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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이 Oct 10. 2024

《애국심 없이 축구를 볼 수 있을까》

나의 '유토피아' 축구가 흔들리고 있다. 선수도 아닌 외부 세력 때문에

 퇴사와 동시에 뒤집어진 밤낮. 모두가 잠든 새벽 네 시. 나는 하염없이 축구만 봤다. TV 못 보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것 마냥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생중계로 봤다.     


 그렇게까지 축구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직전에 있었던 아시안컵 경기는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는 데도 힘이 빠져, 2-0이 되자마자 TV를 꺼버리고 잠을 잤다. 인상 좋아 보이던 클린스만 전 감독의 만행에 지금까지도 열 뻗치는 순간이 찾아올 줄을 그때는 상상도 못했고, 앞으로 축구는 월드컵만 챙겨봐야겠다 생각하며 멍하게 출근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필 다니던 직장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이미 회사 생활에 마음이 떴기에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였다. 퇴사하면 장기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하라는 덕담을 듣는 것도 기가 빨릴 만큼 사회생활에 필요한 나의 에너지는 제로에 수렴하고 있었다.     


 누구도 괴롭히는 사람 없고 눈치 볼 사람 없는 곳, 5년 동안 한 부서에 있다 보니 누구도 업무 문제로 지적은커녕 예스맨마냥 다 좋은 의견이라고 통과시켜 주는 입지, 일 년 단위로 반복되던 사업이라 바쁠 때 바짝 일하면 한 해를 설렁설렁 다녀도 문제 될 게 없는 업무. 그 단조로움과 친절함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나만 정체되어 있는 느낌. 성장을 멈춘 내가 여기서 또 계약을 연장하면 내 인생의 끝은 정신병원일 것 같은 암담함. 매일 아침 지하철 출구에서 나올 때마다 죽어있는 상태의 내가 떠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출근했다.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인복은 있었기에, 동료, 상사, 타부서로 떠난 사람들과 근 한 달간 점심 저녁 약속을 꽉 채워 퇴사 파티와 마지막 인사를 했고, 올해 2월 나는 회사를 나왔다. 바로 일본행 티켓을 끊어 삿포로에서 나홀로 5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퇴사 직후 여행을 갈 의욕은 나지 않았다. 출퇴근만 하며 방치해둔 집 안이 제일 좋은 상태. 휴대폰 알람을 모두 끄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그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책을 보고 산책을 하고 밥도 먹고 싶은 시간 아무 때나 먹는 하루. 당장 일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무너지는 생활 패턴 속에서 ‘하루 한 시간 운동, 한 시간 영어 공부하기’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며 나를 방목했다.     


 세상 온갖 뉴스를 챙겨 봐도 시간이 남던 시절, 정말 화가 난 건지, 직장생활로 쌓인 여독을 뿜어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클린스만 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과정에 나는 분노했고, 전력강화위원회의 감독 선임 뉴스를 꾸준히 모니터링했다. 어느새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축구로 가득찼다.     



