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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이 Oct 24. 2024

《축구는 ‘낭만’이야》

넥슨 아이콘매치. 웃긴 건 줄 알았는데 감동받아 울컥했네ㅠ_ㅠ

듣도보도 못한 축구 이벤트가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다.

‘공격수 11명 대 수비수 11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 신박한 발상을 6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현실로 구현시킨 역대급 경기.



 앙리, 드록바, 아자르, 퍼디난드, 비디치, 반데사르 등등등

말 그대로 레전드라 불리는 세계적인 선수들을 한날한시에 서울로 불러들인 것도 모자라

레전드 공격수 11명 대 레전드 수비수 11명으로 팀을 구성해서 경기를 진행시켰다.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해야 이길 수 있는 팀스포츠에서

공격수로만, 수비수로만 구성된 팀이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손흥민 11명’ 대 ‘김민재 11명’으로 구성된 팀이

풀타임 경기를 치른 셈이다.     


 처음 이 발상을 떠올린 사람부터

결재라인을 다 통과시키고 이벤트를 진행한

넥슨과 슛포러브 관계자들을

리스펙한다.

‘이게 된다고?’를 ‘진짜 되네!’로 바꾼 사람들. 인정할 수밖에.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자칫하면 무모한 경기, 그냥 웃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는 행사는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머나먼 한국에서 EPL, 라리가 경기를 보며

축구를 사랑해 온 팬들에게 선수들은 놀랐고,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동창회, 세리에A 리그 향우회를 연 것 마냥

현역시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을 경기장에서 다시 만난 선수들은

진심을 다해 뛰었다.


 원래 공격팀 감독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섭외됐던 티에르 앙리는 플레이어로서 경기장에 나왔고,

나이 50을 바라보는 카를레스 푸욜은 마치 챔스 결승전을 뛰듯이 온몸을 날리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레전드 선수들의 숙성된 플레이 앞에서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은 힘을 못썼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스피드, 현란한 기술과는 또 다른 경외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 순간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영원한 캡틴 박지성 선수의 필드 입성.

무릎에 연골이 남아나질 않아

축구는 물론이고, 자전거를 타거나 다른 운동을 하기도 힘든 상태임을

박지성 선수의 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공격팀 코치로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 자체가 반가웠고 기뻤다.


사실 박지성 선수가 경기장에서 뛸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지도 않고 있었다.

박지성 선수가 경기를 뛴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 깜짝 선발에 제대로 허를 찔렸다.



 교체선수로 들어오기 위해 서있는 박지성 선수를 보니

2002년 월드컵부터 지금까지

기억 속에 잠들어있던 명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맨유 동료들과 레전드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박지성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올 때부터 소름이 돋았는데,

페널티킥 찬스를 얻은 셰우첸코 선수가 박지성 선수에게 기회를 양보는 모습,

PK골을 넣은 박지성 선수와

‘위송빠레’를 상암에서 목놓아 외치는 6만 명 관중들의 함성,

그 순간 화면에 잡힌 팬의 눈물과

그 팬이 입고 있던 교토상가 유니폼은

울컥한 팬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이미 낭만 한도치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교토퍼플상가는

박지성 선수의 프로데뷔팀이자

행여나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받아줄 테니 언젠가는 꼭 돌아오라며

박지성 선수를 레전드로 대우하는 제이리그팀이라는 점에서

카메라맨의 클로즈업은

걸작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교토상가 유니폼을 입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음을

경기 시작 전부터 파악한 PD는

행사 진행 내내 박지성 선수의 찐팬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팬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무언가’가 나올 것이며,

이 행사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임을 직감한 PD와 카메라맨의 프로의식에 감탄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선수들을 오랜만에 본다는 반가운 마음과

공격수 11명 대 수비수 11명이라는 신박한 이벤트를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있던 나에게

이 묵직한 여운은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경기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기록을 남겨두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축구를 사랑한 선수들,

선수들을 사랑한 팬들,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해 행사를 준비한 축덕 관계자들.


진심을 다하는 마음이 모였을 때 발휘하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며

진정성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을 또 한 번 느낀 계기가 됐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이벤트 매치.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 레전드 게임은

퍽퍽했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낭만 그 자체인 축구.

이래서 내가 축구 못 끊지.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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