을 돕는 작업)을 업으로 삼아서 일수도 있지만, 앤더슨 감독에게 낯설게 보는 훈련을 어린 나이부터 가능하게 했던 『뉴요커』의 삶과 그 역사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 본인이 〈프렌치 디스패치〉를 위한 "거대한 각주(a great big footnote)"라고 했던 이 작품집을 먼저 펼쳤다.


『뉴요커』, 첫 번째 편집장 해럴드 로스

해럴드 로스, 아서 호위츠 주니어(빌 머리), 〈프렌치 디스패치〉(2021) [출처: WNYC, Newsweek]


『편집장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집은 『뉴요커』의 설립자이자, 첫 편집장이었던 해럴드 로스,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 숀에 대한 부고 및, 〈프렌치 디스패치〉의 개별 작품에 영감을 준 기사들을 담고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영화 또한 편집장인 아서 호위츠 주니어(빌 머리)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인하여 폐간을 앞둔 최종호에 실릴 기사들을 다룬 다는 점에서 앤더슨 감독이 두 작품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동일하게 편집하였으며, 감독 본인도 모리슨과의 대담 중 고백하지만 아서 호위츠 주니어라는 인물 자체가 해럴드 로스와 윌리엄 숀에 대한 오마주에 가깝다.


1892년, 콜로라도의 아스펜에서 태어난 로스는 13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주의 대도시 덴버에 살고 있는 친척 아저씨의 집으로 도망가 신문사 덴버포스트에서 첫 언론인의 인생을 시작한다. 25살이 될 때까지 7개의 신문사에서 일을 해왔던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도 프랑스에서 군을 위한 신문을 창간하고, 종전 후에는 귀국해서 뉴욕에 자리를 잡고 참전용사들을 위한 잡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1925년, 불과 30대 초반이었던 로스는 여러 신문사와 잡지사를 전전하다가, 도회적이고 문화와 예술을 위한 전문 잡지를 창간하기로 결정했고 『뉴요커』 1호가 발매된다.


 『더 뉴요커』 창간호 커버 [출처: Wikimedia Commons]


『편집장의 장례식』에 가장 첫 번째로 담긴 로스의 부고 기사를 쓴 제임스 서버가 로스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잡지가 창간된 지 불과 2년 후인 1927년이었다. 서버는 작가가 아닌 편집진으로 『뉴요커』에 합류했으나 로스라는 인간 이상의, 어떠한 캐리커처 같은 인물 아래서 일하는 스트레스 및 타오르는 창작욕으로 인하여 작가진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해 1950년 중반까지 『뉴요커』에 기고해왔다. 때문에 『뉴요커』라는 잡지를 상징하는 모든 창작진, 즉 편집자이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모두 활동했던 서버가 회고하는 해럴드 로스의 인물상은 서버가 쓰는 에세이, 그가 그리는 캐리커처와도 같이 로스와 보냈던 30년간 중 가장 인상적인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삶보다 큰 인물을 그려낸다. 로스는 주니어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함께 일하기 불가능한 상사이자, 작가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듯하다가도, 경외하고, 아끼고, 물 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는 편집장이었다.


그는 그 누구의 머릿속에서 [로스라는] 하나의 완전한 인물상이 그려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줄 몰랐다.

- 「로스와 보낸 여러 해 (The Years with Ross)」, 제임스 서버, 1957


서버가 기억하는 로스는 항상 누군가에게 (아마 로스 본인에게) 쫓기듯, 과거에서 도망치고, 현재에 불만스러워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이 비인간적인 인물상,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존재를 굳이 어떠한 목표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는 경주견을 앞으로 이끄는 기계 토끼를 사냥감이라고 부름과 유사하다. 로스의 머릿속은 항상 정확성과 효율성을 위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을 달성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상상은 즐거운 행위였다.

