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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망보는 서영이


  “서영아! 목욕탕 안 갈래?”

  “싫다! 무섭다!”   


   희자 언니가 갑자기 일요일 아침부터 목욕탕에 가자고 난리다. 가면 또 때수건으로 등에 피가 나게 밀어댈 게 뻔하다. 못된 희자 언니.      


  “동네 목욕탕 말고. 시내 아주 크고 좋은 목욕탕 데려 갈긴데! 짜장면도 묵고!”

  “짜장면?”

  “친구들이 그라는데, 시내 목욕탕 물이 그래 좋다 안 카나!”     


  그 ‘짜장면’이라는 말에 홀려 무작정 희자 언니를 따라갔다. 엄마는 무슨 목욕탕을 시내씩이나 가냐면서도 우리에게 점심값을 주었다. 오늘 희덕이 언니는 시골에 농사 도우러 내려갔다. 희자 언니는 피곤하다고 안 내려갔다. 그래도 나는 신이 났다.        


  파란색 목욕 대야에다가 샴푸랑 비누를 챙겨 들고 버스를 탔다. 꼭 멀리 여행 가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니는 목욕 대야를 바닥에 놓고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또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머리가 아프고 속이 이상했다. 시내 나온다고 버스를 탈 때마다 항상 그랬다. 버스가 막 흔들렸다. 머리가 더 심하게 아팠다. 속도 울렁거리고.     


  희자 언니는 진땀을 흘리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조금만 참아라!”     


  너무 머리가 어지러워서 버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일어났다.     


  “꼬마가 멀미 하는 갑네! 여기 앉아라!”     


   희자 언니는 얼른 의자에 앉더니 자기 무릎 위에 나를 앉혔다. 언니가 창문을 조금 열어주었다. 바람이 조금씩 들어왔다. 나는 코를 문틈에 대고 바깥바람을 막 들이마셨다. 속이 조금 나아졌다.


  버스는 계속 덜컹거리면서 갔다.     


  “경남 데파트 내리소! 경남 데파트!”     


  차장이 소리를 질렀다. 언니는 얼른 나를 안고 일어나서 내렸다. 후- 살았다.      


  큰길에서 목욕탕 굴뚝이 보였다. 목욕탕이 진짜 커다랗다. 우리 동네‘남향탕’보다 다섯 배는 크다. 그런데 목욕탕 입구에서 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당겼다.     


  “니, 국민학생이냐고 하면 절대로 아니라고 해라! 알았제?”

  “싫다! 내 국민학생 맞자나!”

  “가쓰나야! 목욕비 아끼서 나중에 아이스께끼 한 개 사 묵어야지!”     


  희자 언니는 공부도 내보다 못하는데 계산은 진짜 천재다. 나는 언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 목욕탕에 들어갔다. 입구에 심술꾸러기 같이 생긴 주인아줌마가 내 아래위를 자꾸 훑어본다.      


  “맷 살?”

  “일곱살 입니더!”     


  나는 언니 치마 뒤에만 숨었다.      


  “야, 야! 니 참말로 일곱 살이가?”     


  나는 뒤에 숨어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가, 영 숫기가 없는 거 본 께 맞는 갑네!”     


  언니는 목욕비를 내고 내 신발까지 들고 분홍색 꽃무늬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얼른 따라 들어갔다.      

  “서영아! 잘했다!”     


  언니는 칭찬하면서 커다란 병 우유 한 병을 샀다. 목욕탕 안에는 발가벗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지나갈 자리도 없다. 김도 뿌옇게 올라오고 숨이 막혔다. 아. 목욕탕은 진짜 짜증 나는 곳이다. 언니는 나보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하더니 목욕탕 안을 한 바퀴 돌고 대야 두 개랑 의자 두 개를 들고 왔다. 언니는 가슴도 불룩하고 엉덩이도 불룩하다. 여자들은 왜 어른이 되면 자꾸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민이 형처럼 길쭉하고 밋밋하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데.      


  커다란 탕 한쪽에 비집고 앉았다. 탕 바로 옆에는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다. 언니는 탕 쪽으로 가서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왔다. 뜨거운 지 손가락을 넣었다.     

 

  “마시라!”     


  병에 든 찬 우유가 목구멍 속에 들어가니까 숨이 좀 쉬어졌다. 시원했다.      


  “이 대야 가지고 놀고 있다가 때 좀 불모 밀어 주께!”

  “안 밀모, 안 되나?”

  “내 고모한테 맞아 죽는 거 보고 싶나?”

  “알았다!”     


  목욕을 다하고 나오니까 아직도 대낮이었다. 희자 언니는 분도 바르고 입술도 빨갛게 칠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골목 안으로 막 들어갔다. 빨갛고 커다란 등이 막 있는 중국집이다. 언니는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 용팔이 삼촌이다!”     


