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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Feb 14. 2022

90년대 아날로그 놀이1

우리는 모두 취미부자였다.

스마트폰은 커녕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었던 그 시절.

가진 것은 더 없었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놀이는 더 풍부했던그 날들을 떠올려본다.


[혼자놀기 시리즈]

부모님 세대에도 있었다는 종이인형 옷입히기는 90년대에도 이어졌다.

1년에 한번 쯤 생일이나 어린이날에 받을 수 있었던 진짜 바비인형도 집에 있었지만,

바비인형 옷은 너무 비싸서 종류별로 살 수 없었기에 우리의 차선책은 종이인형이 되었다.

정성스럽게 원피스와 신발, 가방까지 오려서 옷을 인형에 잘 맞춰놓고 사방에 붙은 하얀색 종이를 접어 고정하면

꽤나 완성도가 높은 종이 인형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조합해서 입히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놀이였다.

가위질을 잘하면 놀면서도 엄마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두번째 혼자놀기는 색칠놀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청나게 구획이 크고 뚜렷하게 나누어진 밑그림에 크레파스로 덕지덕지 삐죽삐죽 색을 채워나갔다.

점차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그림이 더 세밀해졌고, 색연필과 수채물감으로도 완벽하게 색칠할 수 있는 손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조화롭게 색상을 선택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니,

똑같은 그림을 가지고도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이 탄생하곤 했다.

어느날 부터는 물 묻힌 붓만 갖다 대어도 마법처럼 구획별로 다른 색상이 나타나는서 어느새 그림이 짠- 완성되는

신기한 색칠놀이 책이 출시되었는데, 머리아프게 색을 고를필요도 없고, 단순한 수채물감으로는 낼 수 없는 예쁜 무지개파스텔톤 까지

연출할 수 있어서 비싼 가격임에도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친구와 함께놀기]



아무리 혼자 놀기가 재밌어도 역시 친구와 만나서 함께 노는것이 최고이던 시절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엔 공기놀이가 최고의 놀이였다.

언제 어디서나 공깃돌 5개만 있으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5개의 공깃돌을 가지고 1단부터 4단, 마지막 점수따기 까지 총 5단계로 구성된 게임이다.

5개의 공깃돌을 손 주먹 안에 고이넣어 잘 흔들어 섞은다음 바닥에 적당히 흩뿌린다.

그다음엔 공깃돌 하나를 콕 집어 하늘위로 높이 올린다음 재빨리 바닥에 있는 공깃돌을 줍고, 던졌던 공깃돌을 손으로 받아낸다.

1단은 바닥에 있는 공깃돌을 1개씩 집고, 2단은 2개씩, 3단은 3개씩, 4단은 4개를 한번에 잡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잡는 공깃돌 외에 다른 돌을 건드리면 탈락, 다음사람 차례로 순서가 넘어갔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온갖 희노애락이 담긴 놀이였다.

바닥에 흩뿌린 공깃돌 중에 1개를 집어내는 과정에서 옆의 공깃돌을 건드려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서 울상인 친구부터

손이 작아서 4단을 하다 잡은 공깃돌을 후드득 떨어뜨리고서 아이씨~ 나는 손이 작단말이야! 하고 성질을 내던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바닥에 나무바닥이어서 교실 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다가 휙~ 공깃돌을 잡으려던 날렵한 손에

나무가시가 박혀서 엉엉 울며 보건실로 달려가 바늘과 핀셋으로 가시를 뽑아내다 핏방울을 보며 울먹이곤 했다.

마지막 점수따기는 5개의 공깃돌을 하늘로 던진다음 손등으로 받은 뒤, 다시 튕겨올려 공중의 공깃돌을 손으로 움켜쥐는 방식이었는데,

공깃돌을 잘 모아서 던진 뒤에 빳빳하고 평평한 손등으로 받아내는게 중요 포인트였다.

나는 매번 4~5개를 다 잡겠다고 손등위에 욕심가득 올린 뒤 작은 손 때문에 공깃돌을 놓치고선 0점이 되곤 했다.

