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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16. 2019

신혼집이 비싸야
잘 한 결혼은 아니다

결혼이 무서웠던 나에게 친구가 건넨 온기


친한 친구 중에 내 결혼생활의 모티브가 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자영이. 자영이는 내가 연애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던 스물일곱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은 내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 나는 자영이의 결혼식을 보며 그녀가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다고 느꼈었다. '나는 아직도 내 영혼의 짝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만인 앞에서 저렇게 인생의 배필과 함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구나.'  결혼과 안정을 꿈꾸던 내게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이후 이상하게 나는 자영이를 많이 찾게 됐다. 17평 정도 남짓한 그녀의 신혼 보금자리에 나는 염치도 없이 참 많이 놀러 갔더랬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를 둔 자영이는 늘 친절히 나를 맞이했고 항상 맛있는 밥을 지어주었다. 남편과 아기, 그리고 행복이 곳곳에 묻은 자영이의 신혼집에 있을 때면 난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자영이만큼 고마운 존재는 바로 자영의 남편이었다. 아기를 낳으며 휴직에 들어가 꼼짝없이 집에서 아기만 보게 된 자영이에게 남편인 민준오빠는 지극정성이었다. 그리고 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나에게도 어찌나 친절했는지. 하루에도 수천번 흔들리는 내 불안한 자아는, 그 두 부부를 볼 때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를 조금씩 알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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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몇천만 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스나 여러 통계자료를 통해 기록되는 여자의 평균 결혼자금은 대략 5천만 원이었다. 여유가 없던 집의 여식으로 자라며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던 계약직 신분인 내게 5천만 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결혼을 지향하면서도 결국 돈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가 내 마음속에 만연해있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두 부부를 마냥 부러워하던 내가 안타까웠을까. 자영이와 민준오빠는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결혼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다. 돈이 없어도 다 결혼할 수 있다고. 


"우리도 이 집은 대출이야", "이 집 살림살이를 다 채우는데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들었어"


그 말에 나는 놀라기도 했고 참 고마웠다. 형편에 맞게 조그맣게 시작한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부모님의 돈을 쥐어짜서라도, 보란 듯이 큰 아파트에서 시작을 하고 그 안을 비까 번쩍하게 채우느라 바빴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잘 된 결혼'이라고 믿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과시욕으로 꾸며진 집을 보고 나면, 역시나 돈 없는 나는 결혼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구나 하는 위축감만 들고 말았는데. "걱정 마. 돈 없어도 결혼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자영과 민준오빠의 따뜻한 보금자리는, 온갖 최신 가전제품과 비싼 가구로 수놓아진 여느 부부들의 공간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나는 그 두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내가 사랑하던 남자와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허례허식이나 돈이 아니란 걸 알게 해 준 자영 부부가, 결혼에 대한 나의 공포를 줄이는데 참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둘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 나와 신랑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는 자영 부부가 살았던 그 작지만 아늑하고 따뜻했던 공간과 꼭 닮아있다. 최대한 할인해서 산 소형 전자제품들과 인터넷으로 주문한 저렴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지만, 이 곳에는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사랑과 믿음으로 결속된 관계'만으로 충분히 만족이 넘친다. 그래서일까 나는 으리으리한 신혼집은 아닐지언정 내가 이루고 있는 이 작은 공간에 대해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최근 리클라이너 소파를 샀다며 자랑하는 다른 신혼부부에게 "난 집에 소파 놓을 공간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쪽팔리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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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 부부는 17평의 작은 투룸에서 1년 전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검소하고 현명한 두 부부가 몇 년간 착실히 벌고 모은 결과였다. 작은 시작에서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둘의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큰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까. 


앞으로도 나보다 먼저 결혼생활을 시작해 이어나가고 있는 자영 부부에게 많은 자문을 구할 생각이다. 행복은 규모가 아닌 깊이에 있음을 알게 해 준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2019 연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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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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