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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Feb 05. 2020

노래에 네가 묻어있어

너를 만날 때의 감정이 노래에 묻어있어...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당시의 상황과 기분 같은 것이 떠오르곤 한다. 처음 연애를 할 때 들었던 노래에는 그 당시의 설렘이 묻어있고, 처절한 이별을 경험하며 들은 노래에는 여전히 그 공허함이 묻어있달까.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 들었던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게 좋은 감정을 전달하기에 꽤 오랜 시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머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어떤 노래는 들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고, 어떤 노래는 당시의 우울감이 동반돼서 기분이 처지곤 한다.


예를 들자면 남편을 처음 만난 2년 전의 바닷가에서 알게 된 노래가 있다. 해운대에 놀러 갔던 나는 모래사장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에 이끌려 한 무리 앞에 도착했었다. 그 노래는 당시 남편의 일행들이 커다란 앰프를 가지고 와서 틀어준 노래들이었는데, 특히나 내가 거기서 꽂혔던 노래는 캘빈해리스(Calvin Harris)의 <Slide>라는 노래였다. 단지 노래 하나에 이끌려 남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지금 부부의 연이 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 당시 남편을 만나던 상황과 기분이 느껴져 지금도 설레곤 한다. 남편에게 느꼈던 이성적 호감, 기분 좋은 여름밤의 공기, 알코올에 녹아들어 나른했던 기분 등... 노래에 나만의 기억과 색깔이 묻어 함께 저장되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반대로, 어떤 노래는 내가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극심한 상실감에 휩싸여있을 때 반복적으로 듣던 노래로,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노래들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축축 가라앉곤 한다. 아직까지도 재생만 하면 내게 그 당시의 처절한 상실감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곡으로는, 정인의 <장마>, 어반자카파의 <니가싫어>, 프라이머리의 <멀어> 등이 있다. 노래 자체는 좋아해서 주기적으로 듣게 되지만, 듣는 순간 반드시 나를 울적하게 만드는 마법의 노래들이다. 지울 수 없는 이별의 감정들이 묻어 둥둥 수증기처럼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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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질서 정연한 카테고리를 가지고 분류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아직도 이 양날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랜덤으로 재생을 하다가 한 번씩 마주하게 되는 추억의 노래들에는,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그때의 감정들이 쏙쏙 묻어 나온다. 주로 어딘가로 이동을 할 때 버스에서 음악을 듣는 나는, 이따금씩 그렇게 예전 노래를 들으며 추억여행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가는 감정들이 무료로 그렇게 소환되는 것은 참 재미난 경험이다.


그렇게 예전 노래를 들으면 한 번 씩 깨닫는다. 이십 대 때의 나는 참 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우울한 순간들을 노래로 이겨냈다는 걸. 이별의 순간마다 내 상황, 내 감정과 절묘하게 떨어지는 노랫말의 노래들이 그렇게나 많이 존재했다는 걸.


서른이 된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여 살게 됐다. 그러니 더 이상 내게 이별의 상실을 전달하는 노래는 늘어나지 않겠지? 정말 다행인 일이다. 아, 경험은 소중한 거라지만, 정말이지 더 이상 이별 노래에 공감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고약한 감정들은 어쩌다 한 번 랜덤 재생되는 것으로 족하니까. 남편과 백년해로를 할 작정이니 아마 더 이상은 생겨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앞으로 살면서는 꿀꿀한 기분보다는 좋은 기분과 함께 저장되는 노래가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오랜만에 남편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게 하는 캘빈해리스의 <Slide>를 들어봐야겠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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