공기놀이는 점점 발전해서 공깃돌 10개를 쓰기도 했는데, 알록달록한 공깃돌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또 어찌 알았는지

문방구에서는 앞다투어 새로운 공깃돌을 내놓곤 했다.

귀여운 캐릭터가 공깃돌 위에 그려져 있거나, 반짝이가루를 넣기도 했고, 불투명한 공깃돌부터 투명한 공깃돌,

초콜렛모양 공깃돌, 정말 '돌'모양 공깃돌들을 출시해서 우리는 용돈이 모이면 새로운 공깃돌을 수집하곤 했다.


실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실뜨기도 최고였다.

실 사이로 양손 엄지, 검지 4손가락을 쑥 집어넣어 뒤집은 다음 정해진 순서대로 실 사이사이 손가락을 넣어 모양을 뜨면서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실을 옮기는 놀이였다. 초반 단계는 쉬워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별 만들기 단계부터는 꼭 헤메는 아이가 있었다. 그게 바로 나다.

실뜨기를 하다보면 꼭 실이 끊어져서 버리게 되거나 꼬이고 엉켜서 한두시간 수업을 빼먹고 내내 실을 풀어야하긴 했지만 실과 손가락만으로 다양한 모양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해서 멈출 수 없는 놀이였다. 그 과정이 신비롭게 느껴져 이 놀이를 만든 사람은 얼마나 똑똑한것일까에 대해 우리는 매일같이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더 커서는 고무줄 놀이가 시작되었다.

두명이 한쪽 발목에 고무줄을 걸어 서로 멀리 떨어지면 2줄의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데,

그 안에 들어가 1~2명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넘어다니는 놀이였다.

노래 종류에 따라서 고무줄안무(?)같은 것들을 짜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난이도에도 모든 아이들이 해내자

우리는 더 높은 난이도를 위해 고무줄 높이를 점점 올렸다. 나중에는 목, 이마까지도 고무줄이 높아져서

고무줄을 발에 걸고 바닥에 찍어눌렀다가 다시 놓는 동작에선 고무줄을 잡고있는게 벌칙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고무줄 놀이를 하고있으면 엄청난 방해공작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했다.

발랄하게 뛰며 고무줄을 넘는 탓에 치마를 입은 친구들의 속옷이 보여 남자아이들이 엄청나게 놀리기도 했고,

때로는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서 고무줄을 잡은 친구의 다리위로 빨간 고무줄자국이 남거나 피가날 정도로 다치고

그 뒤로 새 고무줄을 구하기까지 고무줄놀이 일시중단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래부르며 고무줄을 뛰어넘는게 즐거웠으니, 우리가 그 놀이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여자아이들이 이렇게 놀았다면, 남자아이들은 '내기'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주로 딱지치기나 따조로부터 내기가 시작되었는데,

딱지는 종이딱지로 시작해서 포켓몬이 나온 뒤엔 적당히 불투명하게 알록달록 색상이 들어간 공장제 포켓몬 말랑딱지로 진화했다.

종이딱지를 만들 때면 온갖 반칙이 난무했다.

조용히 조금 더 큰 종이를 사용해서 티나지 않을 정도로 딱지를 더 크게 만들거나,

분명히 도화지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딱지 중간에 하드보드지를 넣어서 더 튼튼하게 만들거나

도화지를 여러겹 넣어서 무겁고 두껍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들키고나면 서로 어찌나 주먹을 날리고 멱살을 잡았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면서 또 매일같이 모여 딱지를 치기에 참 신기했던 기억이다.

따조놀이는 참 다양했다. 알까기하듯이 따조를 흩어놓고 손가락으로 팅겨서 책상 밑으로 떨어뜨리면 따조를 딸 수도 있었고,

한번은 치토스 안에 따조를 분해하면 작은 로봇이나 차 모형을 만들 수 있게 출시되어서

모든 아이들이 모여서 따조를 조립하기도 했다.

조립한 따조는 교실 한켠에 모아서 전시하곤 했는데, 아이들의 꿈은 모든 컬렉션을 모으는 것이었으나

과자를 더 많이 팔려는 제조업체의 욕심으로 인해 매년 좌절되곤 했다.


딱지치기를 본 여학생들은 옆에서 색종이 따먹기를 시작했다.