- 「로스와 보낸 여러 해 (The Years with Ross)」, 제임스 서버, 1957


로스가 사망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영화 프로듀서 가브리엘 파스칼에 대한 프로필 기사의 작가이자, 본인도 극작가로 유명한 S.M. 베어만은 그의 부고를 쓰면서 불안에 가득 차 있고, 예측이 어려운 인물이었다는 미신을 부정한다.


그에게는 하나의 열정이 있었으며, 그 열정이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지배했다. 『뉴요커』의 위대함을 지속하려는 목적이었다. 작품을 창조하고 있는 그 어떠한 작가의 열정도 로스가 자신의 잡지를 완성하기 위해 쏟아부은 열정과 비교하면 색이 바랬다.

- 「해럴드 로스: 추모 (Harold Ross: A Recollection)」, S.M. 베어만, 1966


편집장으로 로스의 위대함은,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문예지를 발행하고 그 수준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로스 본인이 아니라) 잡지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본인의 한계점을 인정했다는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로스 본인은 자신의 교육 수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윤리, 또는 도덕적 의식이 『뉴요커』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하거나, 또는 그를 표현하는 데 있어 (베어만의 해석에 따르면) 한계를 느꼈다.


그는 『뉴요커』가 독자들에게 비추는 윤리 의식을 자체적으로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가장 섬세한 사회의식을 E.B.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키워냈고, 그에게 사회의식에 관련한 잡지의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E.B. 화이트의 사회의식으로 자신의 의식을 대체했다.

- "해럴드 로스: 추모(Harold Ross: A Recollection)」, S.M. 베어만, 1966


베어만에 따르면 『뉴요커』의 윤리의식 자체가 의인화된 인물이자, 『샬롯의 거미줄』, 『스튜어트 리틀』을 집필한 20세기 최고의 동화 작가, 에세이스트 E.B. 화이트 본인은 로스의 부고를 통해 작가를 대하던 편집장 추억한다.


'작가를 귀찮게 하지 말아라'는 로스의 불문율 중 하나였다. 그는 종종 (『뉴요커』의 필진실에) 들어와서 앉아 있고는 했지만, 항상 불편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로스 본인의 머릿속에는 항상 그가 자리를 떠야지 작가들이 실제로 작업을 하리라는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란, 사무실 안에서든 아니면 지구 어디에서든, 특별하게 흥미롭고, 가치 있지만, 부서지기 쉬운 존재였다.

- 「H.W. 로스(H.W. Ross)」, E.B. 화이트, 1951


『편집장의 장례식』은 로스 본인이 생전 직접 집필한 다양한 편지와 오피스 메모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그가 필진에게 쓴 편지들에는 작가를 아끼고, 작가가 쓰는 글을 아끼고, 잡지에 올라가는 단어 하나하나를 아끼던 로스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바쁜 현대의 직장인들을 위해 소설, 칼럼, 에세이 등을 요약해서 출판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의 출판인이자, 그 잡지에 어떤 작품을 실을지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20세기 언론인 중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르던 드윗 월러스는 화이트에게 그의 작품의 요약본을 게재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물론, 화이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뉴요커』 만큼 상극에 위치한 두 개의 잡지가 또 있을까. 1943년, 로스가 제안을 거절한 화이트에게 보냈던 편지는 편집장으로 가지고 있던 『뉴요커』라는 잡지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와 작가의 수호자 로스가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그를 만나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화이트에게:

잠깐 숨이 멈출 듯한 기분이 지나고 나서, 자네가 월러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웃음을 선물해 주었고, 그 웃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네. 자네가 거절 의사를 표시한 편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삶이 어두워 보일 때마다 읽고 있네. 자네의 용기에 대한 내 애정은 끝이 없군. 자네는 출판계 최대의 거물에게 반기를 들었고, 맹세컨데 내가 아는 한 그의 수표를 거절한 작가는 자네가 첫 번째일 걸세.

