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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부자네 부자


  “이게 뭐야? 아, 짜증나!”     

  피아노 밑에 또 동생들 장난감이 어지럽게 있다. 발을 디딜 수가 없다. 할머니가 옆에서 장난감을 막 치웠다.      

  “연자야, 연주야! 쫌 치워야지!”     

  할머니가 작은 방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동생들은 들은 척도 안한다. 이번 주에 피아노 대회인데, 정말 짜증이 많이 난다. 엄마랑 아빠는 또 민철이만 데리고 저녁 모임에 갔다. 할머니만 매일 고생하시고.     

  “저녁 먹고 연습해라! 부엌에서 행숙이 언니가 저녁 하고 있어!”

  “조금만 더 하구요!”

  “그러다 몸 상한다!”

  “이번에 꼭 우승할 거에요! 앞집 영주보다 잘 해야 되요!”

  “우리 부자가 당연히 이기지!”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운이 났다.      

  “진지 드세요!”     

  행숙이 언니 목소리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한다. 할머니는 동생들을 데리고 부엌방으로 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래도 안 된다. 앞집 영주는 집에 피아노가 없다. 학원에서 하루 한 시간씩 연습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벌써 체르니 100번을 전부 다 끝냈다. 이번 대회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곡을 연주한단다. 자존심 상한다. 공부도 4학년 전체에서 일등이다. 영주 아빠는 수출자유지역 공장장이다. 우리 아빠는 집이 다섯 채나 된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도 많다. 영주 네도 우리 집인데 전세로 살고 있다. 그런데 영주는 나보다 전부 잘한다. 키도 나보다 크고 얼굴도 새하얗다. 영주가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길어서 진짜 예쁘다. 정말 질투나지만 내가 봐도 예쁘다. 나는 엄마를 닮아 피부가 까맣다. 아빠는 옆 집 서영이네 희자 언니 말처럼 프랑스 배우 알랑 드롱 만큼 잘생겼다. 그런데 엄마는 정말 피부도 까맣고 못생겼다. 그건 할머니도 인정했다. 자기 딸인데도. 난 아빠처럼 쌍꺼풀도 있고 코도 높다. 그런데 피부가 정말 까맣다.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검은 광택의 피아노 몸통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눈만 커다랗게 보인다.      

  “연주야!”     

  갑자기 아빠 목소리가 대문에서 났다. 벌써 왔나보다. 아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화가 난 것 같다. 또 싸웠나보다. 대문이 거칠게 열린다. 아. 또 시작이다.      

  마루에 커다란 창문이 열리고 아빠가 들어섰다. 양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나는 피아노를 치다가 멈추고 돌아봤다.     

  “부자, 피아노 치나?”

  “그거 뭐야?”     

  아빠 목소리에 부엌방에서 밥 먹던 동생들이 막 달려온다. 할머니는 마당 쪽을 쳐다본다.     

   “애미는?”


  아빠는 못 들은 척 연주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 엄마는 민철이를 업고 마루 문을 열었다. 엄마 얼굴이 발갛게 열이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이제는 모른 척 했다. 업고 있던 민철이를 받아서 동생들을 데리고 할머니는 건넌방으로 갔다. 나도 따라 슬쩍 들어갔다. 아빠랑 엄마는 매일 싸운다. 자식을 넷이나 낳고도.


  할머니는 우리에게 찐 고구마를 가득 준다. 나는 연자하고 바닥에 엎드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안방에서 엄마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엄마도 같이 소리를 질러댄다. 듣기가 싫어 그림에만 더 집중했다. 이런 날이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더 먹을 것을 많이 준다. 싸움이 끝나면 아마 또 아빠 엄마가 건너올 것이다. 그리고 시내에서 사온 커다란 봉투를 열어 옷이며 양과자며 그런 것들을 가득 쏟아낼 것이다. 

  빨리 싸움이 끝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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