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재는 스스로를 ‘비주류 연극인’이라 칭한다. 그는 사회학을 공부했다. 시작은 사회운동이었다. 2013년 첫 연극 작업은 사회운동 흐름에서 기획한 것이었다. 7년째 복직투쟁 농성을 하고 있는 콜트콜택 해고노동자들과 혜화동1번지에서 ‘구일만 햄릿’을 올렸다. 딱 9일만 공연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당시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며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가들에게 연극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연극은 수단이었죠. 연극을 통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고 나름의 연대를 고민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인지 ‘연극인’이라는 정체성은 저에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喜(희)_ 사람과 사람 사이, 맥락의 중요성
“연극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공연이 끝나면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다들 각자의 자리로 가잖아요. 비록 헤어지지만 우리 사이엔 어떤 맥락이 생긴 거죠. 사실 제가 공연 보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인데, 맥락이 생긴 사람들의 공연은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의 맥락이 읽히니 그런 것 같아요.”
신재의 본명은 권은영이다. ‘구일만 햄릿’을 올린 후부터 수단으로서의 연극 작업이 점차 늘었다. 당시 성북문화재단에서 일하면서 공연 활동을 병행했는데, 다른 활동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재라는 이름을 정했다.
“불에 타고 남은 흔적인 ‘재’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여기에 어머니의 성을 따서 ‘신재’라는 이름을 지었죠. 공연이 주는 열기가 허황됐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것에 비하면 과장된 열기 같다고나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공연이 가진 미덕은 ‘사라진다’는 거예요.”
사라지고 남은 흔적, 그 흔적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하다. 신재는 허황됨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연극이 사회를 말한다고 한들, 실제로 영위하는 이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모두가 허상일 테니 말이다. 그는 2016년부터 장애와 비장애 경계에 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관점으로 기존 극장을 바라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모색했다. ‘장애극장’(2016) ‘불편한 입장들’(2017) ‘나는 인간’(2018)에서는 관객이 직접 줄자를 들고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공간의 넓이를 체크하는 워크숍을 펼쳤다. 극장에 오기까지 장애인들이 어떠한 벽을 마주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는 의도였다.
그렇게 의식한 문제들을 신재는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2017년에는 ‘연극의 3요소’ 공연 대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상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공연을 본 대다수의 관객은 공동진정인으로 참여해줬다. “이와 관련된 실태조사 조차 없이 당장은 정책적 검토가 어렵다”라는 답변을 받았고, 그는 직접 관련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일환으로 2018년에는 15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걷는 인간 -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조사’를 실시해 다시금 진정서를 냈다.
“연극은 힘이 없어요. 그냥 공연일 뿐이에요. 뭐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거죠. 계속 싸우는 사람들이 그 시간 동안 연극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역할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이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저에게는 오만이에요. 경계해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怒(로)_ 긴장감이 주는 편안함
장애인을 향한 관심은 2011~2012년경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부터 깊어졌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는 장애인 해방 운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곳이다. 처음에 갔을 때는 그 공간이 지닌 에너지에 끌렸다. 무엇보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관계 맺는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다. 서로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니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참 이상하게도 화가 많다. 얼굴을 볼 수 없는 공간에서 쉽사리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를 준다. 우리 사회가 점점 타인에 대한 조심성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악성 댓글로 힘겨워하던 연예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가 잇따라 전해졌다.
“‘장애인 창작자와 함께 작업하면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뭐 어려울 순 있죠. 워낙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만나서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을 밟아요. 장애인 창작자들을 만나며 알게 된 건데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는 되게 많은 것이 생략됐어요.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단계가 필요할 텐데, 대다수는 겉모습만 보고 단숨에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잖아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는 ‘내가 실수로 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조심성이 있는 곳이다. 혹여나 누구에게 상처를 줬다면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哀(애)_ 제로셋 버튼을 누르다
현재 신재는 제로셋(0se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제로셋’이란 이름은 전자저울 버튼에서 빌려왔다. 무게를 측정할 때 무게를 0으로 만들고 바라보듯, 제로셋 프로젝트는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를 저울 위에 놓고 제로셋 버튼을 눌러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2017년 서울변방연극제에 ‘연극의 3요소’를 올리며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 중이다.
