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영신 Mar 08. 2021

대오서점,
다른 이의 삶을 구경한다는 일

관광이 삶을 쫓아낼 때 0

                                                                                                                                       Photo by Juheeshin 


한 때 서촌에 사무실이 있었던 터라 역근처의 시장통을 지나 골목골목, 통인시장에서 마을버스 종점까지 익숙했던 길들을 화성봉담, 공정무역 교실 선생님들과 함께 걸었다. 여행을 안내해 주는 원영씨가 준 미션은 ‘대안’과 ‘가치’의 키워드로 서촌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것이 가장 오래된 집이어도 좋고, 가장 가치 있는 물건, 혹은 사람이어도 좋다고 했다. 경복궁역의 아름다운 커피부터, 공정무역 가게 그루, 또 환경운동연합의 에코샾을 비롯해 참여연대 아카데미, 또 박성준 선생님의 인문학 책방까지 서촌은 무언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역할을 해 온지 제법 시간이 쌓여 있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 했다. 더욱이 방송을 타며 유명해진 청년장사꾼이나 열정감자, 통인시장, 또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골목 길들 속 갤러리 류가헌과 보안여관까지.... 문화, 예술, 공정무역, 책방, 시장.... 어떤 키워드로 서촌을 맵핑해도 반나절 여정에 서촌을 다 만나긴 쉽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과 3-4년 사이 서촌이 그토록 유명해 진 이유는 그곳에 쌓여있는 ‘시간’에 대한 발견, 우리가 지나온 삶의 원형에 대한 향수 때문일 듯 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집을 짓고 장을 보고 살아왔던 중인,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공간속에 묻어있는 마을 서촌을 만나기 위해 통인시장에서 밥을 먹고 슬슬 길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 대오서점이었다.     


서촌 곳곳엔 오래된 가게들이 자취를 감추고 관광객들을 위한 가게들이 점점 세를 불려가고 있는 듯 했다. 

1951년 권대식 김오남 부부가 시작했다는 대오서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아이유 꽃갈피 촬영지 여러 이름을 띠며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대오서점은 카페로 변해 있었다. 책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시용인 듯 했다. 대오서점 바깥에는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안쪽에 들어가려면 차를 마시거나 입장료처럼 만든 엽서를 사야 했다. 이미 차는 한 두 잔씩을 마셨던 터라 엽서를 사서 대오서점 안쪽의 마당과 방에 들어갔다. 오래된 세간과 사진들을 보다가 서점을 지키는 주인장께 언제부터 서점에서 카페로 바뀌었는지 무심코 여쭈었다.     


“한 삼년 되었어요. 서점이니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불쑥 들어왔어요. 헌책만 구경하면 좋은데 마당부터 안방까지 집이랑 우리 사는 모습까지 구경하고, 책은 사가지도 않고 그냥 나가니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찾아와 아이유처럼 사진을 찍기 원했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의 문을 열어 그 안에 머물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오 서점에서 사람들이 사는 것은 이미지일 뿐, '책‘은 아니었다.    

 

“전 여기서 태어났어요. 돌아가신 아버님이 시작하신 헌책방니 서점을 그만두는 일이 저희도 쉬운일은 아니었어요. 어머님이 아버님시작하신 일을 그만두시 수 없다 하셔서 헌책방으로 쭉 버텨왔는데 서촌이 갑자기 관광지가 되면서는 도저희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문을 닫아두고 외출을 하면 닫힌 문도 부수고라도 들어와요 사람들이. 다른 이의 삶을 구경한다는 일이 그렇게 무서운 일인 줄은 몰랐어요.”    


카페는 잘 되시는지 여쭈었더니 웃으며 입장료 엽서 세트를 보여주셨다.     


“이걸 왜 만들었겠어요. 여기 오기 전에 어디선가 차를 이미 마시고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냥 차 는 안마시고 구경만 하고 싶다 하시는데 대부분 사진을 찍고 싶어해요. 그럼 차 마시던 분들도 방해가 너무 되는 거죠. 카페인데.. 그래서 이 엽서 세트를 만들게 되었어요.”    


