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바람이 부는 해변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맨발로 모래의 감촉을 느낀다. 하얀 포말의 파도가 얕게 부서지는 청록빛 바다를 본다. 바다에 뛰쳐 들어가면 유영하는 거북이와 산호초의 풍경이 펼쳐진다.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까지 바다 앞 벤치에 기대 누워 <결혼, 여름>을 읽는다.
길리섬의 모든 곳에는 자연의 신들이 머무른다. 그중에서도 몹시 사랑했던 것은 황금빛의 석양이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바다 위로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황금빛 석양과 윤슬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모든 기쁨이 충족되었다. 이곳의 금빛 석양에 매료되어 매일 해변에 나가 석양을 보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 위에서도 석양을 보았다.
적도의 해가 바다 위로 떨어지면 시리우스와 오리온자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별의 지도가 하늘에 떠올랐다. 별빛이 가득한 밤이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 모닥불이 있는 조용한 해변가를 찾았다. 밤의 해변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바다 멀리에서 반짝이는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을 보거나 별구경을 했다.
길리섬에서 하늘을 매일 가까이하고 온몸으로 바다와 바람과 뜨거운 돌과 모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기쁨이 밀려오고 내면의 깊은 곳이 가득히 충족되었다. 자연과 깊게 맞닿아 교감하고 호흡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배움보다 세계가 더 진리처럼 와닿았다.
<결혼, 여름>에서 알베르 카뮈는 알제 티파사에서 신들이 깃든 자연을 보며, 하루 온종일 기쁨을 누린 것이 특별한 성취라기보다는 행복해야 할 의무가 부과된 우리 인간 조건의 감동적인 완수로 여겨진다고 했다.
매일같이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내는 황금빛 석양과 청량한 코랄빛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 순간 온몸으로 행복해야 할 의무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의무를 다함으로써 오는 깊은 기쁨과 충만감을 느꼈다. 어떻게 천복을 좇으며 살 것인가의 화두를 갖고 온 여행에서 자연을 통해 세계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다. 이 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더 감탄하게 되었다.
"잠시 후 압생트 풀밭에 몸을 던져 그 향이 몸에 배게 할 때, 나는 모든 편견에 맞서 진리를 실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그 진리는 태양의 진리이고, 또한 죽음의 진리일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 삶. 미풍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 - <결혼, 여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