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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May 09. 2021

호랑가시나무 언덕, 기억의 냄새

삶을 위한 멈춤, 여행_ 양림, 순례자의 집에서 여행자의 집으로


어딘가 낯선 도시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은 그곳에 두고 온 '집'이 있기 때문이다. 짐을 내려놓고, 편한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골목과 도시를 헤매다가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라는 말이 스르르 나오는 순간, 묘한 안도감이 찾아든다. 단지 몸을 누일  '방'이 아니라 존재가 깃드는 '집'에 다다르는 저녁, 그곳에 머무는 것이 생에 며칠 뿐일지라도 삶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진정한 장소'에 도착한다.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의 말처럼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집'을 품고 있는 도시는 언제든 돌아갈 곳이 되어준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광주에 갈 일이 있었지만, 머무는 일은 드물었다.  호텔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당일 일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KTX를 타면 하루 안에 오갈 수 있는 거리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의 장소를 만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던 몇해 전 봄,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난 후, 광주는 이제 삶의 시간을 여며 일부러 찾아가고 싶은 여행의 도시가 되기 시작했다. 송정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양림동으로 가주세요" 하고 소리 내어 말할 때면 이미 입가에 기쁨이 맴돌기 시작한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에 도착하는 여행, 양림


코로나와 함께 맞는 두 번째 봄, 양림 골목 비엔날레며 광주 비엔날레가 아니어도 봄의 광주를 찾는 것은 이미 삶의 절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호랑가시나무 언덕, 오래고 깊은 뿌리를 지닌 동산의 나무들은 100년의 시간 너머, 다른 봄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앞 뜰에는 수선화가 눈부시게 흔들리고 뒷동산엔 벚꽃이며 겹동백이 붉은 봄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배롱나무며 백일홍은 잎새 하나 없는 맑은 몸, 세월을 휘감고 서 있는 것으로  숲의 화폭을 채운다.


양림 동산에 시간의 풍경을 더하는 것은 다만 나무와 숲만이 아니다.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양림의 집과 건물들은 이국의 빛과 색을 저마다 품고 있다. 선교사들이 묵었던 붉은 벽돌집부터, 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예배당, 수피아 여고에서 기독 병원까지 양림 곳곳에 들어선 근대 개화기 건물들은  다른 장소가 아니라 다른 시간에 도착한 듯 낯선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호랑가시 나무게스트 하우스와 양림동산의 오랜 꽃나무들 _ 사진 정헌기 



여행자의 집, 호랑가시나무 언덕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와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두 채의 붉은 벽돌집은 아래층과 이층을 합쳐 작은 방들이 7-8개나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100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지어진 것도 아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작은 방들이 많았는지 궁금하던 차에 100년 전 그 집들이 선교사들의 숙소였다는 기록을 발견한다. 그제야 작은 방들의 용도가 헤아려졌다. 100년의 시간이 담긴 방에 몸을 누일 때면 오래전 바람과 파도에 흔들리며 도착한 낯선 땅, 험한 길을 여행해 이 언덕에 다다랐을 청년 서서평, 배유지, 원요한...  자신의 고향과 이름을 버리고 다른 삶에 도착한 눈 푸른 선교사들의  막막함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방치된 선교사들의 집을 여행자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아트주 정헌기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간에 깃든 기억을 제외한 것들을 비우고 치우는 일이었다.


"워낙 오래고 낡은 집인데다가 오래 방치되어 있었어요. 가장 먼저 한 일은 트럭으로 5대 분량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어요. 이 집이 품은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쓰려 가능한 한 이 언덕에서 나는 나무와 재료들로 집의 구석구석을 고쳤어요. 더디고 느린 여정이었죠"


순례자의 집에서 여행자의 집으로, 호랑가시나무 언덕 게스트하우스 _ 사진 정헌기 


호랑가시나무에 하룻밤이라도 묵어 본 사람은 안다. 그의 일은 단지 집을 고쳐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공간이 양림에서 보낸 100년의 시간을 복원하고,  공간의 근원적인 쓰임새였던 낯선 이를 맞이하는 '환대의 장소'로 만드는 일..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헤아림이 없었다면 호랑가시나무 게스트 하우스는 그저 또 하나의 공간일 뿐, 삶을 멈추고 머물수 있는 장소갸 되어주지는 못했을듯하다.  


