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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Oct 17. 2022

나의 할머니

시골에 발을 끊은 지 몇 년 되었다. 사실 마지막으로 언제 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서른 한살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 만큼 시골을 찾은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시골에 오지 않은 이유는 우리 할머니가 며느리인 나의 엄마를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 다투면 ‘시집살이’가 이유였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부모 세대는 가부장적인 시어른들과 비약적으로 발전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처세를 카멜레온처럼 바꿔야 하는 세대 같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우리 엄마를 미워한다는 것을 머리로도 알고 있었고, 느낌으로도 알고 있었다. 난 아버지와 싸우고 우는 엄마가 불쌍했다. 하지만 난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와 엄마 싸움에 끼어들 수 없고, 내색도 해서는 안된다는 걸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갈 때쯤 엄마는 갱년기를 심하게 앓았다. 그때의 엄마는 안정제 없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아픈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밤을 목격했다. 밤새 또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왜 나의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어릴 때부터 쌓인 울분을 쏟아냈다. 말리는 엄마를 뿌리치며 할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할머니는 너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난 내가 한 행동으로 태어나서 아버지에게 가장 심한 말을 들었다. 심한 말이라는 것만 기억나지 무슨 말인지는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도 난 또렷이 말했다. 아버지가 할머니 마음이 아프면 화가 나듯이, 나 또한 그러하다고. 아버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시골을 찾지 않게 된 이유다. 나름의 치기 어린 복수심이었던 것 같다.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 시골을 다시 찾은 이유는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 때문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2주 전 시골에 와서 할머니를 본 순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잠을 자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돌아가신 분을 대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고, 몰라보게 쇄약 해진 모습이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느끼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밥을 거의 드시지 못한다. 두 숟갈 정도 드시면 배가 부르다며 먹기를 거부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적으로 느꼈다.


할머니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치매와 같은 병 때문이 아니라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해야 속이 가라앉고 한동안 조용히 계실 수 있는 듯하다. 할머니가 처음 시집을 오고 나서부터 증조할머니가 시집살이시켰던 이야기, 할아버지가 괴롭혔던 이야기, 마음이 쓰였던 여러 가지 과거 이야기를 하신다. 대부분은 본인이 억울했거나 부정적인 얘기다. 듣고 있자면 한풀이를 하는 듯하다. 할머니는 얘기를 하면서도 내가 곧 죽을 때가 된 것 같다며 옛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단다.


2주 만에 다시 온 시골은 여전히 고요하고 평화롭다. 할머니는 지난주에 했던 과거 이야기를 또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은 어떻게 오는가 생각이 든다. 죽음을 앞두면 서운했던 감정들이 먼저 생각나는 걸까, 행복했던 기억은 없는 걸까. 나는 어떤 기억을 갖고 이 삶을 마무리하게 될까.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적어도 불행한 기억만으로 끝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을 것 같다. 할머니를 거울 삼아 어제의 나를 돌아본다. 현재를 사는 삶이 얼마나 값진지,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할머니가 나에게 쏟아내고 홀가분하게 갈 수 있다면 백번이고 만 번이고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가족들 품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가시길 바라본다. 어릴 때 치기어린 나의 행동을 후회하며…



#일상 #할머니 #죽음 #삶 #인생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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