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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r 24. 2020

너를 내 시선으로 가두지 않을게

현명한 아내가 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선량하고 너그러운 남편을 만나 부부싸움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항상 남편이 내게 큰 아량을 베풀기 때문에 자칫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일도 매끄럽게 넘어갈 때가 많고, 나 역시 못 미더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남편은 내게 이렇게 착하게 구는데 나도 참아야지'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나의 이 못된 성질머리가 늘 눌러지는 것은 아닌지라, 이따금씩 모난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하루는 남편이 저녁밥을 짓는 내게 "나 이번 주말에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볼 거에요" 하길래, 나도 뜻깊게 본 영화인지라 "오, 정말?"하고 반가워했다. 그런데 연이어 그가 인스타그램의 한 피드를 보여주며 낄낄댔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이었다. 하정우가 신참 병사를 꾸짖는 대목이었는데, 실제 영화에서도 조금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 재밌는 부분만 달랑 편집된 피드를 보고서 그 영화를 '웃긴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가 살짝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내가 본 그 영화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 군대의 어두운 단면을 그려낸 슬픈 영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대로 된 성격을 알지 못한 채 몇 분짜리 영상만 보고 웃기다고 하는 내 남편이 순간 짜증났던 건, 나의 고질병인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항상 유익한 것을 추구하고, 같은 티브이를 보더라도 한 톨이라도 더 지식을 주는 프로그램을 보았으며, 영화도 그런 것들만 골라보는 편이었다. 쌓고 싶은 지식은 많고, 시간은 없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습득하게 된 오랜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고스란히 내 강박이자 성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지, 나는 가끔씩 남편이 내 기준에 무의미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살짝 부아가 치밀곤 했다. 핸드폰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한다든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역시나 내 기준에 소비성 유튜브 채널을 본다든지, 인스타그램에서도 하필이면 정말 킬링타임 용 피드들을 구경하고 있다든지 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안다. 남편은 나처럼 뭔가가 되기 위해 시간을 쪼개며 살고 있지도 않고,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왔으니 남는 시간에야 뭘 하고 뭘 보던 사실 그의 자유라는 걸. 그는 그가 행복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내 기준으로 남편을 보게 되고, 왜 아까운 시간에 저런 쓸데없는 걸 하고 있을까 싶은 것이다. 못난 잣대이자, 일그러진 지적 허영심이다.


그렇게 기어코 내 성질대로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유익한 걸 봐"라는 말을 내뱉고 나면, 그는 선생님에게 혼난 아이처럼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 나는 또 금방 미안해지고 만다. 이런 상황이 몇 번을 발생하니 나는 내 스스로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게 무슨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남편은 그저 재밌는 걸 나와 공유하고 싶었을 뿐인데. 선생님이 아니라 아내이자 친구이고 싶는 나는, 왜 남편에게 불필요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


문득, 틈만 나면 나를 무시했던 나의 오래전 연인이 떠오른다. 그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를 다니던 사람으로, 지금의 나보다 몇 곱절은 더 유익성과 효율성에 집착하던 사람이었다. 


그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기념으로 외국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을 포토앨범으로 만들어 그에게 가져다주었을 때의 일이다. "우와 너무 예쁘다, 고마워"라는 반응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그는 심드렁하게 내 선물을 보더니 "이런 거 하지 말고 좀이라도 너한테 도움이 되는 걸 해 봐. 토익 공부라던지 그런 거"라고 말했다.


사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나에게는 의미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다른 이의 눈에는, 그것도 가장 가까운 연인의 눈에는 '시간이 아까운' 일에 속하다니. 그때 나는 '나는 누군가한테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마음속 한 켠에서는 지적 허영심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나보다. 지금의 내 남편에게 내가 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다르지만 이해하기. 부부의 평생 숙제!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물론 나는 아직도 여전히, 시간이 없고 알고 싶은 건 많은 욕심쟁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이룩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도 경험해야 할 것들도 무지무지 많아서 단 일분도 허투루 쓰기 싫어하는, 성공 지향적이고 포부가 큰 내게는 취해 마땅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 남편은 아니다. 그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는 자신과 그토록 다른 나를 늘 아껴주고 사랑해주는데, 못난 나는 아직도 나와 다른 그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참 미안할 때가 많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남편은 얼마 전에도, 회사에서 생일 기념이라고 나온 문화상품권을 내게 주며 읽고 싶은 책을 사라고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니까 자신 앞으로 나온 상품권도 내게 마다않는 착한 사람. 나는 이 사람을 정말로 정말로 사랑한다. 앞으로는 그가 핸드폰으로 내가 싫어할만한 뭔가를 보고 있더라도, 내 기준에 심오한 영화를 웃긴 영화라고 착각한대도,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지 않아야지. 나는 내 남편이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내 옆에서 함께 오래오래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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