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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14. 2019

따뜻한 사람과의 연애는 건강하다

나의 예민보스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여기있네요

영화 <빅피쉬(Big Fish(2003)>의 한 장면.


매너가 좋고 유달리 배려심이 깊은 사람을 보면, 문득 그 사람의 가정환경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곤 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부모님 밑에서 온전하고 따스한 사랑을 받고 자랐겠지, 하는 상상이 되는 것이다.


결혼 전, 지금의 신랑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에게는 몸 깊숙이 베인 어떤 온화함 같은 것이 있었다. 워낙 둥글둥글한 성향이기도 했지만, 무엇을 하든 그는 항상 상대의 의사를 먼저 고려하곤 했다. 내 기분이 괜찮은지, 밥은 먹었는지, 먼저 자도 괜찮은지, 항상 ‘먼저’ 연락하고 내 의사를 묻는 것이 신랑의 성정이었다. 그저 단기간의 학습으로는 터득할 수 없는 배려와 매너가 가득했던 사람. 결국 나는 그의 자상함에 반해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게 되며 그의 부모님을 뵙고 나서, 그가 어떻게 그리 자상하고 배려심 깊었는지를 나는 단박에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시부모님이 된 두 분은, 장난으로라도 서로를 낮추는 언행을 않는 성정인 데다, 몇십 년을 함께 사셨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사이가 굉장히 좋으셨던 것. 특히나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결혼을 한다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서 잠을 자던 첫 날 보게 된 두 분의 모습이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거실에서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웃으시던 두 분의 모습은, 마치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소년소녀 같았다. 그 모습은 동시에,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내 성장기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으셨다. 서로의 성향도 경제관념도 너무나 다르셨기에. 두 분은 나를 위해 그저 각각의 부모로 존재하셨을 뿐, 시부모님과 같은 유대관계를 보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라면, 두 분은 나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각각의 사랑을 내게 주셨고, 덕분에 나는 충분한 사랑 속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부모님이 같은 공간에 서로 가까이 붙어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만큼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래서 신랑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한편으론 참 보기가 좋았다. 사이좋으신 시부모님이 계신 집은 참으로 따뜻한 기운이 넘쳤다. 그런 온도의 환경에서 성장했을 남편은, 덕분에 도통 화를 낼 줄 모르며 언제 어디서나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일 테다. 조금은 마음 아픈 가정사를 지닌 나에게, 그는 연애기간 내내 어찌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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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겉으로는 둥글해 보이지만, 알고 나면 모서리가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연애를 할 때도 쓸 데 없이 민감하게 군다던지, 상대의 무심함이나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똑같이 뾰족한 사람을 만나 연애할 때면 말할 수 없이 큰 스파크가 튀곤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내 뾰족한 모서리를 가려줄 둥근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나마 내 모서리가 둔해지곤 했으니. 다행히도, 지금의 신랑을 만나면서는 눈에 띄게 나의 예민함이 줄었다. (물론 신랑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변엔 로맨틱 가이의 가면을 쓴 나쁜 남자를 만나 눈물샤워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 대부분 그런 나쁜 남자에게 상처를 입는 여자들은, 나처럼 모서리가 있는 여자들일 터. 예민함을 보다 둥글게 해 줄, '진짜로' 자상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알짜배기 성격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사람들이 정말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남자를 만나 평온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과는 정말로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모서리가 많은 사람을 만나 고생하는 둥글둥글한 사람들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다. 나를 만나 항상 져주기만 하는 착한 신랑을 위해, 나도 내 뾰족한 단점들을 고쳐나가야 함을 인지하는 요즘이다. 실제로 완전히 고치는 데에는, 영겁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훗날,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시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정말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아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이도 온전한 사랑을 먹고 자라, 미래의 연인들에게 건강한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니까. 





2019 연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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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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