우리 역시 차를 마시고 도착한 터라 내놓으신 엽서만 사고 가려다가, 엽서 두장 값에 500원을 보태어 대오 서점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지혜로운 선택일 듯하다 말씀드리니 웃으며 이야기를 보태셨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하지만 문 앞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중 80%는 욕을 하고 가요 서점이 왜 입장료를 받느냐.. 그까짓게 뭐라고 그냥 보여주지 돈을 받느냐... 얼마나 돈을 벌려고 카페로 바꿨냐... 근데 얼마나 벌겠어요. 이 작은 집에서.. 낡고 오래된 집을 고쳐야 하고 어머니와 저희 가족도 살아야 하니 겨우 삶을 유지하고 버티는 정도죠. 돈을 많이 벌어서 떠날 수 있었다면 그 상처를 다 받아가면서 여기 안 살았겠죠”    


이십분 남짓 머무르는 짧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와서 동네 맛집을 묻고 길을 묻다가 다른 곳을 향해 총총히 간다. 대오서범의 삶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불쑥 불쑥 그 앞에와서 거대한 카메라로 서점의 시간들을 탁본해 가는 사이, 대오 서점 가족들이 견뎌야 하는 삶은 마치 민속촌인양 시간의 옷을 입고 구경당하는 이의 것인 듯 했다.     

“엊그제 요 앞의 세탁소도 다른 데에 집을 팔았어요. 전, 그 마음 이해해요. 그냥 구경만 해도 좋은데 온갖 모습을 다 사진으로 찍어가고, 닫힌 문 뒤흔들고, 욕하고,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니 어떻게 버티겠어요” 

이제 남은 토바이들의 공간은 서점 역의 중국집, 길건너 구둣가게 그리고 대오서점 정도라 했다. 집을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는 보호구역, 집과 함께 삶 또한 지켜내고 싶지만 관광지가 되어버린 서촌에서 삶은 마른 나무처럼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삶의 어려운 이야기 두런 두런 나누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함께 청해 기념사진을 찍고 인사를 드리는 길,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작은 전시나 음악회나 이 공간을 쓰고 싶으면 언제든 오세요. 대관료는 없어요. 들어오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6천원정도 차 한잔 나누면 작은 모임이나 행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소박한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있어요. 다음에 꼭 또 뵈요”    


다음에 음악회를 기획하며 다시 오고 싶다는 기약을 마치고 다시 마주한 서촌을 걷는 시선은 한발짜욱 깊이 그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서는 듯 했다. 통인시장부터 다람살라 난민을 지원하는 공간인 사직동 그가게까지 짧은 여행을 마친 선생님들이 광화문 아름다운 커피에 모여 마지막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인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사직동까지 함께 걸었던 길, 전주가 고향인 다른 선생님이 의견을 나이야기 하신다.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가 좋았는데 전 왠지 통인시장의 장사가 안되는 채소전이나 생선전 사람들 마음은 어떨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떡볶이나 반찬가게는 불이 나지만 두부나 채소, 고깃간 들은 어떨까... 잠깐 점심을 먹는데도 도시락 들고 오가기 불편한 이 시장에 내가 사는 사람이라면 장을 보러 오고 싶을까ᆞ... 단체가 온다면 예약제로 해서 상인들과 주민들이 시장을 관광지가 아니라 시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엊그제 강의에 들었던 바르셀로나 사례처럼 주민들이 장을 보는 시간만이라도 단체 손님은 못들어 오는 것도 좋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전 대오서점 가족들 마음이 너무 공감되요. 제 고향이 대부도거든요. 어릴 때 정말 주말이, 방학이 얼마나 싫었는지 몰라요. 관광객들로 길이 꽉꽉막히고, 떠나고 난 자리엔 동네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사람들은 무례하고.. 어딜가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란 걸 기억한다면 우리부터 조금더 조심해 주어야 할 것 같아요”    


신혼생활 마치고 이제 두 살이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처음 맡기고 나온 새댁이 여행의 느낌을 나누었다.     


“전 진짜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얼른 아기 크면 다시 같이 여행하고 싶었는데 조금 다른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오늘, 록빠에 갔었는데 전에도 갔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풍경만 사진으로 담았지 거기가 티벳 난민들을 돕고 탁아소를 지원하는 곳인줄은 몰랐어요. 아무리 그곳에 가도 묻고 만나지 않으면 구경만 하고 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대오서점 선생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요. 그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아. 난민은 티벳에만 있는게 아니었구나.. 우리가 이렇게 무심코 남의 삶에 불쑥 불쑥 들어가고, 구경하고, 무례하게 스쳐가는 것도 저 분들에게는 전쟁처럼 힘든 일이었구나. 저분들도 난민일 수 있겠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에 모두의 마음이 묵근해 졌다. 


관광과 개발의 광풍에 도처에서 삶을 잃고 쫓겨나는 ‘관광난민’을 곳곳에서 마주하는 날들

우리의 관광이 누군가의 삶을 난민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자각,

그 삶의 아픔의 자리에 함께 서는 마음의 공명이 모두에게 맑은 물처럼 스몄다.     


마을에서 마을로 여행한 짧은 하루,     

다른 마을의 삶을 구경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읽고 교감하는 저마다의 여정이 시작되는 새로운 마을 어귀에 선다

작가의 이전글 진짜 몰디브를 여행하는 시간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