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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말숙이 언니 용숙이

아침 빨래터는 온 동네 아줌마들이 다 모인다. 나는 맨 아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를 했다. 형춘이 똥 기저귀라서 눈치가 보였다. 형춘이는 등 뒤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얼른 빨래하고 가서 분유를 타 줘야겠다. 어머니 마른 젖은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대야 맨 밑에 깔린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옆 아주머니들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빨래를 헹구고 있던 밭 한가운데 있는 감나무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야, 야! 뭐하노? 폐병 옮길 일 있나?”     


  빨래터 아주머니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양손 안에 넣고 꼭 쥐고만 있었다.      


  “우리 빨래 다 하고 나서 해라! 그라고 앞으로 그런 빨래는 밤중에 하던지!”     


  빨래를 그대로 양손에 쥐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뚝 뚝 흘렀다. 자꾸만 자꾸만. 가슴이 아프고 서럽고 그랬다.     

  “치아소, 마!”     


  갑자기 감나무집 아주머니와 나 사이로 플라스틱 대야 하나가 훅- 밀고 들어왔다.     


  “빨래터 전세 냈나? 와, 아침부터 쪼매난 아한테 난리고, 난리는!”     


  나래비 집 3호 김양 언니다.


  “빨래 이리 내라!”     


  김양 언니가 갑자기 내 손에 쥐고 있던 빨래를 확- 뺏아 갔다. 아주머니들은 순간 무슨 벌레 보는 것처럼 몸을 뒤로 젖히면서 인상을 막 썼다. 김양 언니는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누칠해서 빡빡 문질렀다. 그리고는 아래 흐르는 물에 넣어서 막 흔들고는 또 비누칠해서 빡빡 문지르고 또 물에 넣어서 흔들고 했다.     


  “인간들이 다 와 그렇노? 저거는 오데 안 아플 거 같나? 쪼매난 아 한테 아침부터 서럼이나 주고! 몬 때 쳐 묵은 인간들이.”     


  아주머니들은 김양 언니 기세에 눌려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 나는 눈물을 한 손으로 닦으면서 일어나서 형춘이를 다시 고쳐서 업었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술집 다니는 년들은 더런 것도 모르제, 참!”     


  감나무집 아주머니가 빨래 대야를 들고일어나서 한 마디 쏘아붙였다.      


  “지금 뭐라 캤노?”

  “술집 년을 그라모 뭐라 카꼬?”

  “야!”     


  양손에 비누거품이 가득한 채 김양 언니는 벌떡 일어나서 감나무집 아주머니를 향해 막 덤벼들었다. 감나무집 아주머니도 소리를 지르면서 김양 언니 머리채를 잡고 둘이 갑자기 뒤엉켜서 빨래터 옆으로 넘어져서는 그대로 머리채를 잡고 때리고 난리였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옆에서 말리고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형춘이를 엎은 채 구석에서 손톱만 물어뜯고 서 있었다.     


  “고마 해라!”     


  갑자기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다. 서영이 엄마였다. 그 소리에 감나무집 아주머니도 김양 언니도 슬금슬금 일어나서 흙투성이 옷을 털었다. 두 사람 다 머리카락이 귀신같았다.      


  “아침부터 온 동네 시끄럽구로! 쯔쯧, 아 한테 안 부끄럽나? 어이?”     


  감나무집 아주머니는 빨래 대야를 들고 고개를 숙인 채로 밭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다른 아주머니들도 하나 둘 자기 빨래를 들고 떠났다. 서영이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커다란 대야에 한가득 담긴 빨래를 툭 내려놓으면서 빨래를 시작했다.


  김양 언니는 한 손에 움켜쥔 머리카락을 빨래터 옆에 탁탁 털었다.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언니, 고마버예!”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숙아! 니 무슨 죄지었나? 어깨 딱 피고, 딱! 당당하게!”     


  김양 언니가 내 가슴팍을 탁탁 쳤다.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은 어른도 아이다! 당당하게 니 할 말 해라, 알았제?”

  “쯔쯧, 아 한테 잘 가르친다!”

  “아지매가 안 봐서 그래예! 피묻은 빨래 빤다꼬 아한테 얼마나 서럼을 주는지!”

  “몬 때 쳐 묵은 여편네들!”


  갑자기 기운이 막 솟고 힘이 났다. 우리 동네에 서영이네랑 김양 언니 같은 사람들만 살면 좋겠다.      


  “용숙아. 어머이는 좀 어떠시노?”

  “기침이 더 심해지시고... ”

  “큰일이네! 형춘이 낮잠 자모 우리 집에 잠깐 오너라. 곰국을 좀 했는데, 어머      이 드리라! 폐병은 몸에 기름기가 돌아야 빨리 낫는단다. 형춘이도 쪼매 묵이고! 야, 야! 니도 한 그릇 묵고! 아-가 갈수록 빼짝 마르노!”


  나는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그렇게라도 인사를 안 하면 미안해서 안 된다. 어머니가 그랬다. 도와주시는 분들 전부 딱 기억해 두라고. 사람이 절대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고. 사람하고 짐승이 다른 점이 그거라고.      


  점심때 형춘이를 재우고 서영이네서 얻은 곰국을 어머니상에 올렸다. 어머니는 모처럼 아주 맛나게 한 그릇을 비우셨다. 서영이 엄마 말처럼 폐병에는 정말 고깃국이 최고인가 보다. 그런데 아버지 월급으로는 매일 고깃국을 먹을 수도 없다. 항아리에 쌀도 벌써 떨어져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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