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노 Jul 24. 2024

어린 주부

용숙이

   아침 빨래터는 온 동네 아줌마들이 다 모인다. 나는 맨 아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를 했다. 


  형춘이 똥 기저귀라서 눈치가 보였다. 형춘이는 등 뒤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얼른 빨래하고 가서 분유를 타 줘야겠다. 어머니 마른 젖은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대야 맨 밑에 깔린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옆 아주머니들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빨래를 헹구고 있던 밭 한가운데 있는 감나무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야, 야! 뭐하노? 폐병 옮길 일 있나?”     


  빨래터 아주머니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양손 안에 넣고 꼭 쥐고만 있었다.      


  “우리 빨래 다 하고 나서 해라! 그라고 앞으로 그런 빨래는 밤중에 하던지!”     


  빨래를 그대로 양손에 쥐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뚝 뚝 흘렀다. 자꾸만 자꾸만. 가슴이 아프고 서럽고 그랬다.     

  “치아소, 마!”     


  갑자기 감나무집 아주머니와 나 사이로 플라스틱 대야 하나가 훅- 밀고 들어왔다.     


  “빨래터 전세 냈나? 와, 아침부터 쪼매난 아한테 난리고, 난리는!”     


  나래비 집 3호 김양 언니다.


  “빨래 이리 내라!”     


  김양 언니가 갑자기 내 손에 쥐고 있던 빨래를 확- 뺏아 갔다. 아주머니들은 순간 무슨 벌레 보는 것처럼 몸을 뒤로 젖히면서 인상을 막 썼다. 김양 언니는 어머니 각혈이 묻은 빨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누칠해서 빡빡 문질렀다. 그리고는 아래 흐르는 물에 넣어서 막 흔들고는 또 비누칠해서 빡빡 문지르고 또 물에 넣어서 흔들고 했다.     


  “인간들이 다 와 그렇노? 저거는 오데 안 아플 거 같나? 쪼매난 아 한테 아침부터 서럼이나 주고! 몬 때 쳐 묵은 인간들이.”     


  아주머니들은 김양 언니 기세에 눌려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 나는 눈물을 한 손으로 닦으면서 일어나서 형춘이를 다시 고쳐서 업었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술집 다니는 년들은 더런 것도 모르제, 참!”     


  감나무집 아주머니가 빨래 대야를 들고일어나서 한 마디 쏘아붙였다.      


  “지금 뭐라 캤노?”

  “술집 년을 그라모 뭐라 카꼬?”

  “야!”     


  양손에 비누거품이 가득한 채 김양 언니는 벌떡 일어나서 감나무집 아주머니를 향해 막 덤벼들었다. 감나무집 아주머니도 소리를 지르면서 김양 언니 머리채를 잡고 둘이 갑자기 뒤엉켜서 빨래터 옆으로 넘어져서는 그대로 머리채를 잡고 때리고 난리였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옆에서 말리고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형춘이를 엎은 채 구석에서 손톱만 물어뜯고 서 있었다.     


  “고마 해라!”     


  갑자기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다. 서영이 엄마였다. 그 소리에 감나무집 아주머니도 김양 언니도 슬금슬금 일어나서 흙투성이 옷을 털었다. 두 사람 다 머리카락이 귀신같았다.      


  “아침부터 온 동네 시끄럽구로! 쯔쯧, 아 한테 안 부끄럽나? 어이?”     


  감나무집 아주머니는 빨래 대야를 들고 고개를 숙인 채로 밭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다른 아주머니들도 하나 둘 자기 빨래를 들고 떠났다. 서영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커다란 대야에 한가득 담긴 빨래를 툭 내려놓으면서 빨래를 시작했다.


  김양 언니는 한 손에 움켜쥔 머리카락을 빨래터 옆에 탁탁 털었다.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언니, 고마버예!”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숙아! 니 무슨 죄지었나? 어깨 딱 피고, 딱! 당당하게!”     


  김양 언니가 내 가슴팍을 탁탁 쳤다.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은 어른도 아이다! 당당하게 니 할 말 해라, 알았제?”

  “쯔쯧, 아 한테 잘 가르친다!”

  “아지매가 안 봐서 그래예! 피 묻은 빨래 빤다꼬 아한테 얼마나 서럼을 주는지!”

  “몬 때 쳐 묵은 여편네들!”


  갑자기 기운이 막 솟고 힘이 났다. 우리 동네에 서영이네랑 김양 언니 같은 사람들만 살면 좋겠다.      

  “용숙아. 어머이는 좀 어떠시노?”

  “기침이 더 심해지시고... ”

  “큰일이네! 형춘이 낮잠 자모 우리 집에 잠깐 오너라. 곰국을 좀 했는데, 어머이 드리라! 폐병은 몸에 기름기가 돌아야 빨리 낫는단다. 형춘이도 쪼매 묵이고! 야, 야! 니도 한 그릇 묵고! 아-가 갈수록 빼짝 마르노!”


  나는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그렇게라도 인사를 안 하면 미안해서 안 된다. 어머니가 그랬다. 도와주시는 분들 전부 딱 기억해 두라고. 사람이 절대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고. 사람하고 짐승이 다른 점이 그거라고.     

 

  점심때 형춘이를 재우고 서영이네서 얻은 곰국을 어머니상에 올렸다. 어머니는 모처럼 아주 맛나게 한 그릇을 비우셨다. 서영이 엄마 말처럼 폐병에는 정말 고깃국이 최고인가 보다. 그런데 아버지 월급으로는 매일 고깃국을 먹을 수도 없다. 항아리에 쌀도 벌써 떨어져 가는데.

이전 15화 세상의 모든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