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구독과 열리는 지갑
친구 A는 모든 콘텐츠의 한 달 구독료가 6만 원이 넘게 나온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왓챠로 드라마를 보고, 멜론으로 음악을 들으며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광고 없는 영상을 본다. 그리고 독서를 위해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며, 가끔 퍼블리 구독으로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한다. 이제 가계부 정기 지출 항목에 '구독비'라는 목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책 구독,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 영상 스트리밍 구독, 음원 스트리밍 구독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음식, 면도기 등등 물건들도 구독으로 받아서 쓰는 구독 경제 시대에 살고 있다. 콘텐츠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은 구매와 소장이라는 방식보다 구독이라는 방식이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시대가 왔다. 하지만 구독 시장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까?
하나의 구독만으로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는 없다. 각 서비스별 제공하는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영상 스트리밍이라도 복수의 서비스를 구독해야 한다. 친구 A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는 국내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위해 왓챠 플레이를 구독한다. 7,900원이라는 가격은 밥 한 끼 정도의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구독들이 모여 휴대폰 요금과 비슷한 수준의 고정비가 매달 발생하고 있었다.
구독 서비스는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제한으로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서비스의 만족감을 높인다. 하지만 구독은 일부 서비스만 이용해도 이용량과 관련 없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음식을 조금 주문했지만 무한리필 값을 내야 하는 것과 같다. 고기를 맛보기 위해 고기 무한리필에 가고, 떡볶이 1인분을 먹기 위해 떡볶이 무한리필을 간다. 고기 1인분, 떡볶이 1인분의 음식은 무한리필을 즐길 수 있는 몇 시간의 '구독권'을 구매해야 주어진다. 결국 우리는 떡볶이를 포기하고 고기만 먹을 수 없어 양쪽 모두 이용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넷플릭스와 왓챠 플레이를 동시에 구독한다.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일지라도 제공하는 영상이 다르기 때문에 한쪽의 구독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넷플릭스에 없는 국내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왓챠 플레이 또한 구독해야 한다. 더 넓은 선택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구독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상 서비스 스트리밍은 점점 분리되어가고 있다. 디즈니는 Disney+를 서비스하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의 라이선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Disney+가 나온다면,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는 마블과 디즈니의 영화를 보기 위해 Disney+를 구독해야 한다. 이처럼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마치 종합 뷔페에서 음식별 무한리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상 스트리밍 시장에 또 다른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9월 10일, 애플은 프레젠테이션에서 Apple TV+를 소개하며 전부터 기획하던 콘텐츠 비즈니스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공개했다. Apple TV+의 가격은 월 4.99달러, 그리고 애플의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1년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콘텐츠는 '모닝쇼',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 등을 제공할 예정이며, 콘텐츠 제작에 6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SK 브로드밴드와 지상파 3사는 새로운 OTT 서비스인 '웨이브(Wavve)'를 발표했다. 웨이브는 국내 수요가 충분한 푹과 옥수수를 하나의 서비스로 통합해 국내 가입자를 대폭 확보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1000여 편의 영화와 해외 드라마를 이용할 수 있고, 지상파의 드라마 예능, 그리고 스포츠까지 제공한다. 웨이브는 2023년까지 콘텐츠 제작에 3000억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마 AppleTV+의 발표 소식을 접하고 꼭 구독해야 한다고 생각 한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플 디바이스 이용자들은 한번쯤 써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년 무료라는 정책은 AppleTV+의 콘텐츠가 매력적이지 않아도 한번쯤 써볼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1년 동안 애플의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서비스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낮은 가격과 무료 이용으로 진입장벽을 파격적으로 낮춘 애플의 전략은 일상과 디바이스로 그들의 서비스를 연결시킨다.
국내 비디오 역시 마찬가지다. OTT 시장의 공백이었던 프로스포츠를 끌어들이고, 분산되어 있었던 국내 영상시장의 수요를 통합한다. 로컬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사실 자체로 지역적 잠금 효과가 생겨난다. 이제 사람들은 국내 드라마를 다시 보려 할 때, 프로스포츠 경기를 다시 보려 할 때엔 웨이브에 가입해야 한다.
OTT 시장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인 채널에서 독보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려 한다. 어느 플랫폼 할 것 없이 전부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더 낮은 진입장벽 혹은 더 강한 잠김 효과를 유도한다.
현재 영상 플랫폼은 모든 콘텐츠를 모으기보다 일부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 구독을 유도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며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리기보다 '보고 싶은 콘텐츠'로 구독자를 잡아두려 한다. 아무리 영상이 많아야 영상을 고르는 시간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확실한 블록버스터 콘텐츠로 고민하지 않고 시청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서비스 또한 같은 방식으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더 싼 가격과 더 매력적인 콘텐츠로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나눠가지고 있다.
HBO의 경우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제공한다. 왕좌의 게임은 7 시즌의 평균 시청자 수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킬러 콘텐츠다. '왕좌의 게임' 서비스 이후, HBO의 스트리밍 구독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HBO는 높은 구독료의 가치를 HBO만의 양질의 콘텐츠로 승부한다. '왕좌의 게임' 뿐만 아닌 '퍼시픽',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 팬층이 두터운 콘텐츠와 '체르노빌'과 같은 작품들도 선보이며 독자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가진다.
디즈니 또한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Dinsey+를 발표하며 6.99달러라는 가격으로 경쟁하며 디즈니의 대부분의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심지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통제하던 Disney Vault를 종료하며 Disney+에서 모든 애니메이션을 제공한다. 디즈니의 경쟁력은 막대한 콘텐츠 풀에서 나온다. 스타워즈, 마블, 폭스, 픽사, 디즈니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강력한 경쟁력으로 구독자를 끌어모을 것이라 예상된다.
HBO의 '체르노빌'은 수작이라는 입소문과 함께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넷플릭스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혼란을 겪는다. 영상 스트리밍은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쟁구조는 아직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가격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동안 콘텐츠에 많은 돈을 써본 적이 없고, 개별적인 구독료는 점점 더 저렴해지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이 구독자 경쟁으로 돌입하는 때부터,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구독료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늘어나는 구독료를 감당하기 위해 구독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액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콘텐츠는 독자적인 채널에서 제공되고, 즐겨보는 드라마와 스포츠 다시 보기는 구독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된다. 우리는 구독자를 모으기 위한 노력에 유인되어 지갑을 자연스럽게 연다.
이제 갈만한 음식점들은 모두 무한리필로 변하고 있다.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하는 뷔페부터 돈가스 전문 무한리필까지, 무한으로 즐긴다는 장점을 내세우며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음식값이 아닌 입장권을 지불하게 되었다.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결국 먹고 싶은 음식을 참게 될 것이다.
OTT 시장의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시장의 규모는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지출이 늘어나거나, 경쟁 업체들은 정리될 수 있다. 혹은, 콘텐츠 소비 자체를 줄이는 사용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OTT 시장에서는 케이블 TV처럼 모든 채널을 전부 이용할 수 없다. 위의 사진처럼, 아마 모든 프로그램의 접근권을 가지려면 매 달 10만 원 이상의 지출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독 상품이 세분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콘텐츠를 선별해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모든 취향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가장 강력한 취향을 가진 서비스가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처럼 콘텐츠 산업이 과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의 지갑도 과도기를 겪을지도 모른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활동을 통해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