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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직장인 Oct 24. 2021

암호 화폐에 투자하기 전에 직장인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

암호화폐가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

    “옆 부서 김대리가 이번에 코인으로 돈 벌어서 회사 그만뒀대.”    


    코인 투자로 대박 나서 '파이어족'(경제적 자유+조기 은퇴)의 꿈을 이룬 직장인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가? 내심 근무 시간에 줄곧 핸드폰만 쳐다 보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얄미웠는데, 벼락부자가 되어 떠나버리다니!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지고 속이 쓰린 이들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라 쓰고 '돈 찍기 신공'으로 읽는다) 때문에 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래서 고단한 월급쟁이 직장인들이 암호화폐만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이라 여기며 몰려든 것이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최근 코인들이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하는 패닉장이 연출되었다. 포모 증후군(FOMO : Fear of missing out) 때문에 뒤늦게 시장에 참여한 이들은 갑자기 떡락(?)해버린 코인 시장 때문에 '강제 존버'를 감수하며 좌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말 2017년의 데자뷔를 보듯, 코인으로 울고 웃는 직장인들의 흥망성쇠 스토리가 무성하다. 코인이 수 백배로 떡상하여 다음날 부장님에게 사표를 집어던졌다는 전설적인 일화부터, 코인 폭락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모니터를 깨부숴버렸다는 비화까지 각양각색의 이야기이다.




    앞서 <직장인 자본주의 생존기> 시리즈에서 자본시장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거듭 강조했지만, 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는 바람직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암호화폐가 투자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화폐'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대표적인 자산들의 '본질 가치'를 생각해보자. 부동산은 주거 공간의 가치를 제공한다. 주식은 투자자에게 기업의 이익과 성장에 대한 지분을 나누고, 배당금 또한 지불한다. 반면 암호화폐는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실체적인 화폐 기능이 부재해, 본질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니, 암호화폐에 화폐 기능이 없다니 "그럼 암호화폐가 아니라 그냥 암호 아닌가요?!"라며 황당해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암호화폐가 왜 화폐가 될 수 없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화폐가 생겨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수렵을 기본으로 하던 고대 시절의 생존 방식은 '자급자족'이었다. 쉽게 말해, 가족 또는 부족 단위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구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이후, 이를 불편하게 느낀 이들이 가까운 부족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는 일종의 무역 거래가 시작되었다. 예컨대 소를 키우는 부족은 소고기나 소 젖을 가져오고, 강가에 사는 부족은 물고기를 가져와 협상을 통해 적당한 비율로 교환하는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물교환은 상당한 불편함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상상해보자. 이것저것 물건을 잔뜩 싣고 온 이들이 시장 바닥에 모였을 때, 서로 필요한 것을 때마침 갖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상대방이 가져온 물건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거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협상 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빈번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맞교환하기 위해서는 '우연한 욕구의 일치 (Double coincidence of wants)'가 성립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우연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결국 이런 물물교환 방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수도 있겠지만, 인류에게 최초의 화폐 역할을 한 것은 조개껍데기라고 한다. 조개껍데기는 내륙지방에서 구하기 어려워 희소성이 있었다. 게다가 마모가 잘 되지 않고 가벼워서 보관이 쉬운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조개껍데기 10개로 쌀 2포대를 사거나, 돼지고기 1근을 살 수 있는 등 '교환의 매개체', 즉 화폐로 쓰일 수 있었다. (참고로 이러한 유래 때문에 한자 조개 패(貝)는 돈이나 가치를 의미하는 한자어인 '재(財)물', '자(資)본', '보(寶)물' 등에 많이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 조개껍데기를 엮어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건 부족장의 모습은 일종의 '돈 자랑 플렉스'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으로 따지면 비싼 금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부를 자랑하는 래퍼의 스웩(Swag) 같은 것이었을까? 아무튼, 화폐도 인류 문명의 진보와 함께 금, 은, 동, 철전(鐵錢), 그리고 오늘날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지폐나 사이버머니(싸이월드 도토리, 카카오페이 캐시 등) 등으로 점차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 출처 : 도끼 "다이아 박힌 150돈 금목걸이 하고 잔다" - 이데일리 (2016-01-07)




   결국 화폐는 상품의 교환과 유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목적으로 탄생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화폐가 전문화와 분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물건을 생산해내고, 이를 다른 경제 주체와 교환하는 방식인 '시장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에서 화폐의 세 가지 기능은 바로 ① 교환의 매개 ②가치척도 ③ 가치저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화폐의 고유한 특징이면서, 반대로 화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자, 그럼 본래의 논지로 돌아가 암호화폐가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 세 가지 기능과 함께 설명하겠다.


