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레터>를 읽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이이다 후미이코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세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고 한다. "충분히 배웠는가", "충분히 사랑했는가", "소명을 다했는가". 모든 질문에 큰 울림이 있지만, 이 중 "충분히 사랑했는가"에 가장 마음이 오래 남았다.
사랑에 대해 한 때 생각했던 것은 "내가 그 사람과 함께일 때 더 행복한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가"였다. 그리고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괴로운 마음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 순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사랑은 내가 진실된 마음으로 누군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내가 더 행복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의 시선으로 보는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나 사랑을 받을 때 본질적이고 진실된 사랑이라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랑은 수단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과 같은 위대한 사랑은 나의 행복과 이익의 관점으로(즉, 수단으로) 사랑의 잣대를 세우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으로서의 사랑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깊은 우울로 인해 힘들었던 어느 순간, 내가 목적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의 행복과 건강을 먼저 놓고 사랑을 수단으로써 재단하고 있었구나 알게 됐다.
이를 깨닫도록 나를 성장시킨 것은 살면서 사랑했던 이들로부터 받은 "목적으로서의 사랑"의 경험들이었다. 목적으로서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그러한 사랑을 받음으로써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목적으로서의 사랑을 했던 시간들은 우리 삶의 서사에서 가장 진실되고 아름다운 시절로 남게 된다. "충분히 사랑했는가"의 질문은 그래서 우리의 삶을 진실되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적 물음이 된다. 오늘도 내일도 "충분히 사랑했는가?"의 질문을 떠올리며, 충분히 사랑하며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