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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나쁜감정은 쓰고 버려요: 잊혀지고싶다, 소멸하고싶다는 생각이 몰려올 때

by 뮤슈만

‘소멸하고 싶다.’

나를 기억하는 가족들만 아니라면, 나에 대한 기억, 나의 흔적도 함께 사라진다면, 그냥 이 상태로 소멸하고 싶었다.

한 번도 꿈꾼 적 없던 직장을 오가며, 나다운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있던 적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나는 잊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나를 찾아와 쿡쿡 찔러댔다. 사라진다는 생각에 빠지다 보면 감정선이 무뎌지고 그러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는 평정심에 다다르는데, 불교의 무소유나 명상으로 얻는 평온함과는 반대 축에 있는 무(無)의 상태에 들어가곤 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며 살고 있지 못해서 잊혀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는 나는 어차피 허상이라 생각했다.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장례식에서 고인과의 소중한 기억을 회상하는 추도사를 지인들이 공유하곤 하는데, 그 장면이 나에게는 참 이질적이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누군가 내 옆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겠다. 좁디좁은 인간관계에서 내가 제일 오래 살다가 모두를 떠나보낸 뒤 나는 홀로 떠날 것 같았다. 한창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는 나중에 홀로 떠나는 것과 지금 당장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같은 것처럼 보였다. 타인이 꾸려가는 인생, 그들의 추억은 고려하지 못한 생각임을 지금은 안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젊음은 짧은데 인생은 너무 긴 것 같았다. 그래서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밤, 오래 지켜보던 유튜버가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전파하던 할아버지였다고 회상하며 유튜버는 고마웠고 사랑했던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 몇 개를 들려줬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쾌차하길 기원하던 응원의 메시지와 댓글에 감사함을 표했고, 장례식장에 수백명의 지인이 찾아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직접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응원과 추모를 받는 세상이었다. 자신의 긍정 에너지를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도 랜선으로 전파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 모습과 소멸을 꿈꾸던 옛날의 내모습이 대비됐다. 잊혀짐을 바라는 삶이었다니. 얼마나 내가 흔들리는 지반에서 버티고 있었는지 명확해졌다.

스치고 만나게 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좀 더 친절한 태도를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까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기분 상할 상황, 나쁜 기억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를 갖추며 내 삶에 집중하며 산다면, 소멸하고 싶다 따위의 나쁜 감정이 찾아와도 그때는 휩쓸리지 않고 나의 일상에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뭐가 그리 자신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막연한 감이지만, 주어진 나의 삶에 감사하며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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