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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Apr 09. 2021

마을이 된 미술관, 골목에 깃든 삶의비엔날레

삶을 위한 멈춤, 여행 _ 광주, 양림 골목비엔날레 1



"양림은 머물면서 만나야 해요"


양림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삶의 뿌리를 내려가는 이한호 대표의 초대를 몇 번은 허투루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광주에서 열린 강연에 초대를 받아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후, 그 언덕 한 켠 삶의 소중한 것을 묻어 두고 온 사람 마냥 양림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바투게 돌아가는 삶의 호흡에 지쳐 어디론가 잠시 떠나고 싶을 때면, "맞아 내겐 양림이 있지" 하는 위로와 안도가 잦아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어려운 시절이 길어지며 양림은 더욱 소중했다. 새로운 눈으로 국내를 여행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디에 가면 좋을 지 물어 올 때면 망설임 없이 '양림'을 권했다. 왜 그곳이어야 하는지  물어오는 이에게는 "거기에 가면... 삶과 마을을 지켜가는 예술과 여행이 있기 때문" 이라고 마음 한 켠에 적어둔 문장을 건네어 주곤 했다. 더구나 양림동 골목골목에서 양림의 예술가들과 주민들, 상인들이 마음을 모아 마을의 힘으로 골목 비엔날레를 연다는 새로운 소식은 하루가 다르게 북상하는 봄꽃 소식만큼이나 걸음을 재촉했다.


양림동산, 100년전 선교사들이 지어 둔 벽돌 건물들이 시간을 견디며 숲을 일구고 삶을 뿌리내렸다.


베니스 비엔날레라도 예약한 사람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네이버 예약에 올라온 도슨트 투어를 예약하고 시간에 맞추어 차표를 끊었다. 3일의 시간을 내고 광주를 향하며 '양림에 머문다'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호랑가시나무 언덕엔 수선화며 벚꽃까지 봄이 만개했고, 동네엔 문 밖으로 몇 걸음만 나서면 머물 수 작은 카페와 식당, 책방과 전시가 골목골목 깃들어 있었다.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필요한 것이 다 있는 삶의 장소였다.


마을과 세상을 잇는 여행자 라운지, 10년후 그라운드

 양림 골목 비엔날레 도슨트 투어를 신청해 둔 우리에게 처음 온 문자는, 10년후 그라운드가 투어의 첫 출발점이라는 소식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내려가 함께 걸을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자 라운지, 10년후 그라운드'는 지난봄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공간이었다. 카페 겸 살롱이 되어주는 1층의 홀,  아름다운 아치문으로 이어지는 마당, 2층의 사무실과 유튜브 녹음과 줌 회의실, 코워킹 공간과 3층의 루프탑으로 이어지는 건물 안쪽에는 여행과 일, 로컬의 삶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여행자 라운지에서 들어서는 사람들을 양림 골목 비엔날레의 기획자 이한호 대표가 맞이해 주었다.


"여기서 잠시 한 숨 고르고 투어를 시작하세요"

 송정에서 바로 택시로 달려온 사람, 먼저 와 숙소에 짐을 풀고 내려온 사람..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 동안 라운지를 서성이며 숨을 고르고, 탈출하듯 달려온 분주한 마음들을 쓸어내렸다. 도착과 출발 사이 잠이 멈추어 숨을 고를 장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10년 후 그라운드는 그런 곳이었다.

양림 골목비엔날레를 시작하는 여행자 라운지 10년후 그라운드, 아트마켓과 여행자 플렛폼을 겸하고 있다.


새 건물이라기엔 낡고 익숙한 공기가 감도는 여행자 라운지는 오랜동안 유치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재생 프로젝트로 리모델링한 공간이었다. 세월의 지문이 가득한 건물을 어느 날 와르르 무너뜨리고 새 건물을 올리는 대신 원형을 살리며 고쳐가는 과정,  그곳에서 유년을 보내고 아이를 키운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담아 전시하고 공유하는 여정을 놓아왔다고 했다.

 

"동네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삶의 흔적과 기억들이 다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담담히 공간에 깃든 마음을 설명해 주는 이한호 대표의 설명이 고마웠다.



마을 도슨트와 함께 걷는 삶의 비엔날레


여행자 라운지에서 만나 골목 비엔날레를 안내해 줄 도슨트는 마을 사람 김혜정 선생님. 양림의 골목과 예술을 함께 만나는 여정에 외부의 전문가가 아니라 마을 분들이 길을 열어주시는 새로운 여행이었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김혜정 선생님이 살아온 양림의 시간과 시선을 따라 골목 비엔날레를 걷기 시작했다.