월러스가 자네의 작가적 가치와 어휘 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에 있어서는 그의 의견은 내 의견을 따라올 수 없으며, 후자에 있어서는,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자네가 불필요한 단어를 쓴 경우를 찾을 수 없었네. 필요하다면 이 사실에 대해서 맹세까지 할 수 있지. 이번 주 자네의 칼럼을 그대로 출판하고, 단 한 단어도 삭제하지 말게. 자네의 글은 '다이제스트(역자 주: 요약되어 소화)' 되면 안 돼. 소화액에 노출되면 안 되고 말고…

로스

- 「『뉴요커』 기록 보관서의 편지들(Letters from The New Yorker Archives)」, 1943

〈프렌치 디스패치〉의 원작에 그려진 인물과 풍경들

《편집장의 장례식》은 로스의 부고문 사이에 〈프렌치 디스패치〉를 구성하는 개별 플롯에 영감을 준 기사들을 엮어 구성하였다.


(左) 조셉 미첼, (右) 사제락 (오웬 윌슨), 〈프렌치 디스패치〉(2021) [출처: The New York Times, Slashfilm]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오웬 윌슨이 연기한 자전거를 탄 기자 사제락은 『뉴요커』의 기자인 조셉 미첼과 뉴욕타임스에 「파리의 이면 (The Other Paris)」를 기고한 작가 루시 상테의 조합적 인물로 그려진다. 앤더슨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조셉 미첼 같은 기자를 언론계에서는 '신발가죽 기자(Shoe-Leather Reporter)'라고 부른다 이야기하는데, 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기보다 자신의 취재의 대상이 되는 환경을 신발가죽이 닳을 때까지 뛰어다니는 기자를 말한다.


본 글에 실린 작품이자 조셉 미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카사블랑카에서 온 32마리 쥐(Thirty-two Rats from Casablanca)」는, 뉴욕의 우아한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렇기에 뉴욕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쥐의 기원과 생태계, 그리고 그들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건조하게 묘사한 글이다. 물론 이 글의 대부분은 뉴욕에 살고 있는 쥐의 생물학적 분석과 그들을 박멸하기 위한 질병국의 노력에 할애되었다. 하지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뉴요커』 특유의 건조한 유머는 해럴드 로스가 목표했던 『뉴요커』라는 잡지의 톤, 낯설게 바라본 현실을 백분 표현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쥐를 볼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쥐를 마주치는 경험은 몹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맨해튼의 어둑한 새벽, 쥐와 마주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쥐가 빙글 돌아 살그머니 도망가면서, 그 발톱이 길바닥을 긁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이후에는 이 괴수가 왜 유다와 배신자의 상징으로 남았는지, 왜 사악한 영혼 자체를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 「카사블랑카에서 온 32마리 쥐(Thirty-two Rats from Casablanca)」, 조셉 미첼, 1944


(左) 조셉 듀빈 공, (右) 줄리안 카다지오(에이드리언 브로디), 〈프렌치 디스패치〉 [출처: Wikimedia Commons, Newsweek]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줄리안 카다지오는 『뉴요커』에서 S.M. 베어만이 기고한 프로필 기사 「듀빈의 나날들 (The Days of Duveen)」의 주인공인 19세기-20세기에 활동한 미술 수집가 조셉 듀빈에 기반한 인물이다. 베어만이 묘사하는 듀빈은 묘하게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미술계에서 듀빈이 휘두른 권력의 원천은 미국을 움직이는 산업시대의 거인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그들이 축적한 부의 너머, 그 이상에 위치함을 주지 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듀빈과 같은 위대한 중개인은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그는 자신의 업계에서 독점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다.