  용팔이 삼촌이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희자 언니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두 사람 다 성난 사람들처럼 쳐다본다.      


  “용팔이 삼촌도 짜장면 묵으러 시내 왔나?”     


  용팔이 삼촌은 나를 보면서 웃었다.     


  “어! 서영이도 보고 좋네! 앉아라! 오늘은 삼촌이 사 주께!”

  “삼촌! 또 피 팔았나?”

  “가씨나 야! 다 듣겠다!”     


  갑자기 희자 언니가 화를 낸다. 나는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건데. 또 피 팔고 쓰러지면 그때는 진짜 큰일 난다고 아버지가 그랬는데.     


  “서영아! 삼촌, 시내 커다란 공장에 취직했다!”

  “와! 진짜?”

  “인제 피 안 팔아도 된다! 걱정 마라!”

  “휴- 다행이다!”     


  삼촌은 자장면이랑 비싼 탕수육까지 주문했다. 진짜 이제 돈이 많은가 보다. 그런데 희자 언니 표정은 자꾸 찌그러진 냄비 같다. 자장면도 달고 고소하고 맛 나는데. 탕수육에 초간장을 찍어 먹으니까 입에서 살살 녹았다. 진짜 맛나다.     


  “희자 씨도 많이 먹어요!”     


  아버지 말이 맞다. 삼촌은 그래도 양반이다. 선머슴 같다고 하는 우리 희자 언니한테 꼭 꼭 높임말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희자 언니는 용팔이 삼촌 앞에서는 완전히 순한 양이다. 말도 제대로 잘 못한다. 얼굴만 빨개지고 어떨 때는 막 더듬거리기도 한다. 아버지 말처럼 점잔하고 다른 사람한테 예의 바르게 하면 함부로 못 대하는 게 맞는가 보다.     


  중국집에서 나오니까 멀리서 애국가가 들렸다. 우리는 길에 섰다. 애국가가 다 끝나고 삼촌과 언니는 또 언덕 위로 자꾸 올라갔다. 버스 정류장은 저 아래인데.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 언덕 위에는 철길이 있었다.      

  나는 철길 사이에 있는 자갈을 가지고 놀았다. 삼촌과 언니는 저 쪽 철로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저렇게도 길게 하는지. 이제 자꾸 어두워지는데. 나는 어느새 소꿉놀이에 푹 빠졌다. 등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용팔이 삼촌은 우리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희자 언니는 대문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이랑 입술을 막 문질렀다. 희자 언니가 조심스럽게 초록대문을 열었다.      

  끼이--익.     

  마당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엄마랑 희덕 언니도 서 있다.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엄마랑 희덕 언니가 달려왔다.     


  “지금이 몇 시고?”     


  엄마가 희자 언니에게 아주 화 난 목소리로 말했다. 희덕 언니는 희자 언니 목욕 대야를 확 잡아들었다. 마루에 앉아있는 아빠 표정이 아주 무서웠다. 나는 무서워서 희자 언니 치마 뒤로 숨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아당겨 수돗가로 갔다.     


  “목욕탕 갔다 왔다는 아, 꼴이 이기 뭐꼬?”     


  희자 언니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희자, 이리 오너라!”     


  아버지가 마당 한가운데 희자 언니를 불러 세웠다. 엄마가 수돗가에서 내 얼굴을 하도 세게 문질러서 아팠다. 그래서 찡그리면서 고개를 막 돌리니까 저 멀리 용팔이 삼촌 방 들창문이 조금 열려 있다. 불도 꺼져 있는데 문만 열려 있다.      


  “오데 갔다 왔노?”

  “목욕탕-예!”


  아버지는 진짜 무서운 얼굴로 희자 언니를 쳐다봤다. 희자 언니는 고개도 못 들었다.      


  “희덕이 이리 온나!”     


  희덕이 언니가 달려왔다.     


  “짐 싸서 내일 아침 첫 버스로 희자 시골 내리 보내라!”

  “예!”

  “고모부! 잘 몬 했습니더!”     


  희자 언니가 갑자기 울었다.      


  “늦은 밤에 곡소리하나?”     


  아버지는 진짜 무서웠다. 나는 무서워서 세숫대야에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촌에 내리가모 아부지한테 맞아 죽습니더!”

  “짐 싸거라!”

  “고모부! 다시는, 다시는 안 그라께예!”     


  희자 언니가 갑자기 마당에 꿇고 앉아서 손바닥을 대고 막 빌었다. 아버지는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골방 용팔이 삼촌 방문이 조금씩 움직이며 닫혔다. 희자 언니는 마당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마루로 안아 올렸다.      


  “일어나라!”     


  희덕 언니가 팔을 당기니까 희자 언니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일단 들어가거라!”     


  엄마가 희자 언니에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무서워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빠!”     


  그때 마당 끝에 난 용팔이 삼촌 방 들창문 닫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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