16곳의 카페와 식당에 깃든 13명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나는 영업中, 빈집과 빈 상가에서 열리는 골목 사진 전시 임대展,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획展이 펼쳐지는 이이남 아트센터까지 양림동 전체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만든 골목 비엔날레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손금처럼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들을  환히 알고 있는 도슨트 선생님은 골목 속, 전봇대 위.. 깨알같이 숨어있는 작품까지도 찾아내 보여주신다.


"골목 비엔날레는 양림에 골목이 많아서 가능한 걸지도 몰라요. 펭귄마을부터 양림 동산까지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도 길이 다 연결되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골목에 있는 작품들은 네비에 안 나오거든요^^"


16곳의 식당과 카페, 13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출품해 마을과 예술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양림골목 비엔날레(3.3-5.9)



미술관이 된 빵집, 전시장이 된 식당


그림 한 점을 집과 가게에 거는 일이 양림에선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의 호사가 아니라 주민이라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양 전시는 골목에서 담장으로, 가게에서 카페로 이어졌다.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육각 커피와 양인 제과, 백반집과 카페 같은 작은 가게들 속에도 숨은그림처럼 곳곳에 작품들이 깃들어 있다.



"육각 커피에 있는 작품은 양경모 작가님 작업이에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중에 계셔서 세밀한 풍경보다는 하늘이나 구름처럼 커다란 자연을 중심으로 그려요. 시력은 약해지시지만 도리어 우리는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담아내시는 것 같아요"


바로 맞은편 줄을 서서 빵을 사 간다는 양인 제과에는 이조흠 작가의 작품 두 점이 진열된 빵들 위에 오롯이 걸려있다. 작품 설명과 함께 양인제과의 빵맛을 설명하는 일도 잊지 않으신다. 그러나 식당의 방 한편에 걸려있는 작품은 보여 주시려다가도 손님이 식사 중이시니 나중에 꼭 보라며 식당의 형편을 헤아려 주기도 한다.


양인제과에 갓 나온빵들과 함게 전시된 이조흠 작가의 작품



"마을이 미술관"이라는 말..


언덕을 오르다 보면 나전칠기에 양림에서 보는 무등의 풍경을 담아낸  최석현 장인의 작품이, 아트주가 있는 하원재 건물엔 정헌기 작가의 작품이, 문이 닫힌 상점 속엔 양림 골목길 사진전이... 생각지 못한 마을 곳곳에서 전시를 발견하고 마주한다. 누군가 와서 그리고 간 후 낡아져 가는 벽화가 아니라, 오늘의 양림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눈으로 '지금, 여기'를 담아내는 삶이 깃든 전시였다.  

어딘가에 작품이 전시된다는 일은 늘 관계와 기억을 낳는 일이다. 작품은 그것을 소유한 이에게 소장되지만, 원형은 작가에게 머물고, 기억은 전시로 마주했던 모든 이들에게 선물처럼 깃들지 않던가. 하물며 그곳이 함께 걸었던 마을과 골목이라면... 골목비엔날레는 양림을 걷는 내내 포스터에 쓰였던  "마을이 미술관이다"라는 한 문장이 마을의 빈집, 골목과 식당, 카페와 거리에 켜켜이 내려앉는 삶의 비엔날레였다.



                                           

'미술관이 된 마을'이 보는 이들에게는 선물이지만 살아가는 이들에겐 어떤 것일지 문득 궁금했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저 작가님들 작품을 어떻게 식당이나 제과점에 걸겠어요. 뵙기도 어렵고 작품을 거는 건 더더구나 엄두가 안나죠. 골목 비엔날레는 '우리 마을에 이런 작가들이 산다. 이 예술가들이 내 이웃이다.' 자랑하기도 하고 이런 행사를 하는 양림동 자체가 자랑스럽기도 한 시간인 것 같아요"

어디 작품뿐이었을까... 이번 전시의 일부는 아니지만 양림의 효자 개 이야기를 새겨둔 벽화에서 양림 동산의 호랑가시나무 이야기까지,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에서, 양림에 살아가며 다른 세상을 가져오는 양림의 예술가들 이야기까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았고, 시간은 봄날 꽃시절처럼 너무 짧은 것이었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으나 나누어 준 지도 위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작품들의 목록이 소복했다.

"이제 길은 익혔으니, 머무시는 동안 천천히 남은 작품들을 만나고 가세요"


양림에서 바라본 무등의 풍경 _ 나전칠기 장인 최석현 작



도슨트 투어가 끝나자 비로서 저마다의 여행이 시작된다. 마을에서 맞이해 주신 도슨트 투어는 미술관이 된 마을의 보이지 않는 문을 찾고, 길을 익히는 마중물 같은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제 숨겨진 작품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머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은 여행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베엔날레 사진 출처 : 양림골목 비엔날레홈, 10년후 그라운드페이스북







양림 골목 비엔날레 https://alleybiennale.modoo.at/



https://alleybiennale.modoo.at/?link=daryef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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