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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행복한 우리 집

형식이 누나 향지

   며칠 후면 봄 소풍이다.     


  그러면 아빠는 또 카메라를 메고 우리 학년 소풍 장소에 따라올 거다. 참, 형식이가 입학을 했으니까 어쩌면 일 학년 소풍 장소로 가실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날은 우리 아빠가 제일 멋지게 보이는 날이다. 비싼 카메라를 들고 반별 단체 사진을 찍는데 선생님들도 모두 우리 아빠 카메라 앞에서는 차렷 자세다. 우리 아빠는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지시한다. 그러면 아무도 거역하지 못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모두 순한 양이 된다. 조금 더 예쁘게 보이려고 우리 아빠한테 더 굽신거린다. 우리 학년에서 제일 무서운 호랑이 체육 선생님도 사진기 앞에서는 벌벌 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우리는 몰래 뒤에서 킥킥대고 웃는다.      


  이날은 맨날 잘난 척하는 부자도, 인기 많고 예쁜 영주도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자네 집에도 사진기가 있지만 우리 아빠 대형 카메라에 비하면 턱도 없다. 그날은 사진 한 번 더 공짜로 찍으려고 아이들이 내 옆에만 졸졸 따라다닌다. 아빠는 그날만 특별히 나랑 찍는 애들에게는 공짜로 사진 현상을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무당 할머니 집 건너 방이다. 마당 들어서면 바로 마루 정면에 신당이 있다. 신당 오른쪽이 무당 할머니 방이고 왼쪽이 우리 집이다. 그리고 우리 집을 빙 돌아가면 어두컴컴한 뒷방이 하나 더 있다. 거기는 용숙이네다. 용숙이는 이번에 4학년에 진급하지 못했다. 용숙이 어머니 병이 점점 심해져서 갓난아기 형춘이를 볼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맨날 형춘이를 업고 집안 살림을 용숙이가 다 한다. 아침에 내가 학교 가려고 마루에서 엄마가 머리를 땋아주시면, 용숙이는 걸레통을 들고 형춘이를 업은 채 부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서서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엄마는 용숙이가 그러고 있으면 형춘이를 받아 안았다.    

  

  “용숙이, 아침 안 묵었제?”

  “괜찮아예!”

  “우리 부엌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남았다. 아침에 소고깃국을 끓있는데 간이 맞는가 모르것다. 냄비 채로 들고 가거라. 얼른 들어가서 어머이 드리고 한 숟가락 묵고 나오너라!”

  “번번이.”

  “쪼매난 아-가 그런 인사치레 안 한다! 얼른.”     


  용숙이가 들어가고 나면 엄마는 또 형춘이 목욕물을 아궁이에 끓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가 천사처럼 보였다. 아빠도 그런 엄마의 착한 마음씨에 반해서 몇 달이나 따라다니다가 겨우 결혼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아빠가 사진이나 찍는 딴딴라라고 완전히 반대하셨다는데 지금은 명절마다 시골에 내려가서 동네 사람들 사진 찍어주고 하니까 아빠만 보시면 웃으신다. 어른들은 참 변덕도 심하다.      


  “쯔쯧, 또 헛공 들인다!”     


  무당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마루를 기다시피 나온다.      


  “흐흐, 와 예!”

  “그란다꼬 죽을 년이 살까?”

  “쉿, 아침부터 또 와 이랍니꺼?”     


  엄마는 뒷방 용숙이가 들을까 봐 고개를 돌려서 눈치를 본다. 무당 할머니가 정말 싫다. 심술쟁이, 욕쟁이 할머니! 무당이라면서 열 번에 한 번을 맞추는 법이 없다. 대문에 꽂아둔 대나무에 오색실도 먼지투성이고. 제발 점도 못 치면서 대나무라도 좀 뺏으면 좋겠다. 우리 집을 아는 애들은 모두 놀린다. 무당집에 산다고. 작년까지는 그럴 때마다 용숙이가 덤벼서 애들을 다 막아줬다. 그런데 이제는 용숙이도 학교에 없고. 내 앞날이 캄캄하다.      


  “형식아, 학교 가자!”     


  무당 할머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방 안에서 뒹굴거리는 형식이를, 집이 떠나가게 불렀다. 엄마는 용춘이를 마루에 눕히고 뛰어나오는 형식이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천천히 조심조심 다니거라!”     


  우리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대문을 나섰다.     


  “다 헛공이라!”     


  무당 할머니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다.     


  “향지야, 마치면 곧장 오너라!”     


  착한 우리 엄마 목소리다.     


  “예!”     

  나는 골목이 떠나가게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형식이 손을 잡고 골목을 막 뛰어나갔다. 골목 끝 빨래터를 지나 넓은 밭으로 나가니까 아이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다.     


  “어! 서영아!”     


  형식이는 내 손을 놓고는 앞에 가는 서영이랑 영민이 쪽으로 막 달려갔다. 나 보고는 영민이 잘난 척해서 꼴 보기 싫다더니만 그래도 서영이는 좋은가보다.      


  “무당집 향지!”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째려보면서 뒤로 홱 돌아봤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다. 역시 부자다. 오늘은 또 꽃무늬 원피스에 흰 스타킹에 예쁜 구두까지 신었다. 피부가 깜 해서 그렇지 예쁘긴 하다. 부자 뒤에는 무뚝뚝한 연자가 따라가고 있었다. 연자는 체크무늬 바지에 아직도 두꺼운 겨울코트를 입고 있다. 부자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내 옆을 지나갔다. 연자는 꼭 시녀처럼 졸졸 따라간다. 같은 자매인데 어떻게 저렇게 차별할 수가 있을까. 부자는 피아노에 발레에 안 배우는 게 없고 연자는 맨날 걸레통만 들고 빨래터에서 산다. 돈도 많으면서 참 이상하다.        


  뒤에서 영주네 아이들이 달려왔다.     


  “향지야, 오늘 수업 마치고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진짜? 혹시 용숙이도 데려가도 되나?”

  “당연하지!”     


  영주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찰랑대면서 동생 미주랑 영석이를 양손에 잡고 걸어갔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영주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공부며 피아노며 무용까지 못 하는 것도 없고.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밭 너머 큰 다리를 지나면서 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까 저 쪽에서 말숙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말숙아. 학교 안 가고 뭐 보노?”

  “그냥. 우리 언니하고 같이 학교 다니고 싶었는데.”

  “가자! 내하고 가면 되지!”

  “….”

  “준비물 떨어지면 우리 교실로 와라! 4학년 10반이다! 알았제?”

  “응, 언니!”     


  말숙이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나는 말숙이 손을 꼭 잡고 다리를 건너 기차 굴도 지나 유채밭에서 유채 한 줄씩을 뽑아 질겅질겅 씹으면서 갔다. 아이들이 구름처럼 교문 근처에 모여 있었다. 

  세상은 모두 공평하지만은 않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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