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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Jun 09. 2022

마지막 난임일기

이제는 임신일기

아주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좋은 소식과 함께하는 마지막 난임 일기를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응원의 댓글들을 남겨주신 덕분에
이번 시험관 시술에서 정말 정말 감사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있는 오늘은 9주 3일차 되는 날입니다.
드디어 초기유산의 위험이 지나갔고,
난임병원에서 처방되는 호르몬 약, 주사, 질정 투여도 오늘로서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약을 먹기 위해 설정해두었던 하루 5개의 알람도 드디어 핸드폰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알약을 털어넣고 질정을 넣는 시간이 끝나니
아침에 숙면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겨 행복합니다.

참으로 뜨겁게 더웠던 지난해 7월 여름, 결혼기념일에 난임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뒤
꼬박 1년여가 지났고, 우리 부부는 소중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참 많이 아팠고, 참 많이 울었고, 자주 다퉜으며, 대화를 하며 서로 사랑을 확인했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1년이었습니다.

웃는 날이 많이 없었고, 웃을 때에도 가슴 한켠에는 아픔이 느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웃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입꼬리와 시선은 바닥을 향했습니다.
누군가는 제게 어두운 기운을 풍기며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다시 환한 웃음이 가득해졌습니다.
눈가에는 웃음 주름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고, 사진 속 웃는 얼굴의 입꼬리도 포토샵 한 것 마냥 높이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밝은 제가 돌아왔다고 기뻐하는 신랑의 사랑스런 웃는 얼굴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한 층 생긴 듯 합니다.

짧은 시간동안의 변화를 보니
난임기간이 정말로, 참, 많이, 생각보다 더, 힘들었던가 봅니다.

첫번째 시험관 시술은 사실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잘 될 것 같았고, 처음 경험하다보니 모든 과정이 새롭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난자 채취 후 입원한 날은 이러다 죽는건가 싶게 아팠지만
잠시 지나가고 나니 우리 아이를 만나는 날에 한발짝 성큼 다가간 기분이어서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불안했지만 견딜 수 없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두번째 시험관 시술은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부작용으로 머리는 언제나 멍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종일 하염없이 울었으며,
불안함이 극도로 높아져 정신을 아득히 놓아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감정의 제어가 안되는 날이 많아 새벽까지  목놓아 울다 지쳐 간신히 잠드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막막한 불안감이라는 까만 터널이 저를 집어삼킨 듯 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작은것들을 원망했습니다.
가슴엔 큰 돌덩어리가 불타듯 들어 앉았고, 일상을 아슬아슬하게 겨우 이어나갔습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걸까, 대체 무얼까, 고민해도 답이 없는 질문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 던져 괴로웠습니다.
그럴때마다 글을 쓰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버티고 보내 아이를 만났습니다.
이식 10일 후 4주차 첫번째 임신 확인을 하고,
5주차 두번째 임신 확인과 자리잡은 아기집을 보고,
6주차 난황과 작은 아기를 확인하고,
7주차 심장 박동소리를 처음 듣고,
8, 9주차 심장 박동소리와 성장속도를 확인하는 5주간,
병원을 갈 때 마다 설렘과 불안이 뒤섞여 떨었습니다.
5주차 새벽에는 갑작스런 하혈로 인해 멍하니 울며 병원에 갔고
절박유산 진단을 받고 집에서 꼬박 누워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임신만 되면 모든게 끝인줄로만 알았는데,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이상은 없는지 많은 검사를 하겠지만
이제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어주며 행복한마음으로 지내보려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수많은 난임부부 분들이
아직 힘든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이 참 무겁고 아픕니다.
이 모든 일들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본인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견딜 수 없이 아프고 힘든 날에는 펑펑 울어 버리세요.
때로는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햇빛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르실 수 있길,
아주 잠시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들이 여러분들께 허락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곧,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여러분들께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잘 될거예요.
모든게 잘 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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