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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볕 Nov 20. 2019

당신은 '취향 고집'이 있나요

때론 무너지는 ‘취향 고집’


  몇 달 전, 왼쪽 귓불 세 번째 자리에 귀를 뚫으러 액세서리 집에 들렀다. 그곳의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지나가는 동시에 나를 잡아끌었고 예쁜 귀걸이가 많다며 호객했다. 어디서 뚫어야 할지 고민했던 나는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가게에 들어섰다. 귀걸이를 종류별로 보여주는데 나는 "혹시 은 볼 귀걸이도 있어요?" 물었다. 뚫기 전부터 생각한 모양의 심플한 귀걸이가 있었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은 그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없고 큐빅 이뻐 그걸로 뚫어"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였는데 그렇다고 다시 그 장소를 벗어날 용기도 없었다.


 "아 그래요......?" 그러자

 "큐빅도 이뻐. 사람들 많이 해"

" 네...... 그럼 그걸로 할게요."


다수의 귀 뚫음 경력이 있어 보이는 듯한 아주머니는 내 귀를 소독하더니 내 귓불에 어느 순간 반짝이는 큐빅 귀걸이를 달아주었다.


"거봐. 하니까 이쁘지?"

정말 괜찮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튀지 않았고 무난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머니는 나에게 충고의 한마디를 건넸다.

"너무 그렇게 좋아하는 걸 고집하지 마"

그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확고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내 고집이 이렇게 굳어졌을까. 취향은 어디서부터 시작했고 변하고 있었을까.


노을지는 테라스에서


취향의 변화와 고집 사이


  평소 무던하며 튀지 않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20대 초반에는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에 볼드한 액세서리들까지 그것이 이뻐 보이는 줄만 알고 모든 걸 몸에 얹곤 했다. 내게 어떤 것이 어울리는 줄도 모르고 그저 남들을 따라 하기 바빴는데 그 덕에 진한 화장에 집중하는 시간도 많았다. 여느 또래들처럼 남들에게 이뻐 보이는 여자, 인기 많은 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간혹 "이쁘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내가 나를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고, 모두들 인사치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런 부류의 여자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겁지가 않아졌다. 매번 비슷한 대화 주제들과 남자들,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들을 이해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을까. 남들한테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나를 알아야 나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점점 그렇게 투명하고 담백한 것들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어느덧 서른이란 나이가 돼버린 지금은 불편하고 어려움을 감수하기보다는 버리는 것이 편해졌다. 인간관계도 그렇듯 힘들게 곁에 두기보다는 인연을 끊고 사는 게 쉬워진 듯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를 위해 남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행동에 나도 상처 받기 싫어 원래 사람 사는 인생이 그러한가 보다 무뎌져 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 이야'하고 정의하기 시작했다. 또는 방어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정의하며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마음을 더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단단해져 굳어만 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래야만 행복해지는 걸까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사람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궁금했다. 선뜻 혹은 내 맘대로 행동을 하면 그것을 꺼려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그 선에서 멈춰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는 것이 서로 편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난 투명하고 담백한 것, 진짜인 것, 깊은 것을 좋아하는데 혼란스럽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때로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의 취향은 멈춰있었고 다른 어떤 것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성향상 듣기는 했지만 선택적으로 흘려버렸다.


  우리는 서로 고유의 취향을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난 이런 게 좋아"(그러니까 알아둬), "난 이런 편이야"(그러니까 왈가왈부하지 마) 류의 '취향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함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본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것처럼 상대에게 본인의 취향만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너무 고집부리지 않아도 한 번은 해봐도 좋은 것들이 있을 텐데 한 번은 들어봐도 괜찮은 것들이 있을 텐데. 반짝이는 걸 싫어하는 내가 큐빅 귀걸이를 줄곧 몇 달 내내 달고 다니는 걸 보니 분명 굳어진 취향도 내 의지만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와 타인 모두를 들여다보며 취향이 고집이 아닌 '괜찮은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번 달려보는 주말의 소소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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