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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무당집 뒤채 말숙이

   “말숙아!”     


  엄마는 또 누워 있다.


  누워서 힘없이 나를 부르다. 용숙이 언니는 부엌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해가 저물었는지 안채 형식이네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럽다. 형춘이는 오늘따라 계속 엄마 빈 젖만 물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 형식이네는 뭐가 좋은지 또 웃고 떠들고 난리다. 우리 집은 매일 우울한데. 아빠는 오늘도 늦는가 보다. 아빠는 우리보다 술이 더 좋은가 보았다. 엄마도 아픈데 …. 그래서 더 일찍 오기 싫은 거라고 언니가 그랬다. 어른들은 참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방바닥에 붙은 새끼 독사처럼 기다시피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가 들러붙어 잠이 든 형춘이를 좀 떼 달라고 했다. 나는 형춘이를 안아 윗목에 이불 쪽으로 눕혔다. 밥도 안 먹고 잔다. 벌써 다섯 살인데 맨날 엄마 빈 젖만 빨고 있다. 우리가 학교 가면 형춘이는 엄마랑만 누워서 지낸다.     


  엄마는 폐병이다. 가끔 기침하면서 입에서 피를 토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 형춘이는 피 토하는 엄마 옆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애가 작고 말랐다. 용숙이 언니는 형춘이한테 매일 밥물도 쑤어서 주고 전지분유도 타서 먹인다.  그래도 형춘이는 살이 없다. 그 비싼 전지분유를 사서 먹이는데도.


  이불에서 쿰쿰한 냄새가 난다. 그래도 배가 고픈 게 더 견디기 힘들다. 엄마가 안 아플 때는 연탄불에 갈치도 노릇하게 구워서 주고, 무당 할매 굿판에서 남은 돼지머리 한 덩이라도 얻으면 맛나게 볶아서 아빠 술안주도 척척 해 내고 했는데... 그놈의 폐병인가 때문에 엄마 얼굴은 갈수록 하얗다. 누워서 뒹굴다가 자는 엄마 얼굴을 보면 실핏줄이 다 보인다. 우유보다 종이보다 더 하얗다.     

  용숙이 언니는 나보다 욕심도 많고 악착이었다. 형춘이 기저귀 삶고 밥하고 빨래하고 다 하면서 학교에서 맨날 일등이었다. 그런데 이번 봄부터는 학교를 쉬기로 했다. 어린 형춘이를 더 이상 엄마가 볼 수 없었다. 나도 입학을 하고 ….


  그래도 우리 아빠는 착하다. 내 짝지 민자 아버지처럼 술 먹고 와서 엄마를 때리지도 않았고 지금도 술은 먹고 와도 우리 앞에서 미안하다고 울다가 맨날 잠든다. 그러면 용숙이 언니랑 내가 아빠 양말도 벗기고 발도 닦아주고 그런다. 아빠 얼굴에 눈물도 닦아주고 …. 그러면 엄마는 누워서 또 운다. 엄마 빈 젖 빨고 지쳐 자는 형춘이 깰까 싶어서 소리도 못 내고 이를 악다물고 운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아빠 막걸리 배달 자전거 뒤에 언니랑 내가 타고 온 동네를 누볐는데. 그러면 앞 집 초록 대문 집에 서영이가 젤 부러워했는데. 서영이 아빠는 우리 아빠가 다니는 막걸리 공장 소장이다. 나이가 많아서 늦게 서영이하고 동생들을 낳았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노는 날도 우리 아빠처럼 놀아주고 자전거 태워주고 그렇게 안 했다. 요새는 서영이가 부럽다. 서영이 아빠 쉬는 날에는 서영이랑 시내 나가 맛난 것도 사 먹고 그 유명한 빵집에서 진짜 커다란 식빵도 사 오고. 저번에 서영이가 한 덩이 가져다줘서 언니랑 형춘이랑 나눠먹었는데 완전히 입에서 녹았다. 엄마도 그건 조금씩 녹여 먹었다. 나는 빨리 커서 공장에 취직할 거다.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그 부드러운 식빵 엄청나게 많이 사 줄 거다. 오늘도 서영이 엄마가 장어국을 한 냄비 갖다 줘서 용숙이 언니가 그걸로 밥 먹자고 했다. 아빠는 오늘도 배달 끝나고 막걸리 한잔하고 들어올 거다. 오늘은 안 자고 아빠 기다려야지. 골목 입구에서 아빠 자전거 소리가 나면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갈 거다.      


  아빠가 전에처럼 딱 한 번만 더 언니랑 나랑 자전거를 태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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