선교사들을 맞이하던 순례자의 집은 이제 여행자의 집이 되어, 호랑가시나무 언덕을 찾아오는 지치고 고단한 여행자들을 맞이해 준다. 그곳에 가만히 깃들어 고요한 쉼에 다다르는 것을 돕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가책 없이 쉬기 위해 먼 곳에 머무는 여행자의 마음을 100년의 시간을 기다려  집과 숲은 넉넉히 헤아려준다.


시간과 나무의 도슨트


추운 겨울 눈 속에 초록잎과 붉은 열매를 맺는 호랑가시나무 군락부터 가지 끝마다 아득히 봄을 피워 올린 양림의 동산을 산책하는 길, 호랑가시나무 언덕을 둘러싼 숲과 나무, 역사와 예술을 안내해 주던 정헌기 대표는 자주 걸음을 멈추어 섰다.


"이 나무를 한 번 보세요. 흑 호두나무예요. 저건 피칸 나무고요. 호랑가시나무가 군락을 지어 있어 호랑가시나무 언덕이라고 불리지만 동산을 걷다 보면 한국에서 보기 드문 귀한 나무들이 많아요. 호랑가시나무는 사철 푸른 초록과 성탄절을 위해, 흑 호두나무나 피칸은 영양이 풍부하고 오래 살아가는 나무라 아이들과 이웃을 위해 심은 거겠죠."


양림 동산에 그렇게 다양한 식생이 깃든 것은 선교사들이 고국을 떠나며 한국에 심어 기르고 싶은 씨앗들을 귀히 담아 와서 이 언덕에 심고 일구었다고 찬찬히 설명을 하다가 무심히 질문을 건네어왔다.


흑호두나무에 깃든 가을_사진 정헌기


"만약 고국을 떠나 먼 곳으로 가게 된다면, 어떤 나무를 가져갈 것 같으세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이었다. 선뜻 답하지 못한 질문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동심원을 그리며 되물었다. 무엇이었을까.. 내게 먼 곳까지 가져가고 싶은 삶의 소중한 씨앗은..


머무는 날들 동안 호랑가시나무 언덕을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칠 때면 그가 자박자박 건네어주는 이야기들은 시간과 나무의 도슨트 인양 혼자선 찾아낼 길 없는 의미들을 읽어내주었다. 양림동 곳곳에 깃든 100년의  역사와 건물, 선교사들의 삶과 헌신, 나무와 풀들, 숲에 스민 가치와 서사마저 품어가는 그의 삶 또한 호랑가시나무 언덕 어딘가에 깊은 뿌리내린 한 그루 나무인 듯했다.


 


 순례자의 집에서 여행자의 집으로



"양림을 한국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들 해요. 예술가들이 많이 사니까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겠지만 저는 몽마르뜨에 담긴 속 뜻에 마음이 더 기울어요. 몽 마르뜨가 프랑스어로 '순교자의 언덕'이라 하네요. '몽'이 언덕, '마르뜨'가 순교자를 뜻하는..,

100년 전 젊고 어린 청년이었을 뿐인 그 선교사들이  멀고 낯선 땅에 도착해 고국에서 가져온 나무를 심고 벽돌을 쌓아 집을 지은 곳, 그곳에서 한국인도 외면하던 나환자들을 돌보고, 병원을 세우고, 일제에 맞서는 여학생들을 키워내고, 광주 5.18의 기억과 기록을 지켜낸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이 언덕에 깃들어 있어요. 그들의 시작은 모르지만 그들의 끝을 모르는 사람은 양림에 없죠. 죽는 날까지 사명을 마치고 결국 가족과 함께 이 동산에  묻혔으니까요. 몽마르뜨의 말뜻이 그대로 담긴 순교자의 언덕인 거죠."