“변방연극제에서 팀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친구와 통화하는데, 마침 친구가 전자저울을 보고 있었어요. 제가 팀명을 지어야 한다니까 제로셋 버튼을 얘기하는 거예요. 의미가 좋아서 바로 결정했죠.”
제로셋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팀’이다. 안정적인 극단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도 재정과 공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제로셋은 프로젝트가 생기면 관심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 할 말을 품은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한다.
지난 12월, 혜화동1번지 2019 가을페스티벌에 올린 ‘배우는 사람’은 고주영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배우는 사람’은 연극의 필수 요소인 ‘연기’와 연기를 수행하는 ‘배우’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출연 배우들은 자신의 일상에서의 창작 과정을 관객과 공유한다. 배우가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느끼도록 했다. 특이점은 세월호 유가족이자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활동한 이미경·김성실 배우가 무대에 섰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 울 뻔했어요.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말들이 가슴에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어요. 감동적이거나 슬픈 감정은 아닌데요. 눈물이 날 것 같은 때가 있어요. 물론 울진 않았죠.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는 포지션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냉정한 편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신재는 현재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이다. 2019년 혜화동1번지는 7기 동인 출범 페스티벌로 ‘2019 세월호 제자리’를 선보였다. 이번 가을페스티벌에서도 신재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혹자는 왜 아직도 세월호인지, 왜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져야 되지 않느냐 질문하기도 한다.
“세월호를 다루겠다는 접근은 아니었어요. 배우가 가진 이야기,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에 주목한 거죠. 한편으로는 되묻고 싶기도 해요. 세월호를 어떻게 보고 있기에 이제는 다르게 얘기해야 된다고 하는 거죠? 너무 쉽게 이해해버리는 건 아닐까요? 전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죠. 그래서 되묻고 싶어요. 다르게 봐야 한다면, 대체 어떻게 보면 좋다는 걸까요?”
樂(락)_ 나를 구성하는 것
“기쁨은 순간적인 느낌이고, 즐거움은 어떤 상태인 것 같아요. 저는 희로애락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즐거움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을 때가 많죠. 즐거움이 상태라고 한다면, 그건 혼자 만들어낼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환경에서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무방비 상태가 아닌 거니까 스트레스를 받겠죠.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타인 앞에서 긴장을 하고 있어야 그 관계가 오래간다고 봐요.”
언제부터 그는 세상과 사람, 소수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질문을 던지니 신재는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입을 뗐다.
“어릴 땐 아니었던 것 같네요. 대학에 들어와서 집회를 가고 연대를 했어요. 그런 후에 남는 건 죄책감이었죠. 타인에게 마음을 동요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다시 편한 상태가 되니까요. 나라는 사람은 사실 내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는 타인을 만날 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제 작품의 주제는 타인으로부터 온다고 해요. 사실 저는 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내가 지금 누굴 만나고 있지, 어떤 주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이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것들이 저를 구성한다고 생각해요.”
대개 문턱을 없애는 것을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배리어를 없애도 여전히 배리어는 남아있다. 신재는 ‘있음에도 없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배리어를 명확히 의식하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제로셋 프로젝트는 ‘배리어 컨셔스(barrier-conscious)’*를 추구하며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눈앞에 있는 장벽을 어떻게 인지하여 어떠한 움직임을 쌓아갈지,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다.
*배리어 컨셔스(barrier-conscious)는 ‘소셜아트-장애가 있는 이와 예술로서 사회를 바꾸다’(탄포포노이에(민들레의 집) 편저, 오하나 역)에서 인용했다.
글_ 장혜선
사진_ 황필주(studio 79)
+ 월간 <객석>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