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utpinion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미스터 케이 Dec 25. 2022

네가 내게 전한 말: 회신

올 1월 한 약속들에 대해

매년 초, 모두가 그러하듯 작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못내 아쉬웠으나 이내 되돌아 보지 못해왔던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 한 켠에 정리하곤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상자를 꺼내어, 이 안에 새로운 한 해동안 가득 담길 것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어린 약속들을 써내리곤 한다. 


올 1월의 난 3가지를 지키겠다 약속했다. 행동력, 꾸준함 그리고 건강함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올 한 해가 끝나려면 더 시간이 남았지만, 그 때의 내게 답장을 보내야겠다.


회신1: 행동력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내었던 것 같다. 항상 겁내기를 반복하고, 이따금씩 여러 핑계로 행동하지 않음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하고 수 없이 자기 위로 했던 것 같다. 매 번, 마음과 기억속에 잔류하는 감정은 오롯이 여과되어 무엇보다 뚜렷이 느껴지던 후회감과 아쉬움 뿐이었다. 


"이건 내 몫이 아니야", "저 포도는 신 포도일거야", "이렇게 함이 맞을거야", "객기에 불과해"와 같은 문장들이 머릿속을 헤뒤집는 것은 예삿일이고, 묻지도 않은 의문들에 대해 필사적으로 궤변 섞인 변명을 지인들에 자랑스럽다듯 풀어놓는 내 자신이 몹시도 부끄럽고, 그 때 조금 위험을 지더라도 용기를 내보는 것이 어땠을까가 머리와 가슴속을 계속 헤매었던 것 같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었던 21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보내었던 22년의 어느 시점, 업무상 우연히 알게된 지인을 만나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담담히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난 어차피 잘 될 거라고 믿어요,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은 저는 어떻게든 이뤄낼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이제 질문은 과정에 관한 것이예요. 어떻게 이룰 것인지,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어떻게 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지, 재밌었는지, 괴로웠는지 혹은 누군가를 희생시키지는 않았는지, 슬픔은 있었는지와 같은 것들이요"


언젠가, 결과물이 그려진 그림을 볼 때, 그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후회나 아쉬움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갖기 보다, 어떤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놀라움이 있었는지, 끊임 없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캔버스에 좀 더 나의 색깔을 녹여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순간 순간 찰나에 주어지는 귀중하지만 작은 용기이다. 그 용기를 내었을 때, 항상 기쁘고 놀라운 일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도 당황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오히려 더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뿌듯했음 좋겠다, 적어도 하지 않음으로서의 아쉬움과 후회는 없을테니.


작게는 가방이 열린 낯선 행인에게 알려주는 것부터, 좋아하지만, 관심을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있을 상대방에게 용기를 내어 만나고 감정을 표현했던 것, 그리고 나의 힘듦과 어쩌면 공개하길 꺼릴 수 있던 역사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지막으로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작지만 반항기 섞인 도전들, 번번히 퇴짜를 맞는 것은 물론, 오히려 주변에 폐를 끼칠 뻔도 했지만. 


도전했고, 의외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발견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못 낸 용기가 많이 남은 것같다. 그건 남은 13일의 22년의 나와 23년의 내게 맡기겠다.


회신 2: 꾸준함


도전과 행동들로 꾸며진 한 해를 보내었더니, 생각보다 나의 약속이 벅찬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지난 1월 스스로에게 나름 구체적으로 해내겠노라 약속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의 것들은 한번의 시도와 완성으로 끝을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책을 꾸준히 읽는 것,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쓰는 것,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어떤 형태로건 기록으로서 남기는 것 등을 성실히 해내겠노라 약속했다. 상반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하반기 동안 수 많은 시도와 도전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도전은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다만, 꾸준함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무한히 자라는 나무가지가 없는 것처럼, 기존의 꾸준함에 안녕을 고하고, 새로이 다른 꾸준함의 시작을 알리는 때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내가 원하고 기대하는 삶을 꾸미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 우선되고, 그 뒤 차근히 기대하던 것들을 위한 기반이 안정되어 우선되던 것들이 바뀌는 순간이 오곤 한다.