양림동산의  선교사 사택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죽고 싶은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난 사람들, 돌아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낯선 땅에 도착한 자발적 난민들.. 이 언덕에 삶의 뿌리를 옮겨심기 위해 먼 곳에 두고 온 고향을 닮은 집과 교회를 세우고, 죽어서 몸을 누일 숲과 나무를 가꾸었던 순례자들의 삶이 동산 곳곳에 깃들어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호랑가시나무 언덕에 머물 때면 내 존재의 앞과 뒤로 흐르는 100년의 시간을 자꾸 헤아려보곤 했다. 혹여 시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사라질 일들에 삶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스러지고 난 후에도 남아 봄꽃을 피워 올릴 생명 깃든 열매는 엇일지.. 양림 동산에 깃든 100년의 시간은 그렇게 거울이 되어 삶의 말을, 글과 걸음들을 돌아보게 한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양림동의 봄을 뒤덮고 있는 것은 다만 꽃과 나무가 아니었다. 13명의 예술가들이 동네 곳곳 16개의 가게와 식당 카페에서 전시를 하고 아트마켓을 여는 양림 골목 비엔날레와 더불어 호랑가시나무 아트 폴리곤에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벚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호랑가시 아트 폴리곤에선 2021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 작인 코라크리크 아루나론드 차이의  "죽음을 위한 노래(Song for Dying,2021)"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헌기 대표는 이 전시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며 늦은 오후, 아트 폴리곤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트 폴리곤은 전시를 위해 빛을 가리고 지붕 한 켠 만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바닥에 놓여있는 , 빈백에 저마다 누워 고요히 전시를 보는 사이, 천천히 지구의 빛들이 스러지며, 푸른 어둠이 큰 나무의 꼭대기부터 천천히 지붕을 덮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푸른 어둠의 시간을 땅과 하늘의 경계가 열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작가는 영상작업을 하는 동안 실제로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 임종의 순간을, 마침내 죽음이 도착하고 육신이 사라지는 장례의 절차기록한다. 한 사람의 삶에 깃든 죽음과 이별의 서사 위로 세계의 무수한 죽음과 죽임들이 켜켜이 포개어진다. 병실에서 시작된 여행은 물결을 따라 바닷속 심연으로, 가본 적 없는 삶 바깥의 낯선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경계를 신화와 제의로 건너기도 하고, 개인의 죽음 너머 공포의 밀실과 폭력의 광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애도의 기억과 의례들은들은 태국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제주의 4.3과  오월의 광주로,  그리고 지금 이 시간 피 흘리며 군홧발에 쓰러져 가는 미얀마거리에도 다다른다.  



기억의 지층


작품이 끝나갈 무렵, 어둠이 깃든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정헌기 대표는 나지막이 말한다.

"설치를 위해, 또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이 전시를 몇 번을 보는지 몰라요. 그때마다 저 영상 속의 시간에 갇혀있는 미얀마를 보면서 5.18의 광주에 다다라요. 10살 어린아이였던 제게 고등학생이던 누나가 들려주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해요. '이제 곧 미군이 올 거야, 이제 곧 사람들이 우릴 구하러 올 거야. 조금만 더 참아'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걸 광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죠. 지금 미얀마에도 더 크고 참혹한 죽임이 오고 있을 뿐 어떤 구원도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이 세계가 저 죽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을, 80년 광주 바깥에서 광주를 보듯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셈이죠"

매일 역사의 무게로 뉴스를 보는 날들이 전시의 메세지들 위로 오버랩되며 그가 매일 내려서야 하는 기억의 지층은 80년, 오월의 광주로 있닿는 기억의 통점들였다.


전시를 보는 사이, 낮은 스러지고 밤은 물처럼 깊고 차갑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영상 속의 푸른 물속에서 수면으로 쏟아지는 빛을 보는 것 마냥, 아트 폴리곤의 지붕 위로 스며드는 빛에 숨을 모두었다. 그제서야 왜 이 전시의 장소가 거대한 전시장 아니라 아트 폴리곤이었어야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억의 냄새, 휘발되는 통증


37개의 화산석에  부착된 번호표를 따라가면 그날의 기록과  기억의 냄새에 다다른다. 시셀 툴라스 작, 사진 박시호 작가


호랑가시나무 언덕에 깃든 비엔날레의 전시는 '죽음을 위한 노래'에서 글라스 폴리곤에 전시된 냄새 연구가이자 작가이며, 화학자인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언어학자이기도 한 시셀 툴라스는 제주 현장 리서치 중 만나게 된 제주도민 양신하 씨의 70년간의 일기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언어학자이기도 한 그는 "냄새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을 유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그 냄새에는 언어로 담을 수 없는 한과 같은 것, 말이 되지 못한 탄식 같은 비언어적 언어들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글라스 폴리곤 투명한 햇빛아래는 37편의 일기와 37개의 검은 돌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의 돌에는 하나의 기록이 연결되어, 그 날의 기억과 냄새가 담겨있다. 화산석에 붙어있는 날짜를 확인한 후, 돌맹이를 들고 기록 앞에 서면 기억의  냄새가 살아온다.