 경기의 주인공은 필드를 직접 뛰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소위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는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어벤져스 팀이라고 해도 각 포지션에 맞게 인재를 두고 상대 팀을 공략하는 전술이 팀스포츠를 이끄는 핵심이자, 멘탈 싸움 기세 싸움으로 승패를 뒤집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메시 11명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불가능하단 말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요르단한테도 지나 싶어 김이 샜던 아시안컵이 실은 전술도 방향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던 감독 밑에서 그나마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며 끌고 올라간 결과였음을 뒤늦게야 알게 된 미안함.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표류하는 한국축구의 중심을 잡고 황금세대라는 현재 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전략가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2002년의 감동을 또 한번 느끼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뒤섞여서였는지, 제시마시, 귀네슈, 아기레 등 감독 후보와의 협상 실패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국내파 감독으로, 이 일에 진심이던 사람들의 노력은 애초에 고려할 생각도 없는 헛수고였던 것으로 만들며 결론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하던 곳에서도 자문회의치고 실속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매번 다과를 차리고 회의수당을 줘봤자 논의 결과는 추후 검토, 원점 재검토로 끝날 게 뻔했기 때문에 회의와 업무는 아무 관련성이 없는 시간 낭비라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난 내가 있던 곳만 헛바퀴 도는 곳인 줄 알았지, 온 국민의 눈이 주목되는 곳마저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일을 처리할 줄은 진짜 몰랐다. 나름 사업 담당자로서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만들며 사람들의 피드백을 기대했던 내가 오버랩되어서였나. 제시마시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위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올해 사업 계획서도 정독한 적 없나 싶을 정도로 자기 연구 분야 얘기나 반복하며 회의 수당을 타가던 사람들. ‘이미 이 사업은 효력을 다했구나, 이걸 잡고 있어봤자 진심으로 일하고 감정을 쏟는 나만 바보가 되겠구나’ 싶어 다시는 이 조직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순간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분명 좋았던 일, 성취감을 느끼며 신나게 일했던 시간도 많았는데, 어쩌다 맡은 사업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감정을 섞지 않는 회사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나.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무기력함을 버티던 시간들이 괜찮은 게 아니었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사업을 운영하는 목적은 지원 대상의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여야 한다. 부서의 예산이 줄어들면 조직 내 입지가 약해질까 봐 사업 규모를 줄이지도 못하고 사업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숫자로 정리되어야 하니 현실과는 동떨어진 성과 내역을 쥐어 짜내면서, 누구를 위한 보고서인지 내가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나는 내 사업에서 정을 뗐다. 노력해봤자 바뀔 게 없다는 무기력함이 반복되면 고칠 생각도 못 하게 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야지, 퇴사는 지능 순’이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질 때쯤엔, ‘밖은 지옥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 없다’는 조언 아닌 조언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기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뛰쳐나온 건데, 떠나본 적도 없으면서 구렁텅이로 같이 끌어내리려는 수작이냐는 반발심만 생길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하염없이 축구만 보던 지난겨울. 11명의 각 팀 선수가 자신을 증명해 내는 경기장이 내게는 ‘유토피아’로 보였다. 승점을 따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감독의 전술에 따라 약속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 골키퍼로부터 시작되는 공격을 기어이 골로 만들어내는 집념을 보고 있자면, ‘이게 팀이지, 이게 프로지’ 싶어 감탄했고, 원 팀으로 매 경기를 풀어나가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얻곤 했다. 하늘이 주신 능력을 갈고닦아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뛰는 삶이라니. 무기력했던 내게 있어 축구는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로 나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의 유토피아였던 축구가 흔들리고 있다. 선수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 때문에. 선수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축구시장의 주인공인마냥 축구경기와 선수들을 소모하고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들을 응원할수록 덕을 보는 주체는 행정이라는 생각이 덜컥 들자, 축구로 솟아난 애국심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행정 따위가 인류애를 박살 내고 있다.     


 선수들은 잘못이 없으니 경기는 보고 응원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의욕이 생기질 않는 게 문제. 나는 누구를 위해 대한민국을 외치고 경기를 응원해야 하는가. 우리 팀이라는 말 자체가 허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나. 국회 현안질의 이후 그렇게 찾아보던 뉴스도 끊고 축구와 거리를 두고 있는 요즘, 그간 과하게 활활 불타올랐던 축구에 대한 관심이 소강된 상태다. 태극마크를 단다는 이유 하나로 원팀이 되길 바라고 응원하던 시간들, 유일하게 한국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던 시간이 축구 볼 때였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냉소적인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오늘 저녁 TV를 틀 것인가. 이렇게 욕하고 한풀이하고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생중계를 볼 것인가. 선수들을 보면서도 무덤덤할지, 욕하던 건 싹 다 있고 그래도 우리 팀이라고 응원하고 있을지는 나도 밤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     



 아놔...축구 경기 하나 보는 게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 해야 되는 일인가...열받네...-_-“     


+ 덧)

글을 써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은 오후.

분노의 타자치기로 토해낸 글을 다시 읽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체 정화를 거친 기분이랄까.


이기긴 해야겠고 월드컵은 나가야겠고.

일단은 응원한다. 국감 때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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