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어땠냐면요
2023년 5월 10일.
'마켓노드'라는 논알코올 전문 온라인 플랫폼 브랜드를 론칭하였습니다. 복잡한 고민의 시간과 결국 결말이 있는 결정에 대해 주저하는 시간을 싫어하는 저는 말 그대로 '저지르듯'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 보았을 때 시작을 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업에 목이 말라 있었어요. 이제 2일 뒤면 창업을 한 지 만 1년이 됩니다.
브랜드를 만든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빈티지 테이블웨어 수입 및 판매를 진행했어요. 나름 갖고 있던 마케팅 경력을 토대로 다른 수입 브랜드와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잡은 뒤 브랜드 철학부터 네이밍, 비주얼 톤과 무드를 잡아갔습니다. 노코드로 사이트 직접 제작, 오픈하고요. 세일즈 전문가였던 남편(당시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손익과 소비자 판매가 세팅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고만 남긴 채 브랜드를 닫았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며 마케팅이나 상품 소싱에 게을러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직접 택배 작업부터 모든 자잘한 업무를 혼자 하다 보니 이른바 '현타'가 느껴졌습니다. 책상 앞에서 하던 마케팅의 세계와 사업은 현저히 다른 영역임을 느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못 할 답답함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이대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도해 보지도 못한 채 나이가 들고, 현실에 떠밀려 시간이 가는 걸까 라는 생각에 우울감만 커졌습니다. 그렇게 창업의 싹을 다시 틔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더 본격적으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더 깊고 넓게 파고들었어요. 그렇게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고 마켓노드를 론칭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1년 사이에 저는 연봉 n억에서 연봉 0원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팍팍해졌죠.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만 제출하면 억 단위로 턱턱 승인되던 신용대출은 이제 단 5백만 원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부모님 생신 때 용돈 드리기도 망설여지는 제 자신이 싫었고요. 사업 자금을 위해 나이 30 넘어서 아빠의 손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생각과 고민에 잠은 더 못 잤어요.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늘 노트북이 함께입니다. 택배 작업을 손수 하면서 종이에 손을 베이는 일도 자주 있고요. 오랜 시간 노트북 작업으로 터널 증후군과 디스크, 두통에 시달립니다. 우리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마켓노드를 소개할 때면 스몰 브랜드로서 가지는 애환도 종종 느낍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커서 혼자 운 적도 많아요. 누군가 1년 간 어땠냐 저에게 물었을 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참 즐겁기만 하다고 답했다면 그건 모두 거짓말일 겁니다.
만약 내가 창업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저는 어떤 비즈니스로든 한 번쯤은 창업을 하는 것이 제 인생의 숙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 창업을 안 했다면, 분명 지금 또는 1년 뒤, 10년 뒤에라도 창업을 했을 거예요. 왜 저 스스로가 이렇게나 사업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 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살고 싶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내가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누군가 소비하는 것을 보며 제 인생의 쓸모를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업은 제 숙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1년 전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지금쯤 정신적으로 꽤 많이 우울하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어땠는데?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를 계속해서 곱씹게 됩니다. 창업 후 1년 간 제가 겪은 세상은 '무수한 연결'이더군요. 마켓노드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운영하면서 얻었던 수 겹의 고민과 생각 그리고 인연들이 얽히고설켜서 제 삶의 파이(pie)를 크게 키워 주었단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준비 중인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해 그 경험과 시간의 가치를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에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산업이나 형태가 마켓노드와 아예 다르지만, 비즈니스의 기본 골조와 소비자 가치, 수익 모델 등은 마켓노드에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 그리고 비즈니스를 행할 때의 제 자신의 성향 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팀원들 역시 모두 마켓노드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멤버들입니다.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처음부터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걸." 하지만 지금 저희의 생각과 고민은 과거 우리가 만들어 두었던 점(dot)들이 연결(connect)되어 만들어졌습니다. 마켓노드 - 저의 첫 창업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의 시간은 우리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1년 동안 이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행운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미래가 기대됩니다.
마켓노드를 창업할 때는 설렘으로 가득 차서 여러 시도를 해 볼 수 있음에 기대가 되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비즈니스는 조금 더 깊고 단단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1년 전보다 조금은 자란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기대돼요. 다가올 날이 기대가 된다는 건, 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연히 마켓노드도 열의를 다해 이끌어 나갑니다. 다만 1년 간의 저의 시행착오들을 토대로, 덜어내야 할 부분은 덜어내고 강화할 부분에 집중하면서 노드만의 균형과 전략을 갖춰가며 그 안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을 준비 중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기대됩니다.
확신은 없지만 자신은 있습니다.
성공을 판단하는 질문들에 대해서, "저는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될 것이라 100% 확신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 100% 확실한 것이 있을까요?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결론을 정해두고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년 간 느낀 건, 사업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할 때든 확신보다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흐릅니다. 초기에 내가 '확신했던 것'들은 1년, 아니 몇 개월 안에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변화와 불확실성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더 나아가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자신(自信)', '자신감(自信感)'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확신은 아집이 되기 쉽지만 자신은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나 자신,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이 저에게 용기와 의지를 원천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확신은 없지만 자신은 있습니다.
1년 후 저를 돌아보니
직장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폭신한 잔디 위, 지면 바로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사업가로서는 꼬마 나무만큼 키가 자란 듯합니다. 덕분에 조금 높아진 눈높이로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가지도 치고, 잎도 내면서 나름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끔 잔디의 폭신함이 그립기도 하지만 더 먼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나무가 아직은 더 좋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또 1년이 흐른 뒤의 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글을 다시 보면 '오만한 생각'이라며 이불킥 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그런 보이지 않는 미래가 저는 궁금하고 재미있습니다. 1년 뒤에는 이 글과 미래의 저의 생각을 비교하며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새로이 느낀 것을 체크해 보아도 좋겠네요. 다시 1년 뒤의 저 자신이 기대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소김 | 브랜드 빌더 Brand Builder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팀에서 디지털 마케터로 약 6년간 근무하다, 현재는 논알코올 큐레이션 플랫폼 <마켓노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