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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May 24. 2022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어서

난임 중 오아시스, 단톡방



난임치료 중에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바로 '외로움'이다.

나의 이 먹먹하고 답답한 마음을 그 어디에 토해낼 곳이 참으로 부족했다.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우고 있는 친구,

아직 결혼생각이 없거나, 아이생각이 전혀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세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가끔 친한 친구들이 만나서 밥 한번 먹자는 이야기에

그저 '시험관 시술을 시작해서 시간을 내기 어렵고, 무리해서는 안된다'라고 짧고 간략히 이야기할뿐.

시험관 시술 과정동안 내가 겪어온 수많은 힘겨운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엔

그들의 고된 삶에 또하나의 짐을 얹어주는것 같아 터놓기 힘들었다.

때론 '좀 힘들다.'라고 이야기 했다간, '왜 힘든데? 어떤 과정이 힘들어?'하는 꼬리 질문이 따라와

내 감정 이야기보다 간호사 선생님처럼 시험관 시술에 대해 세세하게 브리핑 해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 중에 난임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단톡방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단톡방 참여자 대부분은 시험관시술 과정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과정에 대한 설명을 추가적으로 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먼저 경험한 분들이 조언해주는 시술 후 관리법이나, 식단조절같은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톡방이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우울함에 대한 공감과 위로였다.

남편이나 친정엄마에게도 다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쏟아낼 공간이었다.

난자 채취 후 겪어야 했던 복통과, 각종 주사와 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버텨야할때,

언제쯤 이 새까만 터널이 끝날지 보이지 않아 하염없이 무너져내리는 날들에 많은 힘이 되었다.

누구나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만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원망이 들 때면

나와 함께 힘든 길을 걷고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난임치료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만날 때 벽을 높게 세우곤 했다.

병원진료로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부족했을 뿐더러,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가벼운 농담조차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마음 속에선 자꾸만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을 한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거야.'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이내 입을 닫고 가식 웃음을 지었다. 약을 복용할때는 몸이 축축 쳐지거나 어지러워서 풀이 죽어있으니 이런 우울해보이는 얼굴과 몸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죄스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사람과의 교류는 적어졌고, 더욱이 혼자 남겨진 기분에 침울했다.

그런 빈 자리를 단톡방이 많이 메꾸어 주었다.

때로는 난임치료에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하는 친구같았다.

아침이면 모두가 굿모닝~ 인사를 하고, 서로의 식사를 챙겼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남편과 다퉜던 이야기, 행복한 기념일 이야기까지 소소하게 나눌 수 있어

단톡방 안에선 조금이나마 숨이 트였다.


누군가 아픈 소식이 있으면, 모두가 함께 울고, 아파했다.

그 누구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같은 마음일 수 있어 감사했다.

임신 성공을 하고, 일반 산부인과 병원으로 전원할 때면 모두가 함께 축하했다.

그리고 곧 뒤따라 가리라, 희망을 불렀다.


누군가 본다면 참 새롭고 신기한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임신'이라는 목표가 인생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우리에겐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는 단톡방이지만,

때로는 마음이 아픈 날들도 많았다.


계속되는 시험관시술 실패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분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버릴때.

바로 그 때 마음이 참 아프다.

저차수 일때는 '나도 곧 될거야.'라는 마음으로 단톡방에서 들려오는 임신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수 있었지만 실패가 반복될 때 마다 임신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나만 안된채로 모두가 떠나가고 나만 남으면 어쩌지. 왜 나만 안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기에,

결국은 떠남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잘 알기에 남은 사람들은 떠나는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다.

시술을 중단하는 것은 시술을 시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겹고 어려운 결심임을 알기에

감히 어떠한 첨언을 할 수 없다.


몇몇 떠나버린 분들을 보며

그들의 힘겨운 마음을 미리 알아주지 못한

나의 그릇이 참 작다고 느꼈다.

어떤 말로 위로해야할지 알지 못해 그저 떠난 빈자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저 온라인 상의 익명의 얼굴일 뿐이지만,

괜찮다면 조용히 다가가 꼬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뿐이다.

난임 치료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지친 마음에 잠시 멈춘 사람들,

그리고 이제 내려놓기로 한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공간에서 더이상 울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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