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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미스터 케이 Apr 01. 2022

아무거나 쓰기 다시 시작

Do something shit, it's necessary

다시 돌아오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역시 게으름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겠나 싶다, 여러 납득 가능한 핑계들도 있었지만, 여유를 조금만 갖고, 루틴을 올바로 세워,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할당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매일을 보내며, 분명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핑계와 함께 손 놓고 있기를 거진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다시 슬쩍 돌아왔다. 


매해 신년이 되면, 주문을 외듯 기록하고 다짐하는 목표들이 있다. 다이어트, 금연, 책 읽기 등등, 분명 실행 가능하나, 단 한번 혹은 여러 차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손에 꼽는 횟수만큼 지켜오던 루틴이 깨질 때, 핑계를 만들기 위한 그리고 루틴을 없애기 위한 관성에 큰 힘이 실리게 되고, 결국 다짐했던 목표들이 하나씩 '실패'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연말 즈음까지 방 한켠에 외로이 놓이게 된다.


정확히 내가 그랬고, 어떻게 이를 해결할지, 지난한 고민 끝에, 결론은 "생각날 때라도 그냥 하자"인 것 같다. 


운동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욕망하는 것 같다. 욕망이 결국 이뤄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실천과 엄격한 자기 관리, 한계 돌파를 위한 동기부여 뭐 기타 등등 좋고 어렵고 대단한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역시 으뜸은 '포기하지 않는 것'인 듯하다.


3년 된 게임이 준 희열감


어릴 때 하던 게임 중에, 턴제 MMORPG 게임이 있었는데, 스토리도 재밌고 디자인도 취향에 맞아 구입해 한동안 플레이했었다. 근데 턴제가 주는 묘하게도 느린 속도감과, 게임 스토리 내 발생하는 인물 간 갈등, 분위기 같은 것들이 흥미를 지속하기엔 어린 내게는 큰 장애였다.


게임 스토리는 사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는 약속을 '무기한 유보' 했던 때가, 내 인생에 계획의 유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냥 미루기) 이때 제대로 정립되었다. 


몇 년뒤, 문득 생각난 다 깨지 못한 게임들을 살펴보다, 그 게임을 발견하고 단순 호기심에 다시 플레이를 시작했는데, 경험이나 시야가 바뀌어선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느낌으로 다가왔고, 다른 종류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 같다. 


여전히 위에 언급한 불편감들이 게임 클리어 속도를 올리는 데는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젠 생각날 때, 여유가 있을 땐 꾸준히 하게끔 되었다. 


결국 2주 가채 되기 전, 나는 그 게임의 엔딩을 보았고, 답답할 정도로 느려 터진 게임의 속도감과, 주인공 및 타 캐릭터들의 성장성이 미친 듯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보스들은 정말 싱겁다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극도로 성장한 캐릭터들에 의해 순식간에 도륙 났고, 나름 끝 맛에 좋은 쾌감을 주는 경험이었다. 


게임 클리어를 했을 때, 아 스토리 재밌었다 같은 감상이 들기보다, 무언가 하나 미루고 미루던 것을, 오래 걸리던 것을, 못 할 것이라 여기던 것을 끝내었다는 뿌듯함과 오묘한 성취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결국 관건은, 어쨌든 계속해라


그것이 매일 하기로 했건, 매주 하기로 했건, 매달 하기로 했건, 혹은 특정한 간격으로 하기로 했던, 약속은 실천함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약속에는 행동적 제약과 시간적 제약이 있다. 시간적 제약에 관용을 베풀고, 행동만 하는 것이 옳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 얘기하겠지만, 약속을 구성하는 하나가 무너지거나,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약속 자체를 되물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 아 그렇다, 이건 구색 맞춘 궤변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합리화다. 근데 그렇게라도, 해내라고, 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계속 스스로를 다독여도 보고 때로는 다그치기도 하고 싶다. 


공부도 학원을 가야만 제대로 하던 수동적 습성이 이런 때도 발휘되나 보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목표가 있으면, 납득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소 지저분하더라도) 동원하여 목표한 바를 차곡차곡 이루는 것이 각자의 정신건강과 성장에 더, 반드시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금연했고, 15킬로 감량에 성공했고, 배달음식을 끊고, 일주일에 2권의 책을 읽으며, 매일 아침 필라테스를 하고, 자격증을 3개를 따고... 뭐 여하튼 해낸 게 적지 않은 것 같다(자랑)


나 자신을 포함한 이 글을 우연히 본 모두에게 해줄 말은


그냥 해라, 아마 오늘 약속 못 지켰을 거다, 올해 목표 못 지켰을 거다, 큰 장애에 부딪혔고 그로 인한 좌절감에 파묻혀 잠만 자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싶고 그 와중에 배는 고프고 심심하여 영화도 보고 먹을 것도 시켜 먹으며 할 것 다하다,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가 뒤섞임 감정의 소용돌이에 다시 파묻혀 이도 저도 아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괜찮다, 그래도 괜찮으니 그저 그때가 언제가 됐건, 생각이 났을 때, 아무리 늦은 새벽이어도, 노을이 뉘엿뉘엿 지어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때이더라도, 상관없으니 일단 일어나 깨끗이 씻고, 자리에 앉아 펜을 잡아 휘날려 쓰자, 오늘 내가 지킬 약속이 무엇인지, 거기서 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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