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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Feb 20. 2020

머리에서 종이 울리진 않았어요

결혼할 남자가 따로 정해져 있을까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됐다. 무슨 채널의 무슨 방송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성 진행자가 영화평론가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영화 <결혼이야기>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모양이었는데 대뜸 여성 진행자가 평론가에게 묻는다.


"결혼할 사람을 보면 머리에서 종이 울린다던데, 사실일까요?"


질문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여성 진행자는 미혼이고, 결혼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평론가는 그런 질문을 하는 진행자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고는, 대답한다. 결혼은 그냥 연애의 결과일 뿐인데 그럴 리 있겠냐고.  


그런데 나도 그런 비슷한 질문을, 결혼하지 않은 나의 친구들에서 꽤 자주 들었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청첩장을 주러 만난 친구에게서, 또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원하지만 뭔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친구에게서. 그녀들은 하나같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결혼할 사람을 처음 만나면 딱 이 사람이다, 하고 안다던데 진짜로 그래?"


그 질문은 마치 "응 진짜 그래"라는 대답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어떤 기대가 담겨있었다. 인생에 아주 절대적인 남자가 따로 정해져 있고, 자신은 아직 그 사람을 못 만났지만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어떤 기대감.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딱 하나였다.


"아니, 그런 건 없어"


 왜 언제부터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다. 결혼할 상대를 만나면 머리에서 종이 울린다던지, 첫눈에 알아본다던지 하는 류의 말들. 그건 마치 선풍기를 머리맡에 켜 두고 자면 죽는다는 이야기처럼, 허무맹랑하면서도 너무나 오랜 시간 구전되어온 이야기라 요상하게 믿음이 가는 속설 같았다.


결혼을 한 사람으로서 나의 결혼 과정을 되짚어본다. 어떤 감정이었었더라... 나는 남편을 보고 '아 이 사람이야!' 하는 불꽃같은 사인이 느껴졌다기보다는 흐르는 강물처럼 아주 유유하고도 편안한 믿음이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꿈꾸던 결혼이란 이런 것?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연애시절 나에게 남편은 함께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깊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 파란만장한 연애를 겪어와서인지, 결혼은 이런 사람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잔잔히 파고든 믿음이었다. 만약 조상들이 이런 감정을 두고 '머리에서 종이 울렸다'라는 말을 지어낸 거라면 조금 억지인 면이 있지만, 자신과 결혼한 상대를 그만큼 절대적인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던 염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어떤 절대적인 상대가 자신의 인생에 미리 점지되어있어서 그런 말이 생겨난 게 아니라, 거꾸로 결혼을 한 다음 그 과정을 미화시키다가 파생된 속설이 아닐까. 한마디로 로맨틱한 허언이랄까. 이미 결혼을 한 뒤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그게 허언이든 뭐든 남들은 믿을 수밖에 없을 터.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그동안 연애를 하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남자는 없었던 것 같다. 한 번씩은 다들 만나는 상대와의 결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지 않나. 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늘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그들과 늘 결혼이라는 결말에 다다르고 싶어 하는, 지극한 순애보이자 사랑꾼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숙한 합의는 나 혼자의 갈망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기에 단지 매번 일장적인 소망에 그쳤을 뿐이다. 어떤 남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고, 한 때는 결혼할 운명이라고 여겼던 사람도 이별 앞엔 그저 지나가는 연인일 뿐이었다. 라디오에서 영화평론가가 피식 웃으며 말했던 것처럼, 결혼은 단지 어떤 사건(=연애)의 결과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던 거다. 점지할 수도, 뛰어난 육체적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도 없는, 그저 연애의 산물이자 우연의 결실일 뿐인 것.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결혼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어떤 책에 쓰여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릴 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그게 당연한 거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살면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오래 사랑할 사람. 그것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열등한 표현이 아니었음을. 오히려 '많이' 사랑하는 것보다 '오래' 사랑하는 것이 더 견고하고 커다란 감정이라는 것을. 아주 다행히도 나는 정말 한결 같이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했으니, 성공이라고 봐야 할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자신에게 질주하는 용식이에게 그랬다. "우리, 이 만두 같은 사이로 지내요. 만두는 수증기만으로도 익잖아요. 그렇게 따뜻하게, 오래 가요." 불에 직접 갖다 대야 익는 것이 아닌, 수증기로 익히는. 그러니까 동백이가 말한 것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오래오래 따뜻한 그 무엇의 감정을 나는 결혼에 비유하고 싶다.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이 바로 결혼할 사람이라고. 


사랑이 아무리 커도 갈등과 오해가 난무하는 관계가 있다. 반면 이게 위대한 사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지만 깊은 사랑도 있다. 둘 다 사랑은 맞다. 하지만 결혼은 정말로 덜 다투고 오래오래 행복과 안정을 공유할 사람을 택해야 하는, 연애와는 또 다른 차원의 선택이라는 것.


그러니 언젠가 또 미혼 친구들이 내게 이런 귀엽고도 황당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되려, "그런 종소리가 안 나도 묵직한 안정감이 전해지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과 결혼해"라고 하겠다. 어떤 남자하고는 아무리 애써도 안 되고 어렵던 것이, 아주 편하게 물 흐르듯 되는 사람이 있더라. 내 생각엔 그게 결혼할 남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부터 결혼까지, 마치 봄날의 시냇물처럼 졸졸졸 흘러왔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직 싱글인 내 친구들이 모두 그런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봄날의 시냇물 같으며, 수증기로도 익는 만두 같은 결혼.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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