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했다. ‘편하지가 않아.’
올해가 끝나가는데 나는 그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 다가가려 하면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게서 더욱더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힘 빠지는 만남과 헤어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친구들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시간과 거리상)의 문제이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맞는 말 같았지만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말들: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 생각을 해봐야겠다느니, 우리는 가치관이 다르다느니, 만나도 편하지 않다느니의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의 성향은 보통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내가 이상한 걸까?’ 물었다. 언니는 단번에 ‘응. 너 좀 이상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네가 좀 어려울 수 있어. 생각하는 것도 특이하고 취향도 독특해.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게 점점 확고해지고 심해지는 거 같아. 내 생각엔 보통 일반적인 남자들이라면 부담스러울 거 같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언어를 통해, 그동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내가 연애에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비로소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었다.(물론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나는 시간이 가며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뚜렷해지고, 그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나의 모습이 타인의 눈엔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니. 언니가 병처럼 심해진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언니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나' 그리고 모든 '그'를 떠올려보았다. 나와 그는 좋아하는 음악, 영화 취향은 판이하게 달랐으며 취미가 같던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독립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데이트를 할 때면 항상 팝콘과 콜라를 사고 액션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물론 성격도, 생각하는 방식도,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도 하나같이 다 달랐다. 얼마 전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동성애에 대한 격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왜 성별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난 동성애 찬성이라는 말만 툭 내뱉고는 다른 이야기로 어물쩍 넘어갔다.
아마 나는 나만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의 모든 다름은 ‘극복가능'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맞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지. 박원이 애타게 부르던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를 그렇게나 무한 반복하며 듣고도 나는 왜 몰랐을까.
요즘 누구를 만나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나이가 드니까’로 시작하게 된다. 확실히 해가 갈수록 사람 만나는 게 어려워진다는 말에 공감한다. 낯선 이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명확히 표명하기가 꺼려진다. 말을 꺼내기 전에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에 대해 수도 없이 고민한다. 불편한 기운이 감돌 수밖에 없다. 나조차도 이런 나 자신이 편하지 않은데 상대방이라고 나를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
이제, 누군가를 만나게 될 미래의 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첫째, 상대방 그리고 나의 감정을 쉽게 믿지 않을 것.
둘째, 추구하는 삶,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시작할 것.
셋째,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것.
넷째,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것.
마지막, 배려심과 포용력 있는 사람을 만날 것.
이 5가지 나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을 새긴다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과는 더 건강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좋은 사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