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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미스터 케이 Aug 08. 2023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어딘가엔 새겨지겠죠?

벌써 수 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지독한 고민과 문제를 두고 씨름하고 있어요. 감당하기에는 참 벅찬듯 싶으면서도, 어떻게 하루 하루, 순간 순간 견디어가고 있어요. 지고 있는 책임과 지키고 싶은 욕심 같은 것 따위가 있어, 하루하루 발버둥을 치다가도, 저보다 이 험난한 여정을 먼저 떠난 선배들의 가르침이 배고픈 요즘이예요.


돌아보면, 이젠 이런 저런 힘든 얘기를 안주 삼아 시간을 함께할 친구도 지인도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문제에 대해 고민 상담을 부탁드리거나 조언을 구할 멘토도 없어요. 열심히 둘러봐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제가 못보는 것인지, 정말 없어서인 것인지 분간조차 쉽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홀로 서점에 들러 제가 갖고 있는 많은 고민들을 몹시 가볍다듯 여겨주며, 명쾌하고 시원한 답이라도 던져줄 듯 유혹하는 책장을 둘러보곤 해요. 해결사의 어구를 잔뜩 머금은 누군가의 답안지를 한 권 들어올려 읽다보면, 이내 실망감에 다시 내려놓곤, 다시금 좌절이나 절망 혹은 후회 같은 것 따위로 얼룩지고 뒤섞여 뭔지 모를 찐득한 감정에 지쳐서 주저 앉고는 해요. 


가까운 카페를 찾아, 고소하고 상큼한 향이 가득한 커피를 잔뜩 들이키며,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빠른 박자와 높은 음의 음악들을 들으며, 한껏 가라앉은 마음을 다시 되돌리고자 노력해요. 그리곤, 기회가 될 때마다 다시 답을 찾아보려, 블로그나 책들을.. 아니면 영상들을 훑어보며 혹시 누군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런지 흔적들을 좇곤 했어요. 


얼마 전, 주말도 같은 날이었어요. 무척이나 더운 요즘, 벼루고 벼루던 가고 싶던 북카페에 방문하기로 용기를 내었고, 지인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죠. 국내에 모 대기업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시고, 퇴직하여 만든 책방이라고 해요. 모 유명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도 하고, 국내에선 멘토이자 코치로도 잘 알려진 분이었어요.


그 분이 직접 썼다던 책을 기념품처럼 간직하고파, 한 권을 사들고 책방을 나서 근방의 카페에서 읽어보려 했어요. 참 가벼운 마음을 집어든 것을 이내 빠르게 반성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의 일부를 잔잔하고도 덤덤한 문체로 어루만지며 별거 아니라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지 얘기 해주는 것 같았어요. 


요즘 일과,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한 회의와 여러 뒤섞인 고민이 함께하던 때 였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감과, 상실감 같은 것들에 힘겨워하고 있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제가 지키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제 상황속에서 어떻게든 답을 구가하고자 하면서도, 이미 나름의 멋진 답을 갖고 있거나, 문제가 문제가 아닐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는 누군가들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아직 절반정도 읽은 이 책은 제게 얘기 해줘요.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해줘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근데도 위로가 되어요. 결국 지독하게 고민했고, 싸웠고, 견뎠고, 애써온 것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흔적이 될 것이고, 그 작지만 나름의 악전고투의 흔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언젠가 멋진 나를 이룰 것이라고. 


지금 읽고 있던 부분의 한 시가 마음을 참 울려요. 장석주 시인의 작품 중에 <대추 한 알>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해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리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해본 사람만이, 즐겁고 고되었던 날을 막론하고, 따듯한 햇빛이 바스락거리고 사근한 바람이 불던 날이건, 매섭게 몰아치는 빗바람을 아무리 피하려도 차갑고 무겁게 적셔지던 날이건, 무언가를 그냥 해내며, 견지해가던,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내던 것들이 어느 날엔가 기대해 바라지 않던 것 이상의 과실로 맺혀질 것이라고. 그렇게 누군가 속삭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사방에서 힘든 말들이 들리는 요즘이예요. 지키지 못할 약속만 나열하며, 이것 저것 해보느라 정신 없던 와중에 작은 응원에 힘입어, 혼자서만 읊조리던 고함들을 여기에 조금 남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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