- 「듀빈의 나날들 (The Days of Duveen)」, S.M. 베어만, 1951


그는 수집가들에게 예술을 수집함으로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과 함께 엘리지움에서 걷는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다른 중개인들이 자신의 방법론을 따르게 만듬으로 자신의 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 「듀빈의 나날들 (The Days of Duveen)」, S.M. 베어만, 1951


(左) 메이비스 갤런트, (右) 루신다 크레멘츠(프란시스 맥도먼드), 〈프렌치 디스패치〉 [출처: The Paris Review, Harper's Bazaar]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루신다 크레멘츠는 68 혁명의 시작이었던 1968년 5월 파리의 풍경을 그린 「5월의 사건 (The Events in May)」 집필한 메이비스 갤런트에 기반해 있다. 이방인의 눈에서 5월 혁명의 기폭제가 된 파리 학생 항쟁을 바라본 본 기사는 5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도 정확한 이유와 확장의 의미를 찾기 힘든 68 혁명을 바로 정면에서, 하지만 학생들과는 한 발자국 떨어진 입장에서 바라본 시선을 담고 있다.


지하철, 눈물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생각- 너무 피곤한 것일까, 일이 많아서?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눈물을 훔치고 코를 훌쩍이고 있다. 지하철로 내려온 최루탄 때문이다. 생플라시드 역쯤에 와서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 눈꺼풀 아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하지만 주위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웃긴 나머지 웃기 시작한다.

- 「5월의 사건 (The Events in May)」, 메이비스 갤런트, 1968


자정이 되자 뉴스가 보도된다. 누군가 조그만 자동차를 군중이 모여있는 근처에 주차하고, 차 위에 라디오를 올려두었다. 젊은이들에게만 가능한 순수하고 애처로운 자아도취가 이어진다. 침묵하는 군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들에 대한 뉴스를 듣기 위한 침묵.

- 「5월의 사건 (The Events in May)」, 메이비스 갤런트, 1968


내가 열여섯 살 때, 한 거만한 작가가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뉴욕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모차르트를 들을 거야." 처음 들었던 그때도 몹시 화가 났었다. 지금 다시 기억해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 못할 거라는 의심이 드네요. 그런 의심이 들어요."

- 「5월의 사건 (The Events in May)」, 메이비스 갤런트, 1968


(左) 제임스 볼드윈, (右)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 〈프렌치 디스패치〉 [출처: Wikimedia Commons, Harper's Bazaar]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로벅 라이트는 작가 제임스 볼드윈과 A. J. 리블링의 조합이다. 볼드윈이 기고한 「파리에서 평등 (Equal in Paris)」은 그가 주머니에 한 푼도 없고, 프랑스어라고는 한 단어도 하지 못하던 시절 파리의 낡은 호텔에서 살아가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에 도착한 볼드윈이 프랑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어쩌면 프랑스인이 아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나는 프랑스인들을 아주 오래되고, 지적이며, 문화적인 인종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사실들은 고대의 영광은, 적어도 20세기 중반에는, 현대의 피로감을 야기해, 아주 어쩌면, 편집증으로 이어진다는 순리였고, 지적 능력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한계였으며, 문화적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공식이었다.

- 「파리에서 평등 (Equal in Paris)」, 제임스 볼드윈, 1955


파리에서 또 다른 뉴욕 출신의 여행자를 만난 볼드윈은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 대해 토로하는 불평을 듣고 자신의 숙박지로 초대한다. 여행자는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깨끗한 베드시트를 가져왔고, 볼드윈은 아무리 더러워져도 교체가 되지 않던 베드시트를 벗겨내고 여행자의 선물로 대체한다. 하지만 며칠 후, 정확히 말하면 12월 19일, 두 명의 경찰관이 볼드윈과 여행자의 방에 들이닥치고, 볼드윈은 그 베드시트의 실종이 절도 신고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범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이 해프닝에 대해 볼드윈은 감옥으로 끌려가면서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볼드윈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이는 프랑스인들의 관료주의를 과소평가한 죄가 아니었을까.


파리에서는 모든 일이 몹시 느리다. 또한,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드는 순간, 당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당신이 대화를 해야만 하는 이가 아니다. 당신이 대화를 해야만 하는 이는 잠깐 벨기에에 가 있거나, 가족에게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거나, 아니면 배우자가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막 나간 참이다. 그는 아마 다음 주 화요일 세시쯤, 또는 오늘 오후 언젠가, 어쩌면 내일, 아니, 5분 안에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5분 안에 돌아온다면 오늘 당신을 보기에는 너무 일이 산처럼 쌓여있는 상황이다.

