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여행리포트
여행을 하다보면 번뜩이지 않고 발따라 길따라 다녀야 할 때가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대로, 냄새에 이끌려 동네맛집을 발견할 때도 있고, 괜시리 가고싶은 골목으로 갔다가 이상한 곳으로 실패할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가울 때도 있고, 때아닌 친절함에 감사함이 몸에 베길 때도 있다. 여행이라는 것이,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계획하고 모처럼 회사에서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적극적인 기획자가 되어, 나만의 특별한 그 순간들을 위하여 기획하고 또 가꾼다. 예상되는 여행에서 예상되는 즐거움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조촐하게 시작한 여행의 계획에서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에 반해 나도 모르게 발견해낸 어느 맛집의 새로움을 누릴 것인가.
내가 예전 도쿄의 오다이바에 방문했을 때 였다. 미니의 자유의 여신상으로 유명했던 그 곳은 일본에서 제일 자랑하는 인공섬으로 되어있다. 음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의 마린시티 정도 느낌일 거다. 최신식의 빌딩과 건물들이 즐비하며 대형백화점, 잡화점, 푸른 잔디와 공원조각, 깔끔하기 그지없는 고급섬 같았다. 내가 도착했던 그곳은 하필이면 일본인들이 독일인들을 따라하며 스스로 축제를 만들어낸 '오다이바 옥토버 페스트' 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독일 맥주축제 비스무리하게 만든, 그들만의 축제였다. 호기심이 생겨 발길이 멈추지않았다. 늘 이런 여행지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로써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그들과 같이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한국에서 도쿄 여행의 계획지에 '오다이바' 가 포함되어있었지만, 이런 축제자리가 있을 거라곤 전혀모르고 갔었다. 이런게 바로 여행아닐까?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만남. 그 속에 있는 나.
맞다.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다
일상의 지루한 반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7년차 직장인, 10년차 부장님. 20년 차 자영업자. 사실 이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루틴을 우리들 모두 살아간다. 그러나 20년을 길게 보았을 때,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만큼의 예기치 못한 즐거움과 맞딱드리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여행을 자주 떠난다. 얼마 전에 떠났던 경주의 양동마을에선 (1박2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함) 나보다 더 큰 강아지를 만났으며, 그 한옥숙소의 호스트님께서 너무나 친절하셔서 정말 몸둘바를 몰랐다. 물론 오래된 한옥 집이라 밤10시 지느러미를 만났던 건 큰 불행이었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늘 나에게 리프레쉬되는 영감과 힐링을 가져다 준다.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주고, 현재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과거에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못했길레 지금 이러고 있는지, 또 무엇을 경쾌하게 잘해왔길레 이렇게 잘하고 있는지, 애써 책상에 앉아 정리하고 회상하지 않더라도, 여행 매 순간의 골목골목을 해집고 다닐때마다 문뜬 불현듯 과거와 현재의 나, 미래에 내가 해야할 일 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래서 기록가 인 것 같다. 종이로 쓰는 기록가인 동시에, 여행지에서 불쓱 나에게 제안을 해오는 여행의 기록말이다.
늘 여행지에 가면 기록을 한다. 어느 도쿄의 시내 한복판의 카페에 혼자 앉아 펜과 종이를 꺼내들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곳에서 펜과 종이를 드는 것 만큼 희열은 없는 것 같다. 요새 들어 부쩍 브런치글을 많이 적는 나에게 (예전의 매력에 관한 글을 연재했었을 때 빼고는 이렇게 많이 적기는 처음이다) 지금 이렇게 책상에 앉아 여행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타이핑을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일 것이다.
여행이란 지난날의 여행들을 다시 회상하고, 그때의 그 순간의 즐거웠던 감정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기록을 한다는 것.
(오늘은 하루쯤 쉬어가는 여행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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