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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노을 지는 저녁

막내 로사

  요한 오빠는 여름방학에 내려온다. 마리아언니는 벌써부터 오빠가 오면 준다고 공장 다니면서 돈을 모으고 있다. 마리아언니는 여자상업고등학교 야간반에 다닌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집안 형편상 낮에 공장 다니고 밤에 여상을 다닌다. 그래도 졸업장에는 야간이니 주간이니 그런 거 안 적힌다고 좋아했다. 그래도 나 같으면 고집 피우고 인문계 고등학교 갈 텐데.      


  그리고 더 좋은 거는 오늘 안나 언니가 월급 받는 날이다. 언니는 시내 새로 생긴 백화점 점원이다. 백화점 개업할 때 친구들하고 갔는데 영어책에만 나오는 그 움직이는 계단이 진짜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자꾸 탔는데 나중에 어지러워서 넘어질 뻔했다. 백화점은 삼층이나 된다. 거기서 파는 양과자는 시내보다 더 맛나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안나 언니는 백화점 점원이 되고부터 옷차림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 워낙 날씬한 편이라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긴 하다. 그래도 백화점에 다니면 깔끔한 정장을 입고 가야 한다고 언니가 그랬다. 가겟방 영자아줌마가 재봉비만 받고 몇 벌 맞춰 줬는데 정말 예뻤다. 짙은 블루 투피스, 아이보리 원피스. 어머니는 옷을 입고 작은 방 거울 앞에 서 있는 안나 언니를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저녁 반찬을 해 두어야겠다. 어쩌면 안나 언니가 용돈을 줄지도 모른다. 부엌문을 열었다. 아. 비린내. 아침에 놓아둔 어머니 전대에서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아차. 빨래를 해 놓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했는데. 큰일 났다. 아직 해가 안 졌으니까 지금이라도 빨아야겠다. 어머니 오실 시간은 아직 멀었다.      


  부엌 앞 모퉁이에 놓인 화덕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간 고등어 한 마리를 구웠다. 좀 있으면 아버지가 예비군 초소에서 돌아오실 시간이다. 우리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이다. 아버지 고향은 서울이다. 전쟁 때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겉은 멀쩡하지만 모르핀 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부산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어머니와 만나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어머니 고향인 여기 마산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 친척들은 아버지를 많이 안타까워한다. 훤칠하고 잘 생긴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아버지가 친척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전쟁에 나가서 그렇게 됐다고 …. 그래서 어쩌면 서영이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가 더 친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는 오빠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다. 가끔 서울 친척들이 우리 집에 오면 뒤채 좁은 방에 모여 사는 걸 보고 안타까워한다. 아버지는 그런 날에는 서영이 아버지 하고 꼭 포항 집에 가서 비틀거릴 정도로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 앞에서 크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부드러운 서울 말투로 우리를 안아주신다. 갈수록 억척스럽고 무섭게 변하는 어머니도 아버지 앞에서는 쩔쩔맨다. 부드러운 아버지 말투 속에 어머니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나도 그렇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간 고등어를 구워드리라고 어머니가 새벽에 일러주고 가셨다. 새벽에 내 귀에 대고 속삭이고 나가셨다. 어머니 속삭임은 아무리 잠이 깊이 들어도 머릿속에 콕 박힌다. 영어단어도 어머니에게 좀 속삭여 달라고 해야겠다. 그러면 아마 절대 평생 안 잊어먹을 거다.      


  고등어가 연탄불 위에서 노릇하게 굽히고 있었다.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모퉁이 너머로 서영이 머리카락이 나풀거린다. 마당에서 고무줄 뛰기를 하고 있었다. 


  아. 이놈에 고등어 꼬리 한 토막은 또 저 서영이 몫이 되겠네. 


  오늘 저녁에는 제발 서영이가 우리 집에 발길도 안 했으면 …. 그런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서영이네 안방과 우리 집 건넌방 두 칸이 완전 붙어 있는데 무슨 수로 말릴 수 있을까. 


  나도 …. 아버지가 남긴 고등어 꼬리 한 토막 다 먹어봤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아. 눈이 맵다. 연기가 눈으로 들어갔나 보다.     


  “꼬마야! 뭐하냐?”      


  어디서 나는 소리지? 나는 두리번거렸다. 어?      


  “이쪽이다!”     


  등 뒤에서 나는 소리 같다. 나는 휙- 돌아보았다. 담벼락 뒤쪽 작은 들창에서 웬 사내가 마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구지? 지난번에 쓰러졌다는 그 사내인가? 희덕이 언니가 흡혈귀라고 했던? 갑자기 등줄기에서 소름이 확 끼친다. 정말 얼굴이 정말 하얗다. 희덕이 언니 말이 맞는 것 같다. 아. 십자가는 방 안에 있는데. 진짜 미치겠다.     


  “고등어 굽냐?”     


  나는 겁이 나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석쇠 위에 놓인 고등어만 다시 뒤집었다.     


  “꼬마야!”     


  아. 진짜 미치겠네.     


  “어? 용팔이 삼촌이다!”     


  그때, 마당에서 놀던 서영이가 들창을 쳐다보면서 달려온다. 용팔이 삼촌?     

 

  “어! 서영이구나!”

  “삼촌, 밥 또 안 먹었지?”     


  서영이 말에 흡혈귀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진다. 흡혈귀가 아닌가? 얼굴이 붉어지니까 조금 잘 생겨 보인다. 흡혈귀들이 원래 생기긴 잘 생겼다.      


  “서영아! 저 꼬마는 누구니?”     


  내가 꼬마라고? 참. 기가 막힌다.


