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벌거벗겨진 나
내 기억 속에 전박찬은 오묘하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부분 외로움에 젖어 있다. ‘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는 은밀하고, ‘에쿠우스’의 알런은 원초적 욕망에 휩싸여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그는 유독 다시금 곱씹게 되는 그런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喜(희)_ 연극이 좋았던 소년
전박찬 자체가 그러한 사람이기에 그런 역이 들어오는 걸까. 혹은 그러한 사람이어서 그런 역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생각해봤다.
“글쎄요. 사실 제 핸디캡이기도 한데요, 처음 대본 볼 때는 어떤 작품인지 단번에 파악을 못해요. 보통 연습하면서 무슨 작품인지 알아가는 편이죠. 작품 선택에 있어서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어떤 인물이나 대사가 매력적이면 선택하는 거예요.”
작품에 대해 풀리지 않던 고민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해결될 때, 그는 기쁨을 느낀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무대는 ‘7번국도’였다.
“어릴 때 클럽에 다닌 적이 있어요. 빛과 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막 춤을 춰요. 춤을 추는데 어떤 낯선 사람과 호흡이 딱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밤새도록 춤을 추겠죠? 연기도 똑같아요. 상대 배우와 호흡이 딱딱 맞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참 좋아요.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7번국도’가 그랬어요. 이리 배우와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는데 정말 잘 맞는 거예요. 다들 커튼콜 할 때가 제일 기쁘지 않냐고 묻는데 오히려 그때는 부끄럽거나, 숨고 싶거나, 술 마시고 싶은 순간이 대부분이죠.”
전박찬은 쑥스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범생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학생. 그런데 중학교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성격이 변했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대학로에서 일주일에 두 편씩 연극을 봤다. 어린 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교복을 입은 소년 전박찬은 무작정 티켓박스에 가서 “돈이 없는데 이 연극이 너무 보고 싶다”고 졸랐다. 연극을 보고 싶다는 열망은 소심한 그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죠. 대부분 성적에 맞춰서 진학하는데, 마음에 드는 학과가 없는 거예요. 그냥 연극이 너무 좋으니까, 대학로에서 연극을 배워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怒(로)_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전박찬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한 시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적 있는 연극 교육’을 표방했다. 1학년 때는 전공 수업으로 사물놀이와 한국무용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있었다. 혼돈의 시대였다. 대학로 스튜디오 76 공연장 위에는 ‘뮤지컬, 뮤지컬, 뮤지컬’이라는 아홉 글자가 나부꼈다. 학교에서도 ‘연극을 하면 실패, 뮤지컬을 하면 성공’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전박찬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관두겠다고 하니까 무대미술과 선배가 타과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유했어요. 조명 관련 수업을 들었습니다. 자연스레 공연 스태프로도 참여했어요. 하루만 도와줘도 10만 원을 받았죠. 아무래도 학생 신분일 때는 그 돈이 크잖아요. 고맙게도 선배들이 잘 이끌어줬어요. 이후 휴학을 하고 전문 크루에 참여했어요. 한 달에 20일 정도를 무대를 설치하고 철수하는 작업을 하면서 지냈어요.”
지쳐갔다. 밤샘 작업이 지속될수록 체력적으로 무리가 왔다. 결국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을 관두겠다고 결심한 그는 와인 스쿨에 들어가 술을 배웠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취업 면접을 보다가 깨달았다. ‘아, 나는 천성 연극인이구나.’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배우 전박찬’의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전박찬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화가 날 때에는 살림을 하고, 향초를 만들고, 여행을 떠난다. 배우라는 직업이 참 그렇다. 바쁠 때에는 끼니를 못 챙길 정도로 정신이 없다가, 작품이 끝나면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 다음 작품이 없다는 불안감에 괴로울 때에도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요즘은 ‘맨 끝줄 소년’을 앞두고 클라우디오를 내면에 담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소리도 듣지 않고 온전히 마음에만 집중하는 것. 그가 영유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시간과 맞닿아있다.
哀(애)_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때는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그을린 사랑’을 공연하던 시기였다. 공연이 올라간 한 달의 기간 동안 전박찬은 매일같이 극장의 지하 화장실에서 울었다. 배우가 무엇인지 미처 깨닫기 전이었다.
“매 공연이 긴장돼 설사병을 심하게 앓았어요. 제 마지막 장면이 끝나면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어요. 커튼콜 옷으로 갈아입고 명동예술극장 지하 화장실 첫 번째 칸에 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거의 매일을 그랬죠. 설사병이 다 나아도 습관적으로 그랬어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무대를 오롯이 즐기기가 이리도 어려울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김동현 연출이 그에게 말했다. “연극은 즐겨야 돼!” 그때부터였다. 누군가 연기를 못한다고 손가락질해도 개의치 않게 됐다. 그제야 정말 배우가 됐다.
“한 일주일 전인데요. 대사를 하다가 너무 슬퍼서 30초 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적이 있어요. 신작희곡 페스티벌 ‘그리고 여동생이 문을 두드렸다’라는 작품이었죠. 퀴어 청소년이 주인공인데요. 이 인물이 가진 매력이 탐나서 작품을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이 사회적 약자가 받는 차별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어요.”
혹여나 자신이 연기하는 이 아이를 관객이 불쌍하다고만 여길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 인물이 사회적 약자라는 걸 인지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한 인물은 온전히 배우의 연기로 인해 어떤 사람으로 정의되어 진다.
“요즘도 자주 꿈을 꿔요. 대부분 악몽이죠. 무대에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안 입고 있거나, 무대 위에서 대변을 보는 꿈이에요. 연기를 할 때는 내가 다 벗겨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樂(락)_ 그리하여, 연극의 힘
요즘 그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5년 초연한 ‘맨 끝줄 소년’이 어느덧 세 번째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오른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 감각적인 연출로 초연 때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원작을 2015년 김동현이 연출했다. 2017년 재공연에선 손원정이 연출을 맡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끌어올리며 초연의 명성을 이었다. 세 번째 공연을 앞두고 손원정 연출은 전박찬에게 “삼연인데도 그렇게 즐겁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첫 공연 때부터 함께한 배우들과 또다시 함께하니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잔인한 건 클라우디오는 배우가 즐길 수 없는 인물입니다. 누구는 클라우디오를 보고 영악하다고 하지만,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보통의 소년이에요. 우리 모두 조금씩 결핍이 있잖아요. 삶을 사는 존재는 누구나 많이 외롭죠.”
벌써 삼연이지만, 그는 꼭 두 번째 공연에 임하는 기분이다. 2015년 초연 이후 김동현 연출가는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김동현의 아내이자 초연 때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한 손원정이 2017년 재연을 맡았다. 큰 아픔을 겪었기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재연을 원했다. 그리하여 2017년 공연은 초연 때보다 더 뜨거웠고, 굉장히 뜨거워서 도리어 눌러야했다. 그는 삶의 고민을 던져주는 연극이 좋다. 하늘에 있는 김동현 연출이 언젠가 그에게 말했다. 어떤 작품에서도 관객은 발생한다고. ‘말들의 무덤’을 공연했을 때의 일이다. 한 고등학생 관객이 극장 앞에서 전박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전쟁은 알았지만, 양민학살은 몰랐다며 고마움을 전하더라.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고민을 던져주기 위해 이리도 치열히 연극하고 있다는 걸. 보편적인 연극의 힘이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한 가지. 전박찬이 보여주는 연극의 힘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글_ 장혜선
사진_ 황필주(studio 79)·예술의전당
+ 월간 <객석>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