전시를 관람 중인 이조흠 작가, 사진 박시호 작가


어떤 예리한 말로도 담을 수 없던 죽음의 냄새, 벽지와 방바닥에 절어버린 탄식의 냄새, 오래 흐느끼고 난 몸에서 나던 슬픔의 냄새,  한밤중 소리없이 흘리던 눈물의 냄새가 제주의 검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것이었다. 검은 돌 하나를 들고 기록 앞에 선 사람은 냄새를 맡기 위해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마치 누군가 들이쉰 들숨의 무게만큼 양신하 씨에게 깃든 기억의 통증이 휘발되는 것인 양... 돌을 들고 기억의 냄새를 나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서면 파트리샤 도밍게스가 열대우림의 불길 속에서 마주한 자연과 동물들의 삶과 죽음의 현장이 담겨있다. 불길을 일으키며 동물과  원주민들을 몰아내던 폭력에 맞서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어가는 자의 편에 서서 다른 눈으로 죽임을 기록하는 작가의 시선에 도착한다.



시간은 존재로, 죽음은 삶으로


깊고 모호했던 비엔날레의 제목 속에 담아둔 거대한 세계들을, 깊은 기억에 다다르는 심연의 작품들을 한두 시간에 관람하고 이해한다은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랑가시나무에 머무는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틈을 내어, 다시 전시 앞에 머물곤 했다. 전시가 데려가는 심연에 내려서고 나면, 숨을 쉬기 위해 바다 위를 향하듯  잠시 맑은 햇빛 속을 거닐어야 했다. 어쩌면 그 전시들을 보기 위해 관람자가 견뎌야 할 수압, 마음의 밀도가 이 전시를 호랑가시나무 언덕으로 가져온 이유였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비엔날레 주최 측은 양림산을 2021 비엔날레의 주제 전시공간으로 삼은 이유를 공식적으로 이렇게 기록해 두고있다.


"양림산은 일제 강점기 및 반일 운동, 기독교 복음 전도, 공동의 보건 복지, 미국 선교사들의 전략적 역할 등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다단한 면면이 얽히고설킨 상징적이고 신성한 장소로, 광주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신성한 장소.. 그 말에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 오래전 풍장터였던 양림동 언덕의 끄트머리, 우리는 어쩌면 그 신성한 장소에서 비엔날레와 전시라는 형식을 빌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는 죽음들을, 눈물과 탄식을 바람에 내어맡기는 풍장을 치르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호랑가시나무 언덕길, 푸른 어둠이 켜지는 저녁  _ 사진 정헌기 



신의 ㅅ ㅈ ㅅ ㅈ


양림 골목 비엔날레에 담긴 삶의 전시에서 아트폴리곤에 깃든 비엔날레 전시까지 양림 곳곳에 깃들어 있는 예술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길.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8인의 레지던시 작가전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리플렛을 챙겨 두었다.


수수께끼 같은 전시의 제목은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끄 아탈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인류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주제로 꼽은 네 개의 키워드를 담아낸 네 개의 초성이라 했다. 양림에 올 때면 간혹 마주치기도 했던 8인의 작가들이 써둔  전시를 설명하는 문장들은 간결하고 담백했다.


"타인과 단절된 고독의 시간, 방어막 없이 가까워진 죽음의 그림자, 전 커진 좌절과 슬픔, 울어주는 이 없는 장례식은 지난 1년여간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전시공간은 1920년대, 한센병, 결핵환자들을 돌봤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남긴 8개의 방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타인의 삶을 위하여 헌신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이들이 살았던 공간은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장이 될 수 있다. 이 안에서 시간은 존재로, 죽음은 삶으로, 슬픔은 정신 면역으로, 장례식은 또 다른 생명으로 공명한다"

ㅡ 박계연, 전시 리플렛 중


전시를 담아낸 문장들을 촘촘히 살피며 행간에 스민 이야기의 냄새를  맡아본다.  

가파른 시절, 이 언덕에 머문 젊은  예술가들이 나누어 가졌을  따뜻하고 생의 위로와 기억의 냄새를..

한 문장을 여행 노트에 찬찬히 옮겨적으며

양림에 깃드는 마음의 순례를 마친다.


"이 안에서

시간은 존재로,

죽음은 삶으로,

슬픔은 정신 면역으로,

장례식은

또 다른 생명으로

공명한다."


이 안에서..



호랑가시나무 언덕의 겨울 _ 사진 정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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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

http://www.horanggasy.kr/wpage/index.php


제 13회 광주비엔날레

https://www.gwangjubienna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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