- 「파리에서 평등 (Equal in Paris)」, 제임스 볼드윈, 1955


볼드윈이 이방인의 눈으로 1주간 경험한 프랑스의 감옥 생활은 몹시 당연하게도, 허무한 클라이맥스로 끝나게 된다. 그렇지만 볼드윈 본인에게는 허무한 경험이 아니었다.


12월 27일, 나는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우리에 대한 고소는 기각되었다. 베드 시트에 관한 진실이 재판장에서 진술되자, 모든 참관인들에게 큰 웃음을 이끌어냈고, 이에 내 미국인 친구는 프랑스인들이 '좋은 이들'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할 이 즐거운 상황이 닥치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 웃음은 내가 고향에서 자주 듣던 웃음을,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웃음을 상기시켰다. 이 웃음은 인간사의 추한 면에서 안전하게 동떨어져 있는 이들을 위한, 생존이라는 단어가 환영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웃음이었다. 나는 이 웃음을 고향에서 너무 자주 들었기에 이 웃음이 들려오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깊고, 깜깜하며,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에서, 내 삶은 그 파리에서의 첫 해에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웃음은 보편적이며, 절대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말이다.

- 「파리에서 평등 (Equal in Paris)」, 제임스 볼드윈, 1955

기자의 의무, 독자의 의무

뉴욕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던 시절, 『뉴요커』는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에게 캐논이자 바이블과도 같았다. 듀빈이 미국의 재벌과 상류층에 예술적 엘리지움을 경험시켰듯이, 해럴드 로스는 영미권 언론인 전체를 위해 문학적 엘리지움을 지상에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시절 교수와 학생들은 『뉴요커』에서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인간의 기후 (Climate of Man)」 3부작을 읽고 마치 우리의 의견이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토론하거나, 시모어 허쉬의 「아부 가립의 고문 (Torture at Abu Gharib)」을 읽고 유전자 수준으로 각인된 9/11에 대한 공포와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는 했다.


이 서평의 마침표는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추억팔이가 아니다.


앤더슨 감독이 모아놓은 『뉴요커』의 기사들에는 낯설게 보기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행간에는 언론의 정수에 대한 질문과 감독의 답변이 스며들어있다. 기사 하나를 쓰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고, 인류의 삶을 정서적으로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피와 땀을 잉크 삼아 단어 하나하나를 쓰던 편집자와 기자들이 있었다. 일상(日常)에서 이상(理想)을, 일상(日常)에서 이상(異常)을, 일상(一常)에서 이상(二常)을 찾던 이들이 있었다. 기사를 읽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리던 그들의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눈물을 쏟고, 가슴이 벅차올라 교실로, 카페로 달려 나가 친구들과 밤을 새워서 토론하던 독자들이 있었다.


지금 내 글은 피로 쓰이고 있는가. 나는 눈이 충혈되도록 글을 읽고 있는가. 눈과 귀가 즐겁지만 인간성을 느끼기 어려웠던 앤더슨 감독의 작품의 원동력이 된 『편집장의 장례식』에서 언론의 기능과 의무에 대한 진심을 읽고 무척 기분좋게 착잡해졌다.


(끝)


참고문헌

Morrison, S. (2021, September 5). How Wes Anderson Turned The New Yorker Into “The French Dispatch.” 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new-yorker-interview/how-wes-anderson-turned-the-new-yorker-into-the-french-dispatch

Remnick, D. (2021, September 17). Wes Anderson and Jeffrey Wright on “The French Dispatch.” The New Yorker. https://www.newyorker.com/podcast/the-new-yorker-radio-hour/french-dispatch-movie-wes-anderson-jeffrey-wright-interview


《An Editor's Burial》(2021), Wes Anderson (Ed.), David Brendel (Ed.)

https://www.goodreads.com/book/show/52028295-an-editor-s-buria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