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오늘도 허탕이다. 수출자유지역 공장 두어 군데 면접 보고 보건소 들렀다가 집까지 걸어왔다. 보건소까지 갔다 와서 그런지 어지럽다. 오는 길에 밭두렁이며 하천마다 개나리며 창 꽃이 한창 피었다. 참 더럽게도 지천에 난리를 피우며 피어있었다.
나는 쌀 한 봉지랑 라면 세 개를 부뚜막에 내려놓고 방에 기다시피 들어가 누웠다. 고 계집애! 피를 참 앙팡지게도 많이 뽑았다. 좀 대충 하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다 뽑고 팔에서 바늘 뽑으며 한다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
“피 그만 팔고, 일자리나 구해 봐요!”
걱정하는 척하면서 피는 오지게도 많이 뽑아가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아무 연고도 없이 시골에서 올라온 나 같은 놈한테는 공장 직공자리도 없다. 신용이 없다나. 보증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단다. 하기야 중학교 중퇴인 나를 도시라고 고용할 리가 없다. 그래도 중국집 배달이나 종이나 줍는 넝마는 되기 싫다. 아직 배가 덜 고픈가 보다. 싫은 것도 있고.
우리 판자촌 일명‘나래비 집’은 내가 있는 코 구멍만 한 방을 합해서 전부 다섯 개가 있다. 건물 뒤편 세 채의 단층주택들은 전부 남향이고 담처럼 그 집채들을 동쪽으로 둘러 한 줄 서 있다고 나래비 집이란다.
이 동네는 옛날부터 신 부자네 조상 터란다. 내려오면서 형제들끼리 쪼개고 나누고 결국 소담하게 단층 세 채하고 나래비 집 다섯 동이 신 부자 몫으로 남은 거란다. 들리는 말에는 수출자유지역 후문에도 집이 두 채 있다고 했다. 신 부자는 세만 받아도 넉넉하게 먹고 산다. 단층 주택 한 채에 세만 세 가구씩 산다. 거기다가 나래비 집 다섯 동까지! 신 부자가 사는 윗집 안채를 빼도 총 열 세 가구다. 참 부럽다.
우리 집은 조상 때부터 남의 땅만 소작하고 지금까지 땅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다. 아버지한테 도시 가서 돈 많이 벌어온다고 큰소리 땅 땅 치고 농사일 다 팽개치고 왔는데 …. 내 입에 풀칠도 못하게 생겼으니 ….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현기증이 없어지지를 않는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고무줄 뛰기 하는가 보다. 자치기도 … 재밌겠다. 나도 저만할 때 고향 배꼽마당에서 애들하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는데 …. 배도 고프고 현기증도 나고 방에 불 안 지핀 지 한 달은 넘었고 … 춥다.
쨍그랑--.
입구 유리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그랬는가 보다. 이 놈의 봄. 제발 빨리 가라. 그래서 여름이라도 빨리 와라. 방에 불이나 안 지펴도 되게. 아. 진짜 춥다. 어지럽고 … 천정이 빙글빙글 돈다.
“아저씨!”
아이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누굴까.
눈을 떠 보니 방안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 일어나려고 하니까 왼쪽 팔에 링거가 달려 있다. 이게 뭐지?
“아빠! 눈 떴다!”
조그만 계집아이 목소리다.
“휴! 다행이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보니, 중년 남자 두 명과 아이들 서너 명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괜찮나?”
“그런데 ….”
“소장님 하고 내가 퇴근하고 오는데 애들이 질겁을 하고 ‘사람 죽는다’꼬 온 동네 떠나게 안 난리가? 와 보니까, 참말로 송장 치게 안 생깄나?”
작은 여자 아이가, 불쑥 내 이마에 손을 얹는다.
“아빠! 인제 따뜻하다! 아까는 완전 얼음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방이 따뜻해 있다. 무슨 일일까? 문 밖에서 뭔가 딸그락거리는 소리도 난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하늘나라인가? 천사들인가? 여기는 아마 천국인가 보다.
“사람 참! 며칠을 굶은 건지.”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다. 여자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고 다른 사내가 소장님이라고 하는 그 사람 같다. 천국에도 직업이 있는가 보다. 아. 역시 천국은 참 따뜻하다. 구수한 죽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정말 천국은 좋은 곳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