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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Jan 06. 2022

목욕 후 시원달달 바나나우유

보송보송한 몸과 마음

몸과 마음의 허물을 한 겹 벗겨내고 

하얗게 뽀얘진 보송보송한 몸과 마음으로

한 손에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콕' 꼽아 가벼이 집으로 향하는 곳.

바로 우리동네 목욕탕이다.


90년대에는 목욕탕이 아주 성업이었다.

매 주 토요일이면 동네 엄마들은 가기싫다고 떼쓰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선

목욕 후 먹는 시원달달한 바나나우유로 유혹하며 끌고 가 몇시간이고 떼를 벗겨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 현관을 나서서 10분쯤 걸으면 옥색외벽을 가진 목욕탕 건물이 위엄있게 나타났다.

목욕탕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주변의 공기가 따뜻한 느낌이었다.

오묘한 빛으로 반짝이는 반투명한 창문이 달려있는 목욕탕 입구의 고동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후끈한 열기와 함께 기분 좋은 비누향이 온 몸을 따스하게 감싸왔다.

분명 목욕탕에 가기싫다고 떼를 썼는데, 그 마법같은 목욕탕 향은 어딘가 홀린듯이 기분좋게 목욕장 안으로 발걸음을 향하게했다.


목욕탕 입장권을 파는 곳은 열차 탑승권을 팔 것만 같은 생김새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판 가운데에는 손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반원형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위에는 '매표소'라고 아주 정직한 글씨로 써져있었다.

목욕탕 사장 아주머니는 언제나 그 판 뒤쪽에서 부들부들 후들후들해보이는 편한 옷차림으로 앉아계셨다.

아주 저렴했던 입장료를 내고 잠시 기다리노라면, 

아주머니는 엄청난 속도로 수건 2장을 착착 접어 무심하게 사물함 키를 올려 건네주곤 했다. 


매표소 좌, 우로는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는 장막이 크게 쳐져있었다.

하얀 천 위에 男, 女 라고 큼지막하게 쓴 뒤에 사람이 오갈 수 있도록 중앙부분을 세로로 2/3정도 잘라낸 모양새였다.

여탕인걸 신중히 확인하고 들어서면, 그 뒤로는 촘촘한 나무색 구슬발도 하나 더 있었다.

그 구슬발을 통과할 때면 목욕탕 습기에 젖은 나무향이 느껴졌는데,

마치 숲속에 있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욕탕 안에 들어서면 중앙엔 아주 커다란 나무 평상이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비누, 샴푸부터 온갖빛깔의 때수건,

구운계란과 식혜, 녹차, 어린아이들을 유혹하는 음료수 냉장고가 빼곡히 놓여져있는 매대가 있었다.

언제나 그 매대 위에 있는 노란색 때수건을 사서 쓰고 싶었는데, 우리엄마는 한결같이 초록색 때수건만 고집하기에 아쉬운 마음 한가득이었다.


매대의 유혹을 지나치고 나면 받아온 키의 번호를 확인하고 사물함을 찾아 헤맸다.

사물함에 키를 꽂아 돌릴때면 묵직한 키의 회전이 손에 전해지곤 했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

문제는 사장 아주머니가 어린이들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언제나 사물함 아랫칸을 배정해 주었는데,

매번 쪼그려 앉아 사물함에 물건을 넣고 일어서다가 윗쪽에 엄마 사물함 문이 열려있는 줄도 모르고

머리를 꽁 하고 부딪혀 혹을 달곤 하루 온종일 머리가 후끈후끈 뜨끈뜨끈하게 아팠다는 것이다.

조심한다고 해도 잠시만 방심하면 꽁 머리를 다치곤 했다.


아무리 여자들만 있는 목욕탕이라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목욕용품이 한가득 들어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목욕수건을 펴서 들고 온 몸을 가렸다.

수건이 떨어질새라 온 몸을 긴장하고 적당한 자리에 짐을 놓았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면 탕에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적당한 온도의 온탕과, 엄청나게 뜨거운 열탕이 있었는데 엄마는 언제나 열탕에 들어갔다.

어느 날은 때가 잘 나오려면 열탕에 잠시라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딱 한번 다리를 담궈보았는데, 피부 전체가 화상을 입은 듯이 따끔거려서 얼른 냉탕으로 뛰어들었다.