책을 읽는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기 위해, 이전에 내 삶을 구성했던 일상의 일부를 비워내어야 했듯, 누군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새로운 공부에 할애하기 위해, 잠을 자고 좋아하던 문화 생활을 하던 시간을 희생하듯 말이다.


올 한 해, 새로운 생각과 도전을 통해 이루어낸 꾸준함이 이전의 꾸준함을 미뤄냈고, 행동력이 빚어준 작은 용기들이 만들어낸 우연들은 기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꾸준함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색으로 꾸며볼 수 있어 감사했다. 


돌아올 새로운 해에는, 좀 더 대담한 행동력으로 더욱더 다채로운 색감으로 물들일 수 있기를 빌어보며, 쉬울 수 없는 꾸준함으로 다양한 색에 새로운 빛을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회신 3: 건강함


훌륭히 지켜냈다. 술은 거의 입에도 데지 않았고, 올 한 해도 금연을 지켰다. 적어도 주 3회 이상은 운동을 해온 것 같고, 인스턴트 식품을 섭취하는 비율 또한 확실히 줄였다. 예상외로 건강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이 안심이나, 방심하지 말고, 기존에 지켜온 루틴을 잘 지켜올 것.


기억하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신체를 만든다. 운동을 조금씩 하며 느낀 것은 확실히 운동 빈도수가 적어질 때의 기분과 활력의 수준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 조금이라도 자신이 자신이 아닌 듯, 다소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라 느껴질 때면, 운동을 하러 나가길 추천한다.


모두가 그러하듯, 다소의 우울감은 항상 지니기 마련이다. 그 기분조차 그대로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로 받아들이고 아껴줄 것. 다만, 그렇다고 그 기분에 온전히 좌절하지 말고, 우선 일어나서 씻고 어떤 것이든 음악을 키고, 커피를 마신 뒤, 어디든 좋으니 밖으로 향하자. 가만히 누워있다고 위로가 되지도, 충전이 되지도, 회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너는 그렇다.


다행히 그것을 일찍이 발견해서, 조금이라도 기분에 문제가 생겼다 하면 책을 들고 밖으로 싸도는 역마살의 힘을 입어, 올 해 그럴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방심하지 말 것. 항상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아끼고, 부단히 발전시키며, 관조할 것.


추신: 굳건함 + 유연함


부단히 지켜나가고 새로이 그려나갈 위 3가지에 더해, 올 해를 위한 나에게 2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이제 슬슬 몸을 펴고 일어서, 세상 곳곳을 제대로 견조해갈 나에게 어쩌면 이전과는 다르게 너무도 자극적일 수 있는 여정들이 기다리는 것 같다.


오로지 홀로 뒤쳐지고 있고, 항상 부족함에 스스로를 다그치기를 반복하고, 매번 주변의 몹시 잘난 누군가와 비교하기를 끊지 못할 것이다. 한 걸음 내딛으면, 돌다리 2개가 생긴 것 같을 것이고, 한 계단 오르면, 계단 높이가 2폭은 높아진 듯 보일 것이다. 


바로 옆 길엔 모두가 잘 다져놓은 계단을 몹시 재빠르게 오르는 것이 보일 것이고, 경사 또한 완만해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힘차게 올라가는 모습에, 그들 만면에 피어난 희망 가득 담긴 미소에, 스스로가 내린 모든 결정과 스스로에 대한 극심한 회한과 의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무리한 부탁이나, 그럼에도 흔들리지 말기를. 어떤 격정적인 회한이, 어두운 감정이 몰려오더라도, 스스로가 그려가는 그림의 마지막 한 점을 찍을 때까지, 믿고 있는 과정을 끝까지 견지하기를. 다만 돌아서서,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는 과감히 이루어 왔던 것들을 집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굳건히 스스로가 믿고 있는 것들을 지켜나가되, 믿음이 깨져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유연히 그 깨진 조각들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믿음을 구성해나가기를. 


굳건함과 유연함의 시작과 끝을 분별하는 지혜를 선물받기를, 내년에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Feedba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