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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하꼬방 귀신

서영이


  “내가 식모가?” 

  “이 놈으 가쓰나!”     


  녹슨 철 대문을 쾅 닫고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덜컹 하는 쇠 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래도 한 번 화가 났으면 끝까지 보여줘야 된다. 골목 끝까지 내달렸다. 그때 뭔가에 세차게 부딪혔다.     


  “아! 뭐꼬?”     


  나는 화가 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질렀다. 내 몸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려 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뭔가 내 팔을 세게 끌어당겼다.     


  “썽난 닭 같네!”     


 형식이가 비실거리며 웃고 서 있다. 이 동네 이사 와서 제일 처음 만난 아이였다. 나는 팔을 뿌리치며 더 성이 난 것처럼 걸었다. 그런데 자꾸 뒤에서 따라온다. 가다가 일부러 멈추었다. 형식이도 뚝- 섰다. 다시 걸었다. 또 따라온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홱 돌아봤다.     


  “뭔데?”

  “니 지금 오데 가는데?”

  “남이사!”

  “오리 떼기 하로 안 갈래?”     


  형식이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나는 억지로 끌려가는 척 따라갔다. 강둑을 지나 끝자락에 하코방 한 채가 있었다.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 어둠 속에서 쿰쿰한 냄새와 달콤한 내가 뒤섞여 진동을 했다. 나는 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천천히 방 안에 어른거리는 것들이 보였다. 연탄난로 앞에 곰처럼 커다란 할머니가 앉아 있고 그 주위에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눈이 동그래서 쳐다보았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깊은 산속 마귀할멈이 난쟁이들에게 불씨를 주는 것 같았다. 발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형식이가 뒤에서 또 내 팔을 당겼다.       


  “뭐하노? 이런 거 첨 해 보나?”     


  나는 수줍은 양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식이는 잘난 척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구석에 놓인 작은 국자 두 개를 들고 왔다.      


  “내 따라 해 바라!”     


  국자 두 개를 할머니 앞에 가져가니까 할머니는 느린 동작으로 설탕 한 숟가락 씩 퍼서 국자에 올려준다. 형식이가 다시 내게 오라는 고개 짓을 한다. 나는 천천히 발을 뗐다.     


  “우리 엄마가 이런 거 묵으모 안된다 캤는데 ….”

  “힛. 아까는 저거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난리더마는 ….”     


 갑자기 오기가 발동했다.     


   “줘 봐라!”     


 국자를 뺏어서 불가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하얀 설탕이 불 위에서 천천히 노란색으로 변했다. 황금색으로 … 신기하고 예뻐서 계속 바라보았다.     


  “야, 야! 탄다 아이가.”     


 할머니가 느리고 낮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리고 내 국자 속에 하얀 가루를 조금 넣어주었다.     


  “빨리 젓어라!”     


  형식이가 아주 중요한 임무를 하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명령했다. 나는 갑자기 누렇게 부풀어 오르는 설탕에게 겁을 먹으면서 국자를 막 저었다. 갈색 덩어리가 국자 위에 가득 찼다. 할머니는 내 손에서 국자를 빠르게 낚아채 가더니 옆에 놓인 쇠 판 위에 탁- 하고 부었다. 아직도 지글거리며 끓고 있다. 그 위로 동그란 쇠판을 올려 지그시 눌렀다.     


  “와! 첨인데 잘하네.”     


  형식이가 던지는 말에 나는 괜히 우쭐했다.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얇은 설탕 덩어리 속에는 온갖 무늬가 다 있었다. 물고기, 화병, 칼 …. 그걸 부서지지 않게 그대로 떼서 가져가면 하나를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우는 더 깊은 구석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많은 아이들이 무늬를 떼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그 속에 섞였다. 이게 오려 떼기 …… 오리 떼기란다.          


  하코방을 나서니까 해가 다 졌다. 형식이랑 나는 놀라서 강둑을 내달렸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포항집 안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와 고개 굽는 냄새가 먼저 진동했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아주 많이. 골목을 달려, 형식이는 우리 집 맞은편 무당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나무가 바람소리를 냈다. 거기에는 대문에 항상 대나무가 꽂혀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있던 희자 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고모! 서영이 왔어예!”     


  얄미운 희자 언니. 쭈삣거리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엄마가 뛰어나왔다. 나는 애꿎은 벽만 더듬었다. 엄마는 내 옷 꼴을 보더니 사냥개처럼 킁킁대며 맡았다.     


  “니, 하코방에 갔었나?”

  “행식이가 … 자꾸 ….”

  “무슨 돈으로?”

  “행식이가 사 줐다.”

  “그 돈은 낼 행식이 옴마한테 내가 줄 끼다. 다시는 따라가지도 말고 넘한테 얻어 묵지도 마라! 알았나?”

  “칫, 친구끼리 좀 그라모 ….”

  “알았나?”

  “알았다!”     


 엄마가 부엌으로 가자, 희자 언니가 내 팔을 당겨 앉혔다.     


  “가쓰나! 얼굴 꼬라지 바라!”     


 희자 언니가 아프게 내 얼굴을 막 문질러댔다. 짜증 난다.      


  “아! 아프다!”

  “니, 그 하코방에 할매 있제?”

  “어!”

  “그 할매가 아-들 살살 꼬시 가, 나중에 잡아 묵는다 안 카나? ”

  “어?”

  “간도 빼 묵고 심장도 파 묵고 ….”     


  나는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자 희자 언니는 깔깔대며 막 웃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희자 언니 머리통에 수건을 날렸다.     


  “지랄을 해라! 아, 겁먹구로!”     


  희덕이 언니다. 희자 언니는 그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또 작은 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니 오리 떼기 묵었제? 그 안에 달달한 기, 사람 피에서 뺀 당분이라 안 카나!”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토를 했다. 희자 언니가 피식 웃으며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등 뒤에서 엄마가 밥상을 들고 가면서 한 마디 한다.     


  “괘안나? 이상한 당분 묵으니 안 글나? 어서 입 씻고 밥 묵어라!”     


  구토가 자꾸 나왔다. 희덕이 언니가 또 달려왔다.     


  “아 보고 또 머라꼬 씨부릿노?”

  “아무 말도 안 했다. 언니는 맨날 내 보고만.”     


  그날 밤에, 내 꿈속에는 마귀와 죽은 사람들과 아이들만 가득 찼다. 그리고 뿔 달린 못된 희자 언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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