뜨거운 용암같은 열탕에 턱 끝까지 몸을 담그고 '아~시원하다~'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혹시나 외계인은 아닐까 무서웠다.

그렇게 탕에 20분정도 몸을 담그고 나오면 온 몸이 빨갛게 익어 목욕탕 안에 잘 익은 토마토들이 돌아다니는 듯 했다.


이제 드디어 때를 벗길 시간.

어린 시절엔 언제나 엄마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온몸을 꼼꼼히 밀어주었다.

내 몸을 다 밀기까지는 꼬박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도 엄마는 한결같은 힘으로 때를 벗겨냈다.

분명히 저번 주에 때를 밀었는데도 어떻게 또 국수같은 때가 나오느냐며 한번씩 때수건을 낀 손으로 내 등짝을 찰싹 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등을 치면 나오려던 때가 다시 들어가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가락과 발바닥을 밀때면 얼마나 간지러운지, '그만! 그만!'을 외치며 몇번이나 참다가 엄마랑 다투기도 여러번이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언제나 때수건으로 얼굴까지 벅벅 문지르곤 했는데,

내 부드러운 얼굴이 사포같은 때수건에 밀려서 피가 날 것만 같았건만

밀고나면 신기하게도 한결 더 부드러운 피부결이 되어 신기했다. 역시 엄마는 못하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긴긴 때밀이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쉬어가는 시간에 언제나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양 손에 커다란 때수건을 끼고 비누를 살짝 묻혀 야무지게 탁탁 손을 치고선 온 힘을 다해 등을 밀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엄마는 내 힘이 부족했는지 결국엔 옆에 계신 아주머니에게 등을 밀어달라 부탁하곤 했다.

언제쯤 내 힘으로 엄마가 만족할만한 때밀러가 될 수 있을지 매번 생각하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쯤엔 우리 동네에도 자동 등밀이 기계가 생겼었는데,

기계 중심에 원판이 있어 넓은 때밀이수건을 덮어 씌우고 앉으면 빙~빙~돌며 등을 밀어주는 기계였다.

많은 분들이 만족하는 얼굴로 사용했음에도 우리엄마는 영 시원찮다고 했으니, 엄마의 기준이 높았던 것은 아닐까 한다.


때를 밀고나면 따뜻한 물로 꼼꼼히 몸을 씻어내리고 사우나에 들어가곤 했다.

어릴 적엔 엄마가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동안 냉탕에서 물에 동동 뜨는 물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수영을 했다.

첨벙첨벙 발장구를 세게 치는 탓에 온통 찬물이 튀고 시끄러워서 매번 혼났지만, 너무 재밌어서 혼나고 또하고, 혼나고 또하고를 반복했다.

조금 커서는 엄마와 같이 사우나에 들어갔다.

사우나 문을 여는순간, 너무나도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수건에 찬물을 적셔서 머리부터 얼굴 전체가 가려지도록 푹 뒤집어 썼다.

그러면 얼굴로는 뜨거운 공기가 오지 않아서 숨쉬기가 한결 편안했다.

온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방울방울 송글송글 맺힐 때 쯤, 나는 나와서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은 그 뜨거운 곳에 있다가 바로 냉탕으로 풍덩 뛰어들곤 하셨는데,

저렇게 오락가락 거리는 온도에 몸이 적응하려 하다가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매번 무서운 마음이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목욕을 즐기고 나면 목욕탕을 나서는 길에 언제나 바나나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셨다.

덜 말린 머리를 라면땅처럼 늘어뜨리고 보송보송해진 얼굴과 몸에 시원하고 부드러운 음료수가 들어갈 때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엄청나게 부드러워진 내 몸이 신기해서 손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곤 했다.

그리곤 '다음주에도 엄마랑 목욕탕에 가야지.'하고 결심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목욕탕도, 온수풀도, 사우나나 온천도 가지 못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요즘같이 이렇게 매일 영하 -10도가 될만큼 추운 겨울날이면 따끈한 목욕탕이 참 그립다.

내년 겨울엔 다시 목욕탕에서 마스크 없이 몸을 추욱 늘어뜨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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