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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포항집 영민이


  뚝 방을 따라 걸어가는데 형식이가 뒤에서 귀찮게 했다. 나무 꼬챙이로 엉덩이 쪽을 자꾸 간지럽힌다. 형식이하고 걸어오던 서영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나는 그냥 무시했다.      


  “고마 해라! 어?”     


  서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강둑에 울린다. 단발머리 서영이가 갑자기 뛰어서 내 옆으로 온다.   

   

  “나는 영민이 하고 갈란다!”     


  형식이가 갑자기 풀이 죽더니 나무 꼬챙이를 저 멀리 던져 버린다. 그러면서 운동화를 질질 흙바닥에 끌면서 터덜거리며 걸어온다. 속으로 고소하다. 


  역시 서영이는 똑똑하다. 입학식 날 온 동네 날아갈 것처럼 울고불고했는데, 공부는 젤 잘한다. 엄마 말이 서영이 아빠가 진짜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무서에서 높은 자리까지 있다가 나왔고 더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도 했단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서영이 아빠 제자라고 했다. 


  도시 변두리 우리 동네에 있을 사람은 아니라고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자주 서영이 집에 들락거린다. 동사무소에 갈 일이나 무슨 서류에 적어야 되는 큰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서영이 아빠한테 간다. 엄마도 저번에 내가 입학할 때 호적 때문에 힘들었는데, 서영이 아빠 덕분에 잘 해결됐다고 했다. 형은 법대생이고 공부도 잘해도 그런 거까지는 아직 잘 모르는 가보다. 그래서 엄마는 서영이 아빠가 우리 집에 술 마시러 오면 안주를 두 배로 꾹꾹 눌러 담아 준다. 그러면 서영이 아빠는 또 방 안에서 공부하는 내보고 꼭 나오라 해서 백 원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주신다. 나는 서영이네도 서영이도 다 좋다.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 아빠도 서영이 아빠처럼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니 인자 영민이 귀찮게 안 할끼제?”     


  서영이가 갑자기 홱 돌아보면서 형식이한테 말했다. 토라진 형식이 얼굴이 살짝 펴지면서 고개를 막 끄덕거린다.     


  “그래!”

  “같이 가자! 빨리 온나!”     


  형식이가 토끼처럼 뛰어왔다. 서영이가 형식이하고 내 손을 잡았다. 세 명이 나란히 뚝 방을 걸었다. 토끼풀이 양쪽에 가득했다.     


  그때 저 아래 풀숲 사이로 현수가 보였다. 또 아침부터 개구리를 잡는 것 같다.      


  “현수 아이가?”

  “또 지각하겠네!”     


  우리가 현수를 크게 불렀다. 들은 척도 안 했다. 풀 사이에 엎드려 뭔가를 가만히 보는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풀쩍 뛰어 뚝 아래로 달려간다. 


  풍덩-. 순식간에 얕은 강물에 빠져버렸다.     


  “현수야!”     


  옷이 다 젖은 채로 일어나 다시 저 쪽으로 내달려 가버린다.     


  “아! 오늘도 2교시 끝나야 오것다!”

  “우리 담임 샘이 몽둥이 새로 샀던데!”

  “우짜노, 현수!”

  “쳇, 맨날 맞아도 정신 몬 차리고 개구리만 잡으러 댕기는데, 머!”     

  형식이가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서영이는 현수가 많이 걱정되는 표정이다.     

  “현수 엄마가 저번에 우리 집에 와서, 막 울었다 아이가!”

  “진짜?”

  “그래! 그냥 학교 안가는 기 더 나을 거 같다, 현수는 ….”

  “아이다! 현수 머리가 얼마나 좋은데!”     


  내 말에 둘 다 눈이 동그랬다. 우리 옆으로 다른 아이들이 지나쳐 갔다.      


  “저번에 내랑 안 골목 강 목수 집 마당에서 논 적 있는데. 나무토막 굴러 댕기는 거 가지고 탑을 쌓는데 …. 와! 내 키보다 더 높게 성처럼 쌓더라. 강 목수 아제가 보고 놀래 가지고! 나무칼 주면서 아무꺼나 만들어보라니까 금방 로봇 한 개 만들어 삐고!

  “참 말 이가?”

  “그라모! 거짓말이모 내 손에 사마귀가 집을 짓는다!”

  “강 목수 아제가 담에 현수 꼭 목수 시킬끼라꼬 그랬다!”     


  서영이하고 형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내가 현수라도 된 것처럼 우쭐해졌다. 다음에 꼭 현수가 만든 그 로봇을 현수 담임선생님에게 보여줄 거다.      


  가다가 문방구에서 수학 공책을 사야겠다. 그리고 서영이가 좋아하는 번데기도 사 줄 거다. 어제 손님들이 준 용돈으로. 


  형은 가끔 내가 그런 돈 받는 거 엄마한테 막 화내고 한다. 나한테 형은 절대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화도 내고 내 똑바로 키우라고 막 소리도 지르고 그런다. 


  형은 맨날 장학금만 받는다. 엄마 돈 싫다고 하면서. 그러면 밤에 엄마는 또 혼자 운다. 


  형은‘포항집’ 아들이라는 게 정말 싫다고 했다. 나는 좋은데. 맛있는 고기반찬에 생선구이도 맨날 먹을 수 있고, 손님들이 귀엽다고 용돈도 주고. 아빠가 사진관 하는 형식이도, 우리 집 반찬은 부러워하는데. 


  나는 사실 아빠가 있는 형식이가 더 부럽다. 아빠가 누군지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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