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갔던 ‘위닝멘탈리티’를 찾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맞붙은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어느 팀이든 지면 강등권 코앞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기에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그나마 토트넘은 악재에서 벗어났다. 60시간 텀으로 매주 목, 일, 목, 일 치러지던 일정은 간만에 일주일 휴식이 생겼다. 덕분에 팀은 체력 보충할 시간을 얻었고, 부상당했던 주전 선수들이 대거 복귀하며 전술 훈련도 재개할 수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듯 몰려오는 경기를 치러내기 급급했는데,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있다.
사연 없는 집은 없다지. 우리만큼 힘든 데가 있을까 했는데 고통 받고 있는 팀이 또 있었다. 처음으로 EPL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 곳, 나에게,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에게는 박지성의 팀인 맨유.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의 부상. 안 그래도 부상병동이 되어버린 선수단은 뛸 자원이 부족한데, 지난주 훈련 중 부상 선수가 또 발생했다. 맨유 교체 명단 평균 나이 19.3세. 벤치 멤버 9명 중 8명은 1군에서 한번도 뛰어 본 적 없는 유망주라 평점을 낼 데이터가 없는 웃픈 현실. 얼마나 답답한 상황일지 알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였다.
꽤 오랜 시간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맨유는 결국 리그 도중 텐 하흐 감독을 경질했고 임시 감독 체제를 거쳐 지금의 아모림 감독을 선임했다. 전술 싸움인 축구에서 감독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 없겠지만, 감독 교체 뒤에도 맨유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주목할 점은 팀이 부진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크지 않다는 점. 리그 중반에 투입돼 위기의 맨유를 끌고 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상황이다 보니, 아모림 감독의 시간은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한 선수 영입과 팀 재정비가 가능한 프리시즌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더 비판받고 있는 것은 선수들의 경기력이다.
(잠깐 샛길로 새보자면, 개인적으로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욕하는 걸 싫어한다. ‘그럼 너가 뛰어보던가!’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기 때문에,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응원해도 모자랄 선수들을 비난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끔 감정 쓰레기통마냥 선수들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일 러닝 10km씩 뛰어보고도 저런 말이 나올까 싶긴 하다. 축구는 뛰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스프린트도 해야 되고,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몸싸움도 이겨내며 공을 끌고 나아가야 한다.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전술에 맞춘 약속된 플레이도 펼쳐야 한다.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처럼 보이는 선수를 그날의 욕받이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실책의 원인을 따지다보면 한 명 만의 잘못이 아닐 때가 많다. 돈 받고 하는 일 아니냐는 식의 반문은 논쟁할 가치가 없다. 잠깐 상상을 해봤는데 커뮤니티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다. 유치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너가 준 돈으로 연봉 받는 거 아니고요. 님이 구단주임?’으로 긁기를 시전할 것 같다. ㅋㅋ)
공격수의 골 결정력 문제에 맨유 팬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 열혈 팬으로 맨유의 경기를 지켜본 건 아니기 때문에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토트넘과의 지난 경기를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팬들이 화가 날 것 같긴 했다. 아모림 감독이 짜온 변형된 전술이 구현될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골을 넣을 기회가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뻥뻥 뚫린 토트넘 수비 공간을 넘어 골대 앞까지 도착했음에도 공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 맨유의 마지막 발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때마침, 중계진이 포착한 한 장면. 아모림 감독이 깍지 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그 뒤에 줄줄이 앉아있는 19.3세 유망주들. 감독은 이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이 묻어나는 클로즈업처럼 보였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전술을 입혀 경기를 준비해 줄 수는 있지만, 마지막에 공중으로 차버리는 공은 감독 역량 밖 일이다. 맨유가 골을 넣지 못한 이유에 댈 수 있는 핑계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말한 팀의 악재들, 거기에 순간적인 판단 실수와 개인 컨디션 등 이유는 많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선수는, 그것도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한다.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한다’는 말이 나에게 박힌 건 ‘나의 필드에서 나는 골을 넣는 공격수로 살고 있는가’ 반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오지 않아서, 여건이 맞지 않아서라며 남 탓, 사회 탓만 하는 것은 아닌지, 정작 나는 전술을 이해하려 노력조차 안 하고, 골을 넣지도 못한 채 경기장 언저리를 설렁설렁 걷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게 됐다. 어쩌면 목표를 잊고 허송세월하는 나의 옆에는, 그동안 온갖 지원을 쏟아부었음에도 달라지지 않는 나를 보며, 기도 말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고개를 숙인 내 편인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투영돼서인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고개 숙인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감독이 골까지 넣어줄 수는 없다. 나의 리그에서 펼쳐진 경기에 뛰어야 할 선수는 바로 나. 교체 카드는 없다. 이기든 지든 풀타임으로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석연찮은 판정이나 오심도 없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경기 결과이기에 승패로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러니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치른 경기 결과를 바꿀 수도 없고, 다가올 일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체력 훈련, 전술 훈련에 집중해서, 경기장에 섰을 때는 전력을 다해 골망을 뚫어야 한다. 이렇게 이기는 법을 찾아 자신감을 얻는다면, 단계 단계 목표를 이뤄내며 성취감을 쌓아간다면 ‘내 인생의 리그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은 내가 될 수 있다.
집 나갔던 ‘위닝멘탈리티’를 되찾게 해준 경기. 이렇게 또 인생 경기 한 편을 적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