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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May 09. 2024

라디오 작가상을 받고 나서..

근데 왜 연재만 올리면 구독자가 줄어들까?

몇 년 전 절친이 12월 31일 밤 12시쯤 문자를 보냈다. 밤 10시면 쓰러져 자는 친구라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밤늦은 문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늦은 시간에 오는 연락은 왠지 좋지 않은 소식일 것 같아 겁부터 나는 나이인지라. 그래서 급하게 카톡을 확인한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지금 연예대상 시상식 보고 있는데 작가상 수상하는 걸 보니 네가 생각났어. 내 친구. TV에 나와서 수상 소감하는 소원을 품어 봅니다.”
나조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40대에 방송작가를 시작하고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6개월에 한 번씩 개편을 하는 방송국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정글이었고 나는 그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였다. 그래도 그곳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주말 프로그램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변변치 않은 방송작가로 내일이 불투명한 그때, 그래서 새해가 오는 것조차 반갑지 않았던 그때, 친구에게서 그런 문자가 온 것이다.


방송작가로 상을 타고 TV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내 모습. 내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허황된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을 할 수 있는 건, 친구가 이 바닥의 생리를 알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꿈이라 해도, 나조차 꿈꾸지 않고 희망하지 않는 걸 누군가 대신 간절히 바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울컥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을 것 같던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지난 4월 23일. 한국피디연합회에서 주는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한 것이다.
상이라는 것이 혼자만 잘해서는 절대 받을 수 없다. 내가 받은 라디오 부문 작가상도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피디님이 정성 들여 출품을 한 공이 제일 크고, 운이 좋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상이 내게로 왔다. 수상소감을 준비하면서 몇 년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수상한 다음 날, 친구를 만났다.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친구에게 전했다.
“네가 내 대신 꿈을 꿔준 덕분이야.”

한국피디대상 라디오작가상

정글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존에 실패해 방송국 언저리를 돌고 돌다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기적 같다. 글을 쓴다는 일이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애매한 능력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잘한 게 있다면 계속 썼다는 것이다.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리며 운이 좋아 에세이 책을 세 권 냈고, 지금은 소설에 도전하고 있다.


드라마를 쓰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소설 기획을 한 게 작년 가을. 그때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해 올해 초부터 연재를 하고 있다. 소설은 첫 도전이라 쓰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때가 많지만, 의심스럽더라도 일단 쓰면서 의심하고 답을 찾아가자는 생각에 연재를 신청했다. 그래도 기존의 독자들이 있으니 그분들은 봐주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월요일 연재소설을 올리기만 하면 구독자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주 연재를 올릴 때마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의기소침해졌고, 유지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구독자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도 쓰려왔다.
어지간하면 구독을 끊진 않을 텐데 어지간하지도 않은 수준인 걸까. 아니면 에세이를 원했던 분들에게 소설이 너무 난데없다고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답을 찾지 못한 채 ‘때려치울까?’와 ‘그렇다고 안 쓰면 뭐 할 건데?’ 사이를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가는 중이다.  


책을 출간해도 내 인생은 크게 변하는 게 없고, 글만 써서는 밥을 벌어먹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그나마 있는 독자마저 떨어져 나가는 마당에 그래도 계속 쓰기 위한 동력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한다.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한계에 매일 부딪히며 주위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가 죽으면서도 써야 하는 이유 말이다.
출간을 하며 대박을 꿈꾸기도 했지만, 사실 대박보다는 소박중박이어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의 언어를 갖고 할 이야기가 계속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
누군가가 대신 꿈꿨던, 허황되어 보였던 그 꿈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내가 쓴 이야기도 언젠가 사랑받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면서 오늘도 쓰고 있다.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훨씬 나으니까.
선물 같은 프로그램을 만나고, 또 어쩌다 상을 받게 되니 리셋이 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당찬 용기도 생긴다. 그래도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두 명의 구독자가 늘었다. 소설을 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게 뭐라고 몹시 기뻤다. 그러다 이번 주 올리고 나서는 여섯 명이 사라졌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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