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누워도 잠이 오질 않는다. 드디어 내일.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
종일 기섭이가 다니는 종로 1가 교회에서 기타 반주를 맞추고 수 십 번은 리허설을 했다. 기섭이가 작곡한 리듬에 내가 가사를 넣었다.
계절은 오늘도 내~~~ 곁을 지나가고~~~~ 그대는 오늘도 내~~~ 곁을 스치는데~~~~~
기섭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내 허스키보이스가 잘 어울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천천히 일어나 들창문을 내다보았다. 손톱모양 초승달이 앙증맞게 떠 있다. 우리 안나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달 모양이다.
단아하고 멋진 우리 누나. 다들 지금쯤 곤하게 잠이 들어 있겠지. 마리아는 요새 방송통신대학이라는 데를 다닌다고 들었다. 낮에는 시내 작은 금고에서 일하고 밤에는 라디오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지금쯤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억척같은 동생. 나 때문에 늘 피해만 본 내 동생. 가끔 마리아가 주는 용돈은 절대 쓸 수가 없다. 그 용돈이 법전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우리 막내 로사는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누워 이를 박박 갈면서 코를 골고 자고 있을 것이다. 귀여운 아이.
다만 걱정이 하나 앞선다. 내일 본선진출은 전국적인 생방송이 나간다. 마산 식구들은 아무도 모르는데. 아버지가 아시면 불호령일 테고 어머니나 안나 누나도 머리 잡고 뒤로 넘어갈 것이고. 공부하다가 하도 답답해서 처음에는 재미로 기타 반주를 맞추고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했던 것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구나 기숙하고 있는 고모님네 식구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그들이 아는 낭만대학생들의 취미 기타인 줄로만 아시는데.
내가 쓴 몇 곡의 노래가 대학가에서 종종 부르는 노래가 되어버렸다면 정말 온 식구들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저 누런 갱지에 악보 끄적이며 몇 곡 적어 빈 강의실이나 잔디에 앉아 기타로 연주했을 뿐인데, 지나가는 학우나 친구들이 따라 부르기 좋다면서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가 버렸다. 많이 난감했다.
심지어 지난번에는 유신철폐시위에서 내 노래를 다들 부르지 않는가. 너무 놀라서 화단 뒤에 숨어 떨었던 적도 있다.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이상하게 자꾸 일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간이 콩알만 하고 소심한 스물둘인데. 군대도 가야 하고 ….
아. 이렇게 좋은 날 왜 또 이렇게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무는 지.
학교는 종종 휴교령이다. 요즘은 어머니 등골 빼는 등록금 내면서 왜 대학을 다니나 싶을 지경이다. 고모부님은 졸업장만 따라고 늘 그러신다. 법대생이 졸업장만 따서 무얼 한다고. 사법고시 몇 번 쳐서 안 되면, 아는 법무사 사무실에 취직하면 된단다. 동창들이 판검사로 포진해 있을 법원에 나더러 심부름이나 하면서 다니란 말인가? 답답하다.
아무튼 그래도 내일 드디어 본선 진출이다. 스물두 살 내 생애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방송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러다가 밤 꼬박 새우는 건 아닐까? 내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운명이란 과연 나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