온갖 색으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색종이가 유행이었는데, 우리는 색종이를 책상 위에 높이 쌓아놓고

두 손바닥을 모아 책상위에 내리쳐서 생기는 공기바람으로 색종이를 넘기면 넘어간 만큼 색종이를 가져가는 놀이를 만들었다.

가끔 새로운 무늬의 색종이가 나오면 가녀리던 손바람은 무슨 힘이 생겼는지 책상에서 쾅~ 소리가 날 정도였다.

기본 그라데이션엔 가끔 은색, 금색 색종이도 들어갔는데 우리는 금은 색종이를 몇장이나 가지고 있는지를 가지고

서로 등수를 따지기도 했다. 금은 색종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용돈을 만원짜리로 받은 듯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조물조물 만질 수 있는 작은 장난감도 유행이었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는 얇은 고무 안에 밀가루같이 고운 가루를 채워넣은 만득이가 있었다.

생긴건 납작동글한 호빵같이 생겨서 귀여웠는데, 만지는대로 모양이 변하고 서서히 돌아오는 모양새가 웃겼다.

우리는 그걸 벽에 던지고, 바닥에 던지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놀았다.

시간이 지나고선 지금도 유행하는 액체괴물 슬라임이 등장했다.

끈적끈적 손에 묻어나고 요상한 화학약품 향이 났지만 그 느낌이 신선했는지 모두가 조물조물 손위로 올렸다.

친구와 서로다른 슬라임을 섞어 만지다가 분리가 안되어서 망했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슬라임'에 인격이 부여된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 장면에서 슬라임이 입속으로 훅 들어가서

몸 깊숙히 들어가 이리저리 통통 튕겨다니는 바람에 사람이 쓰러지기도 했다.

그 바람에 우리도 어느날 새벽2시 슬라임이 살아서 우리 속으로 들어와 쓰러뜨리는게 아닌가 하는 무서움에

몇몇 아이들은 조용히 슬라임을 쓰레기통 안으로 던지기도 했다.

그 당시의 슬라임은 결국 유해화학제품으로 분류되어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나의 기억속에는 나름의 귀여운 장난감친구로 기억되어있다.

  

초등학교 중학년 쯤 되었을때는 RC카가 등장했다.

남자아이들은 잘나가는 RC카를 가져서 경주에서 연속1등을 하는것이 놀이터 계주1등 영웅이 되는것 만큼 가치있게 여겼다.

학교에서 큰 길을 건너면 있는 문방구 뒷편의 비밀의문을 열면 RC카 경주장이 있었다.

입장료는 따로 없었지만 이미 RC카 트랙을 차지한 아이들이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텃세를 부리는 탓에

자유롭게 입장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나름 힘있는 남자사람친구가 있어야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구경할 수 있었다.

문방구 한켠이서 아이들은 저마다 RC카를 튜닝하기 바빴다.

속도를 높이기위해 사이즈가 크고 마찰을 줄여주는 휠을 바꾸고, 차량이 날렵해 보이도록 뾰족한 앞범퍼 장식을 달고,

날으는 비행기 느낌이 나도록 뒷면에 날개같은 장식을 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강해보이도록 괜히 해골모양이나 번개모양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였는데, 나는 가끔 그 RC카가 현실로 들어온다면 날렵한 노란색 스포츠카를 타보리라 하고 결심했었다.

문방구 RC카 트랙은 생각보다 꽤 근사했다.

크기도 크고, 완만하다가 급해지는 경사와 급 커브구간도 있었으며, 360도 회전할 수 있는 트랙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대로 토너먼트 조직을 짜서 대회를 열곤 했는데, 별다른 상품이 걸려있지도 않았지만

결승전때는 누가 우승하는지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관전했다.

가끔은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커브 구간에서 원심력을 버티지 못한 차가 산산이 조각나기도 했는데,

그때면 차 주인친구는 조각난 RC카를 손에 쥐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세상을 잃은듯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의 놀이터 놀이들과

드디어 디지털세계가 문을 열었을 때 우리가 즐겨했던 놀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루하루 무엇을 하고 놀지 설레던 그 날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오늘도

조금은 더 행복하고 설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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