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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양장점 영자아줌마

  오후 내도록 골목을 뛰어다니더니 대희가 많이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아빠를 닮아 피부가 창백하게 하얗고 말랐다. 올해 다섯 살이다. 그러고 보니 대희 아빠하고 고향 떠나온 지도 벌써 칠 년이 넘었다. 처음 경상도 땅을 밟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 꼭 못 올 데를 온 것처럼. 그래도 오자마자 서영이네 바깥채를 싸게 세 얻었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구하다가 우리 대희가 태어나고 서영이 아빠 배려로 막걸리공장 본 공장에 대희아빠가 취직하게 되었다.      


  나는 자는 대희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여기 가겟방 이 작은 방에서 우리 대희가 태어났다. 서영 엄마하고 뒤채 로사 엄마가 산파 노릇을 했다. 대희는 저녁 여덟 시쯤 태어났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던지... 집 안 식구들 서영이네, 로사네, 서영이 외사촌들이 다 마당에 모여 있었다. 우리 대희가 태어나자 웃음소리가 마당에서 크게 들렸다. 참 기분 좋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산모 방이라 연탄을 사고 나니까 미역 살 돈이 없었다고 했다. 대희 아빠가 나중에서야 한 얘기지만, 새벽에 산모 미역국을 끓여야 되는데 기가 막혀서 마당가에 서서 하늘만 보고 있는데, 서영 엄마가 커다란 미역 한 톳 하고 종이에 싼 소고기 반 근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더라고 했다. 서영이네도 소장님 월급에 그때만 해도 애가 둘에 친정식구들까지 …. 대희 아빠가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자리에서 울었단다.      

  올해 설 지나고 잘 생긴 사내아이를 하나 더 낳아 서영이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서영 엄마가 튼실한 막내 낳고 몸조리가 영 시원찮아 얼굴하고 퉁퉁 부어올랐다. 광주 친정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잘 익은 늙은 호박 몇 덩이를 받아와서 푹 고아서 그 물을 마시게 드렸다. 서영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만 보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자네가, 남편보다 낫다!”     


  오늘은 돈이 척척 잘 들어오는 날인가 보다. 어젯밤에 주인집 부자네가 또 부부싸움 한다고 난리 더니, 역시 아침 설거지하기 무섭게 부자 엄마가 양장점 문을 두들겼다. 우리 대희 아빠 공장 출근도 안 했는데 …. 그래도 봄 양장을 두 벌이나 맞추고 갔다. 어제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다른 부인네들이 어찌나 잘 차려입고 나왔는지 부자 아버지 신 부자가 자기를 창피해했다나. 솔직히 좀 기우는 부부이긴 하다. 신 부자는 훤칠하니 어디 가도 눈에 띄는 얼굴인데 그에 비하면 부자 엄마는 …. 꼭 시골에서 금방 상경한 촌뜨기처럼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작달막한 키에 옆으로 찢어진 눈매에 돼지 코에 입술까지 두툼하니. 한번씩 궁금한 게 신부자는 부자 엄마 어디에 반해서 결혼을 한 건지 ….     


  아무튼 부부싸움 덕분에 퉤-퉤- 허허…. 새 돈이라 손가락에서 잘 안 넘어간다. 작달막한 부자 엄마 별로 차이도 없는 엉덩이둘레하고 허리둘레, 가슴둘레, 신장 재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이 돈 냄새가 참 좋다.      


  거기다가 점심때 안채 서영이네 놀러 온 합성동 서영이 이모가 또 양장 한 벌을 맞췄다. 그 이모는 얼굴도 곱고 마흔이 넘었는데도 몸매도 참 곱다. 서영이 이모부가 한양공대를 나와서 시내 웬만한 건물은 그 사람 손 안 간 데가 없다고 한다. 남편을 잘 만나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손도 뽀얗고 참 곱게 나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치수를 재도 기분이 좋다. 그냥 옆에 서 있어도 좋은 기운이 막 난다. 서영이네 바깥채 세 들어 사는 나한테도 항상 높임말로 깍듯하고 친절하다. 올 때마다 서영이네 아이들 간식 사 오면서 우리 대희 거를 빼는 법이 없다.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더니. 서영이 엄마도 그렇고 서영이 이모도 참 바른 사람들이다. 


  나도 고향 광주에 가면 쌍둥이 여동생이 둘 있다. 그리고 우리 막둥이 남동생. 우리 집에서 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우리 집 보물이다.      


  양장점이 지금만큼만 손님이 있으면 올 명절에는 광주 집에 동생들 학비를 더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버스 운전하는 아버지도 갈수록 눈이 침침하다고 난리다. 어머니는 장터 국밥집에 파리만 날린다고 그러고…. 쌍둥이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데려와서 한일합성에 취직시켜 줄 참이다. 그러면 우리 막둥이는 얼마든지 고등학교, 대학교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있다. 몇 년 만 더 참자.      


  “대희야! 안에 있나?”     


  서영 엄마 목소리다.     


  “예! ‘     


  걸어 잠근 방문을 열고 안마당 쪽문을 열었다.      


  “이거, 저녁에 대희 아버지 상에 올리라!”     


  싱싱하고 커다란 고등어 한 마리가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아이고, 소장님 드리시지! 아까 서영이 이모가, 또 우리 대희 주라고 양과자도 사다 주셨는데 ….”

  “그거는 그 기고!”     


  고등어 한 마리를 방 옆 작은 부뚜막에 올려놓고 얼른 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초록 대문 집에 참 이사를 잘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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