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아줌마
오후 내내 골목을 뛰어다니더니 대희가 많이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아빠를 닮아 피부가 창백하게 하얗고 말랐다. 올해 다섯 살이다. 그러고 보니 대희 아빠하고 고향 떠나온 지도 벌써 칠 년이 넘었다. 처음 경상도 땅을 밟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 꼭 못 올 데를 온 것처럼. 그래도 오자마자 서영이네 바깥채를 싸게 세 얻었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구하다가 우리 대희가 태어나고 서영이 아빠 배려로 막걸리 공장 본사에 대희 아빠가 취직하게 되었다.
나는 자는 대희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여기 가겟방 이 작은 방에서 우리 대희가 태어났다. 서영 엄마하고 뒤채 로사 엄마가 산파 노릇을 했다. 대희는 저녁 여덟 시쯤 태어났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던지... 집 안 식구들 서영이네, 로사네, 서영이 외사촌들이 다 마당에 모여 있었다. 우리 대희가 태어나자 웃음소리가 마당에서 크게 들렸다. 참 기분 좋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산모 방이라 연탄을 사고 나니까 미역 살 돈이 없었다고 했다. 대희 아빠가 나중에서야 한 얘기지만, 새벽에 산모 미역국을 끓여야 되는데 기가 막혀서 마당가에 서서 하늘만 보고 있는데, 서영 엄마가 커다란 미역 한 톳 하고 종이에 싼 소고기 반 근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더라고 했다. 서영이네도 소장님 월급에 그때만 해도 애가 둘에 친정 식구들까지 …. 대희 아빠가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자리에서 울었단다.
올해 설 지나고 잘생긴 사내아이를 하나 더 낳아 서영이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서영 엄마가 튼실한 막내 낳고 몸조리가 영 시원찮아 얼굴하고 퉁퉁 부어올랐다. 광주 친정어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잘 익은 늙은 호박 몇 덩이를 받아와서 푹 고아서 그 물을 마시게 드렸다. 서영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만 보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자네가, 남편보다 낫다!”
오늘은 돈이 척척 잘 들어오는 날인가 보다.
어젯밤에 주인집 부자네가 또 부부싸움 한다고 난리 더니, 역시 아침 설거지하기 무섭게 부자 엄마가 양장점 문을 두들겼다. 어제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다른 부인네들이 어찌나 잘 차려입고 나왔는지 부자 아버지 신 부자가 자기를 창피해했다나.
솔직히 좀 기우는 부부이긴 하다. 신 부자는 훤칠하니 어디 가도 눈에 띄는 얼굴인데 그에 비하면 부자 엄마는 …. 꼭 시골에서 금방 상경한 촌뜨기처럼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작달막한 키에 옆으로 찢어진 눈매에 돼지 코에 입술까지 두툼하니. 한 번씩 궁금한 게 신 부자는 부자 엄마 어디에 반해서 결혼을 한 건지 ….
아무튼 부부싸움 덕분에 지폐 뭉치라! 작달막한 부자 엄마 체형이야, 별로 차이도 없는 엉덩이둘레하고 허리둘레, 가슴둘레, 신장 재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이 돈 냄새가 참 좋다.
거기다가 점심때 안채 서영이네 놀러 온 합성동 서영이 이모가 또 양장 한 벌을 맞췄다. 그 이모는 얼굴도 곱고 마흔이 넘었는데도 몸매도 참 곱다. 서영이 이모부가 한양공대를 나와서 시내 웬만한 건물은 그 사람 손 안 간 데가 없다고 한다. 남편을 잘 만나 고생을 안 해서 그런지 손도 뽀얗고 참 곱게 나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치수를 재도 기분이 좋다. 그냥 옆에 서 있어도 좋은 기운이 막 난다. 서영이네 바깥채 세 들어 사는 나한테도 항상 높임말로 깍듯하고 친절하다. 올 때마다 서영이네 아이들 간식 사 오면서 우리 대희 몫을 빼는 법이 없다.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더니. 서영이 엄마도 그렇고 서영이 이모도 참 바른 사람들이다.
나도 고향 광주에 가면 쌍둥이 여동생이 둘 있다. 그리고 우리 막둥이 남동생. 우리 집에서 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우리 집 보물이다.
양장점이 지금만큼만 손님이 있으면 올 명절에는 광주 집에 동생들 학비를 더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버스 운전하는 아버지도 갈수록 눈이 침침하다고 난리다. 어머니는 장터 국밥집에 파리만 날린다고 그러고…. 쌍둥이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데려와서 한일합성에 취직시켜 줄 참이다. 그러면 우리 막둥이는 얼마든지 고등학교, 대학교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있다. 몇 년만 더 참자.
“대희야! 안에 있나?”
서영 엄마 목소리다.
“예!”
걸어 잠근 방문을 열고 안마당 쪽문을 열었다.
“이거, 저녁에 대희 아버지 저녁상에 올리라!”
싱싱하고 커다란 고등어 한 마리가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아이고, 소장님 드리시지! 아까 서영이 이모가, 또 우리 대희 주라고 양과자도 사다 주셨는데 ….”
“그거는 그 기고!”
고등어 한 마리를 방 옆 작은 부뚜막에 올려놓고 얼른 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초록 대문집에 참 이사를 잘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