    첫째, 암호화폐는 일반적인 화폐와 달리 교환의 매개(Medium of exchange) 기능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다. 기본적으로 화폐는 지불(Payment) 수단으로써 거래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위에서 다뤘던 것처럼 A 물건과 B 물건이 두 거래 주체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교환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가 중간에서 교환의 역할을 수행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과자 한 봉지를 살 때 천 원짜리 화폐를 지불하지, 집에서 남아도는 슬리퍼가 대략 천 원 정도 하니 맞교환하자며 들이밀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실생활에서 이러한 지불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최근 들어 일부 편의점, 커피숍,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결제를 위해서는 전용 계좌를 만들거나 지갑 앱을 설치해야 하는 등 여러 불편함이 따른다. '비트코인으로 일주일 살아보기'에 도전한 이들도 있었는데, 코인 결제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가게조차도 막상 계산대 앞에 서면 상황은 달랐다. 점원으로부터 '예? 비트코인이 뭔데요?', '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등의 말을 듣는 것이 일쑤였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코인 결제를 받아주는 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거래 수수료를 감당해야 하거나, 무려 34자리의 지갑 주소를 입력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따랐다. (참고 : '비트코인으로 일주일 살아보니… 돈이라기엔 ‘99%’ 부족했다' - 한국일보 2017.11.18)


    점차 암호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삼는 곳이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수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그게 정말 언제일지 정확히 예측하는 이들을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비트코인 빠'였던 일론 머스크도 테슬라 자동차를 판매할 때 비트코인은 받지 않겠다며 순식간에 돌아 선 것을 보면 비트코인 희망론을 쉽게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 수 백 수천 종류의 잡다한 '알트코인'은 말할 것도 없다..)


    둘째, 암호화폐는 가치척도(Unit of account)의 기능이 없다. 화폐는 시장 경제에서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화폐가 있기에 어묵이 '1만 원', 육포가 '2만 원'이라고 표기할 수 있고, 이 두 상품의 가치가 2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화폐가 없는 세상에서 육포를 팔고 싶은 상인이라면 자신이 필요한 어묵을 기준으로 삼아 육포 가격은 '어묵 2개'라고 표시해야만 할 것이다.) 혹시 어떤 상점을 방문했을 때 '비트코인 0.00000001개' 또는 '도지코인 0.0000000048개'라는 가격 태그를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이런 날이 올 때까지는 암호화폐의 가치척도 기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셋째, 암호화폐는 가치저장(Store of value) 기능이 매우 불안정하다. 과거 수렵 시대에는 사냥을 잘한다고 해서 지금처럼 부자가 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고기가 쉽게 상하기 때문에 가치를 축적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화폐는 고기와 달리 썩지 않는다. 가치저장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금만큼은 아니지만, 금이나 다이아몬드, 예술품처럼 이러한 가치저장의 기능을 인정받는 자산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암호화폐는 그 어떤 자산보다도 그 가치가 시시각각, 그리고 아주 큰 폭으로 변동한다. 혹자는 코인을 '디지털 금(金)'이라고 찬양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안정적 가치저장의 수단이 되어온 금과 비교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주장이라고 느껴진다. 세계적인 투자 기관인 JP모건에서조차 최근 암호화폐의 가치가 결국 '0'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았던가이는 어쩌면 암호화폐가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종국엔 아무 가치도 저장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 Blind 암호화폐 게시판에 올라온 풍자물  (제목 : '도지 곧 반등함 차트분석 완료' - 2021.4.17일)



    위에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암호화폐는 자금세탁이나 불법거래의 수단이 될 수 있어 각국의 정부로부터 세금을 때려 맞거나, 심하게는 전면 규제까지도 당할 위험성이 있다. 투자 자산으로서 너무나도 취약한 약점인 것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요즘,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생활이 팍팍해진 이들이 대박의 꿈을 안고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심정은 한편으로 이해된다. 나 또한 주위에서 코인으로 잭팟을 터트리는 소식을 듣고 암호화폐 시장에 돈을 넣고 싶은 유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의 격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를 축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잃지 않는 것'이다. 내재가치(Intrinsic value)를 가늠할 수 없고, 아직 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요원하기만 한 암호화폐에 돈을 베팅하는 것은, 좋은 투자 방식이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물론 이 순간에도 암호화폐로 돈을 버는 이들이 있고, 간간이 들려오는 주변의 '대박 스토리'는 우리 마음을 끊임없이 유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호화폐로 돈을 벌든, 잃든 우리 직장인들의 본업과 일상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계좌를 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자산의 가치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신(神)만이 아는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모아 온 소중한 돈을 베팅하기 전에, 암호화폐의 진정한 가치와 기능에 대해서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해보는 것은 어떨까? 코인이 아니더라도 직장인들을 위한 훌륭한 투자자산은 많다. 앞으로도 <직장인 자본주의 생존기>를 통해 '가치 있는 투자'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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