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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희덕이 동생 희자

  다리가 퉁퉁 부었다. 하루 종일 서서 벌건 담요 먼지 때문에 목도 따갑다. 오늘도 반장이 추근 거리면서 퇴근길에 곰보빵 한 봉지를 사 주었다. 언니가 알면 죽이려 들 거다. 그래도 나 혼자 먹을 수는 없다. 친구 미자가 사 줬다고 해야 되겠다. 책가방 속에 든 곰보빵은 아직 말랑말랑한 게 그대로다. 다행이다.      


  대문에 들어오다 보니 건너 쪽방 들창에 불이 꺼져 있었다. 밤 열 시가 다 돼 가는데 …. 괜히 기분이 상한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서 방에 들어서자마자 곰보빵 든 봉지를 아랫목에 툭 던졌다.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     


   그때 갑자기 서영이가 방문을 홱 열고 들어왔다.     


  “저거 뭐고?”     


  귀신같은 서영이. 아랫목 이불 위에 던져진 누런 봉지를 열더니 곰보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와! 빵이다!”     


   서영이는 작은 손으로 빵 하나를 입에 넣다가 갑자기 나한테 내밀었다.     


  “안 묵는다!”

  “언니가 주인이잖아! 빨리!”     


  나는 못 이기는 척 한 입 베었다. 입 안에서 살 살 녹는다.     


  “다 묵고 입 닦고 들어가라! 알았제!”     


  서영이는 곰보빵을 맛나게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고모한테 말하면 안 된다! 말하면, 자다가 곰보빵 귀신이 방 앞에 서서.”     


  서영이는 겁에 잔뜩 질려 곰보빵을 문 채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눈물이 글썽한 채로 또 고개만 끄덕거린다. 벌써 입학한 지가 언젠데 서영이는 너무 순진하다. 고모가 너무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그렇다. 내가 서영이 나이에는 먹을 게 없어서 시골 뒷산 칡뿌리만 질겅질겅 씹고 다녔는데. 나도 고모 같은 엄마만 있었어도. 이렇게 야간 고등학교도 안 다니고 공장도 안 다니는 건데.


  부엌으로 내려와 쌀을 꺼내 씻었다. 서영이는 곰보빵 하나를 작은 손에 들고는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언니, 공장에서 월급 받았나?”

  “아니.”

  “근데 빵은 뭐로 샀는데?”

  “친구가 사 줬다!”     


  서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곰보빵을 크게 한 입 베었다.     


  “어른이 되모, 친구들이 이렇게 비싼 것도 막 공짜로 사 주고 그라나?”     


  나는 그냥 말없이 부뚜막에 앉아 쌀을 씻었다. 서영이는 계속 뭐라고 쫑알댄다. 그때 부엌문이 열렸다.    

 

  “희자 왔나?”     


  고모다. 서영이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목구멍으로 꿀떡 삼켰다. 꿀떡- 하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눈치 빠른 서영이. 그런데도 순진하고 착하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니는 또 와 여기 앉았노? 아까 테레비에서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야 된다 안하더나? ”

  “알았다!”     


  목이 막히는지 막힌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새초롬한 눈으로 서영이가 들어가려고 했다. 영 불안하다.      


  “서영아! 니 아까 물 먹고 싶다 안했나?”     


  찬물 한 그릇을 떠서 건네주니까, 서영이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귀여운 계집애. 서영이는 소처럼 한밤중에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이 아가! 잘 밤에 무슨 물을 이래 묵노? 밤에 오줌 쌀라!”


  다행이다. 빵 한 개를 맨 입에 먹었는데. 물이라도 안 먹여 들어갔다가 자다가 체하기라도 했으면, 또 온 집이 떠나가게 울어대다가, 희자 언니가 곰보빵 준 거 묵었다,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서영이가 의리는 있다.     


  “밥 하나?”

  “예!”

  “내가 이 시간쯤 밥 한다 캐도, 너거 언니는 우째 그래 고집이 쎈지.”

  “언니가 고모 힘들다고 우리까지 폐 끼치면 안 된다 캤습니더!”

  “너거가 남이가?”     


  고모는 방문 앞 작은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피곤한 지 하품을 크게 했다. 고모는 정말 막내를 낳고부터 몸이 더 안 좋아 보인다. 얼굴도 부어있고. 아버지는 항상 시골 갈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고모한테 잘해라, 한다. 하기야 고모가 아니었으면 언니하고 나는 중학교 졸업도 못 했을 거다. 아버지는 여식들이 무슨 공부냐고 지금도 그런다. 언니가 그때 짐 싸서 고모네 오지 않았으면 나도 지금쯤 시골에서 맨날 농사나 짓고 있었을 거다. 그래도 농사보다야 공장이 났다. 내 또래 애들도 많고 야간 학교라도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방이 좀 따시나?”     


  고모가 갑자기 방문을 열었다.      


  “고모!”     


  순간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깜짝이야, 가시나! 와?”

  “아니예! 연탄불이 좀 이상해서예!”     


  고모가 방문을 열다 말고 아궁이 쪽으로 왔다. 후- 다행이다. 두 번 다시는 반장한테 빵 같은 거 안 받아 올 거다. 아니 앞으로 받아도 나 혼자 다 먹고 집에 안 들고 올 거다. 정말 힘들다. 빵 한 봉지 서너 개 밖에 안 들었는데 고모네 식구까지 먹을 것도 안 되고. 사 주려면 봉지가 터지게 사 주든지. 좀생이 반장 놈.     


  고모는 찬장에서 돼지고기 볶음을 한 접시 꺼냈다.     


  “이거 언니 오면 곤로에 후라이 팬 놓고 살짝 덖어서 묵어라! 안 타구로!”

  “잘 묵으께요, 고모.”

  “니도 언니 닮아가나? 그런 말은 넘 한테나 해라!”     


  고모가 문을 열고 나갔다. 긴 홈드레스가 더 길어 보였다. 아버지 말로 고모는 젊었을 때 우리 군에서 제일 예뻤다고 했다. 아버지 형제 오 남매 중에 고모가 막내라 더 귀했다고도 했다. 지금은 몸도 불고 애를 셋이나 낳아서 건강도 안 좋다. 그래도 내 눈에는 이 동네 아줌마들 중에 우리 고모가 제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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