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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설렘

안나

  버스가 왜 이렇게 안 오는지 …. 오늘따라 밤늦게 전화국 교환 일이 많아서 일찍 나올 수가 없었다. 벌써 밤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전화국 바로 옆 건물이 교회다. 높은 고딕 양식의 탑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춥기도 하고. 택시를 탈까? 아니다. 그 돈이면. 나는 손목시계를 거의 십 초당 한 번씩은 쳐다보고 있었다.     


  저녁 무렵 걸려온 마리아 목소리로는 온 식구들이 난리가 난 모양이다. 분명 요한이었다. 가전제품 판매소로 달려가 본 텔레비전 속 그 얼굴. 갸름하고 여리고 잘 생긴 내 동생. 그런데 내 동생이 그렇게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는지 왜 미처 몰랐을까? 성당에서도 반주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공붓벌레였는데. 확실히 사람들 말처럼 대학이란 데는 다른가 보았다. 그 낭만이라는 것이 무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게 가득한가 보다. 그렇게 공부만 하던 애가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그것도 방송에까지 나오고. 아까 짧았지만 정말 감동이었다. 미스 신하고 윤 과장도 놀라는 눈치였다.     


  “안나 씨한테 저런 대학생 동생이 있었어?”     


  아. 요한이는 언제나 우리 집 자랑이었는데. 지금도 그런데.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로서는 아마 날벼락같은 일일 것이다. 공부한다고 서울 간 법대생이 딴따라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참.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대학생들만 출전할 수 있다는 올해 처음 시작한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이라니. 기특하고 대견한 녀석!       


  빵빵!!     


  놀라서 시계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 대리였다. 들리는 소문에 집안이 부자라더니 진짜인가 보았다. 포니 자가용이라니.     


  “안나 씨! 집이 어디에요?”

  “아! 좀 멀어요.”

  “타요!”

  “버스 타고 가면 됩니다!”

  “아까 나간 사람이,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데!”      


  이 대리는 갑자기 내려서 조수석 문을 정중하게 열어주었다. 망설였다. 그래도 매너는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집이 어딘가요?”

  “변두리라. 석전동이에요.”

  “아! 교도소 근처군요.” 

  “네.”

  “한나씨 덕분에 드라이브하게 생겼네요!”

  “아무튼 오늘은 신세 지겠습니다.”

  “하하. 종종 지셔도 됩니다!”     


  나는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어색했다. 백화점에서 이 대리와 말을 섞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나가다 눈인사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단 둘이 나란히 앉아서. 오늘은 나도 들떠 있나 보다. 이렇게 덥석 남의 차에 올라타고. 요한이 만큼 나 역시 들뜬 밤이구나.     


  버스 정류장에 로사가 나와서 서성이고 있었다.      


  “로사!”     


  이 대리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 대리가 따라 내렸다. 로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본다. 참.     


  “동생인가 봐요? 귀엽게 생겼네.”     


  그리고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로사에게 건넨다.     


  “용돈으로 써요!”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대리님. 이건 좀 ….”

  “오해 마세요. 동생 같아서 주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로사는 신이 나서 고개가 땅에 처박히게 인사를 해 댄다. 난처한 일이 생겨 버렸다.  

   

  “안나 씨. 내일 봅시다!”     


  이 대리는 차에 시동을 켰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었다.     


  “언니! 오빠 대학가요제 동상 받았어!

  “뭐?”     


  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나는 로사와 골목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우리 집 방과 희덕이네 방 불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아버지는 고모부 네와 통화 중이었다. 그다지 언짢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좀 부드러운 표정으로 방 한가운데 놓인 술상 옆에서 밤을 까고 있었다. 마리아는 윗방 책상에서 혼자 헤드셋을 낀 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

  “고생했지? 로사야. 큰언니 밥상 좀 차리라!”

  “예.”     


  전화를 끊고 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었다.     


  “우쨌다 캅니까?”

  “대학가요제라는 게 아주 큰 대회라네.”

  “맞아예. 아버지, 서울 학생들도 예선 통과하기 어렵답니다.”     


  로사가 톡 끼어들었다.      


  “자형 말씀으로는 거기 나간다고 가수가 되는 게 아니라네. 학생들이라 취미 활동처럼. 올해가 첫 해라서 더 방송도 하고 난리라고 그러네.”


  “그라모 됐습니더, 마! 잘난 우리 아들 텔레비에도 한 번 나오고 얼매나 좋습니꺼? 아까 인터분가 뭔가 할 때 법대생 이라꼬 떡- 화면에 안 나옵디까? 하이고 마! 내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법대생 유요한. 앗따! 얼매나 좋던지.”      


  아버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셨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거기다가 동상까지 받았으니.      


  “자형께 일렀소. 겨울부터는 고시원이나 한적한 곳 알아보고 고시 준비시키라고.”

  “그래야지요! 이제 피똥 싸면서 몇 년 고생할 낀데, 대학에 이런 추억이라도 있어야지요!”     


  아버지가 모처럼 어머니 말씀에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기특한 동생! 오늘 밤에는 요한이에게 편지를 쓰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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