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장 <작가의 여정> 을 다녀오며
가끔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만약에 말이지’로 꼬리가 꼬리를 무는 생각. '만약에 내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된다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내 방은 어떡하지?' '나 그렇게 지저분하게 살던 사람 아니라고, 원래는 잘 정리하고 다니는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정신없이 나가느라 방이 돼지우리가 된 거라고 변명도 못 할 텐데 어쩌나?'류의 생각들.
'이미 세상에 내가 없는데 청소 안 한 방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이래서 내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집에 돌아와야 한다'며 '무탈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곤 한다.
뜬구름처럼 흘러왔던 생각들은 의외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만약에'로 시작했던 '내가 떠난 뒤의 세상'을 상상한 이후, 내 의식 속엔 '언젠가 발견될 나의 방, 나의 흔적을 미리미리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정제되지 않은 것은 드러내지 않기로 했기에 속에서 삭아버린 말과 행동들. 그 말과 행동들의 무덤이자 날 것 그대로 쏟아낸 감정들이 묻어있는 일기장은 언젠가 태워지고 버려져야 할 존재다. 누가 발견 못하게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마지막 임무인 운명.
그래서였던가. 요동치던 감정이 제자리를 찾고 더 이상 별일이 별 게 아니게 된 때가 오면, 마지막 의식을 마쳐야만 감정 찌꺼기를 한 점도 남김없이 털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그간 적어둔 기록들을 조각내어 흩뿌렸다. 내가 주기적으로 일기장을 찢어버린 이유다.
강박적으로 기록을 지우는 나에게 기록하는 삶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바라본 세상을 기록하고 해석하며 소통하는 사람들. 나의 시선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했고 부러웠다.
나는 내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공감을 얻을지 반감을 살지 모를 불완전한 나의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썼던 글을 지우고 버리는 날이 늘어날수록 솔직하게 썼던 글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운명처럼 발견한 '작가의 여정'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는 글을 쓰고 남겨보고 싶다는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줬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가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면 쓰고 싶은 글을 솔직하게 쓰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어 솔깃했다.
순간 떠오른 단상을 기록하는 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고, 설령 미래의 내가 글을 쓰던 나와 다른 의견을 갖게 되더라도 문제 될 일은 아니지 않겠냐는 생각을 시작으로 꼬리물기 버튼이 또 눌렸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는 말, 만약에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게 만드는 질문,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는 브런치 작가들이 움츠러들지 말라고 전하는 따스한 응원에 매료돼서인지, 전시장을 나올 때쯤 이미 보들보들해진 내 마음엔 '그러면 나도 기록을 남겨볼까? 오늘부터 쓰고 싶은 글을 써볼까?'라는 용기가 싹을 틔웠다. '만약에'로 생성된 뜬구름은 참 강력한 녀석이다.
이렇게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이 마음이 쪼그라들지 않고 오래도록 세상을 걸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