  서영이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담벼락에 바짝 가서 붙는다.     


  “로사 언니요?”

  “로-사?”     


  갑자기 서영이가 담벼락에 대고 손을 모아서 작은 소리로 떠들어댄다.     


  “아저씨! 우리 로사 언니한테 꼬마라고 하면 큰일 나요! 성질이 얼마나 사나운데!”     


  내가 발끈해서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고 서영을 노려보았다. 서영이 갑자기 담에 손톱을 긁어대며 능청을 떤다. 얄미운 서영이. 그 흡혈귀는 들창으로 재미있다는 듯 웃어대기만 한다. 정말 얄밉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대문이 쾅- 열렸다. 생선을 굽다 말고 나는 고개를 쑥 내밀어 대문 쪽을 쳐다보았다. 서영이도 고개를 돌렸다. 희자 언니였다. 언니는 대문을 쾅- 열고 들창으로 내다보던 흡혈귀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갑자기 조용했다. 서로 쳐다만 보고 아무 말이 없다. 희자 언니는 완전 마네킹처럼 서 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평소 선머슴처럼 계단을 턱턱 걸어 내려오면서 세숫대야 한 번 차고 우리 집 세리 개집 한 번 차고 우리 집 창문 너머 나에게 재미없는 농담 한 마디하고 들어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이상하다. 몇 분 동안이나 들창만 쳐다보고 가만히 서 있다. 흡혈귀도 멍하게 앞만 쳐다보고 있다.      


  그때 서영이 갑자기 내 머리를 또 확- 잡아당기고 마당으로 뛰어가 뒷집으로 통하는 사이 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야! 김서영!”     


  내 악마 같은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정신이 든 사람들처럼 둘 다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면서 흡혈귀는 급하게 들창문을 닫고 희자 언니도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희자 언니가 그렇게 당황해하는 건 처음이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희자 언니는 조금 있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이제는 세수를 하는데 대야가 구멍이 나도록 씻고 또 씻었다. 그러면서 자꾸 흡혈귀가 사는 들창문 쪽을 흘끔거렸다. 


  생선 연기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어보니까 들창문이 빼꼼 열려 있다.      


  나는 생선을 다 굽고 어머니 전대를 씻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빨리 해 치워야 한다. 열심히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또 대문이 쾅- 열린다. 이번에는 부자다.      


  “언니, 요한 오빠 언제 방학 하노?”

  “와?”

  “아. 그냥!”     


  서영이보다 더 얄미운 계집애. 툭하면 부자라고 동네 애들한테 자랑질이나 하고 전부 자기 집이라고 협박이나 하고. 딱 그럴 때만 서영이가 불쌍하다. 하기야 서영이네나 우리 집이나 부자네 전세로 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리 아버지나 서영이 아버지가 신부자네 아저씨보다 훨씬 훌륭하고 잘났다고 어머니가 항상 그랬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라고. 없다가도 또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어머니 말씀이 항상 맞다고 생각한다.     

  “언니야, 이거 묵어라!”     


  부자가 양과자 한 봉지를 쑥 내민다. 순간 달콤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온다. 입안에서 군침이 감돌았다. 나는 부자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와 그라는데?”     


   내 말에 부자 얼굴이 갑자기 발갛게 달아올랐다.     


  “뭐를, 언니 묵어라고.”

  “치아라!”

  “….”

  “이런 거 주고 우리 오빠 만나게 해 달라고 하는 거 아이가?”     


  나는 군침을 한 번 꾹 삼키고 팔을 들어 치우는 시늉까지 했다. 부자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리고 다시 석쇠 위에 놓인 고등어를 뒤집었다. 그런데 부자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부자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서 있지 않은가.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쌍꺼풀 수술한 부자의 두 눈이 금방 떨어질 것처럼 부리부리했다. 나는 당황해서 멍하게 그냥 올려다보았다. 사실 좀 무서웠다. 부자는 홱 돌아서 뛰어가 버린다.          


  아버지는 지금 포항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금방 포항 집 영민이가 달려와서 말해 주었다. 똘똘한 아이다. 서영이 아버지가 오늘 근무일이라, 아버지 혼자 드시는가 보다. 나는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위에 얹을 실파를 썰었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언니야!”     


  이번에는 또 앞집 영주가 나물 반찬을 들고 왔다. 영주가 직접 무친 미나리나물이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군침이 입 안 가득 돌았다.     


  “저녁 반찬 하다가 좀 많이 했다.”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영주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참 고운 아이다.     


  “동생들 주지! 잘 묵으께.”     


  요한 오빠가 딱 영주 같은 여자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빠는 서울서 더 멋지고 날씬한 서울 아가씨들 속에 둘러싸여 있겠지. 이런 남쪽 지방 촌닭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세련된 …. 그래도 영주는 학교에서도 제일 예쁘고 날씬하고 눈에 띈다고 서영이가 그랬다. 서영이는 영주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자기도 영주처럼 긴 생머리에 무용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면 좋겠다고. 서영이는 머리카락을 길을 수가 없다. 서영이 엄마가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 서영이 머리를 간수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짧은 커트머리다. 하는 짓도 선머슴 같은데 머리까지 커트니까 멀리서 남자아이들 속에 섞여있는 서영이를 보면 그냥 사내아이로 보인다. 서영이는 그런 말하면 제일 신경질을 낸다. 내가 서영이 골려줄 때 가장 마지막에 쓰는 방법이다. 그럴 때는 정말 속이 다 후련하다.     


  “서영아!”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막내딸인 나를 제쳐두고 맨날 서영이 이름만 부른다. 꼬맹이한테 질투나 느끼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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