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이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들창문을 열었다. 뒤뜰 벚나무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가게 안에서도 뒷문으로 보였는지 어머니가 혼잣말을 하고 있다.
“하이고, 곱기도 해라!”
가겟방 옆 작은 골방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새소리가 어찌 저리도 곱노!”
어머니는 한참 동안 멍하니 말없이 뒤뜰 벚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대로 방바닥에 엎드린 채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올해 마흔이 넘은 어머니. 대학생 아들을 둔 젊은 내 어머니. 뒤로 대충 묶어 올린 어머니 머리카락 몇 가닥이 가는 목덜미로 내려와 있었다. 아직 젊은 어머니. 너무 젊은 어머니. 뒤뜰을 바라보는 어머니 두 눈이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애잔했다.
영민이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내 아버지는 ….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대포 집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나와 영민이를 키웠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우리들의 각자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중학교 입학하던 해였다. 나는 잠시 대구에 사는 전파상을 운영하는 외삼촌네로 보내졌다. 거기서 중학교를 다녔고 어머니를 그 후 이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가끔 대구까지 올라와서 나를 살피고 내려가셨다. 대구는 덥고 추웠다. 나는 검정 교복 바지를 질질 끌고 다녔다. 책을 좋아했고 성적도 제법 나왔다. 어머니가 옆에 없었지만 견딜 만했다. 어차피 태어나서부터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내 처지였으니,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중학교 2학년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어느 저녁에, 어머니는 눈처럼 하얗고 작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데리고 왔다.
“니 동생이다!”
어머니는 그 길로 나를 데리고 마산 이 도시로 내려왔다. 변두리 교도소가 있는 동네에 가겟방 달린 작은 집인 지금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도시 끝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날, 외할머니와 대구 외삼촌이 집으로 왔다.
“하이고, 우리 법대생!”
도대체 내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머니는 내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영민이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아버지가 다른 아들 둘을 키운다고 동네 사람들이 가끔 수군대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런 말 따위 무시했다. 대포 집을 한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것 또한 아예 응대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술 취한 손님들이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옆에 있는 그릇이든지 프라이 팬이든지 보이는 대로 내던진다. 웬만한 단골들은 어머니 성정을 알고 아예 손장난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혼자 살기에 아직 너무 젊다.
“엄~~~마!”
영민이가 메리야스 러닝에 팬티 바람으로 천천히 눈을 비비면서 가게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뒤뜰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영민이에게 달려갔다.
“내 새끼, 일어났나?”
어머니 눈 속에 들어찼던 우주가 영민이 눈 속으로 옮겨진다. 어머니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어린 영민이를 안고 한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나는 뒷방 문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지켜내야 하는 사람들. 어머니. 어린 동생. 이 고단한 인생. 그러나 내 삶이고 부끄럽지 않은 가족들. 내 가족들이 좀 더 안락하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내 몫이 아닐까.
내 가족에게는 돈이 중요할까, 삶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누구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중요할까? 돈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 나는 당장보다 높은 보수를 주는 직장을 위해 취업 준비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중요하다면 지금보다 더 열성을 다해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아갈 것이다.
무엇이 정답일까.
“영민아. 가서 형아 깨우라!”
“예!”
“늦게 들어오는 거 같더마는. 한 잔 했는가! 그래도 통금 안 걸리기 다행이다!”
영민이가 내 방 쪽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방 안으로 퍼진다. 영민이의 맑고 밝은 목소리. 우리 영민이.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