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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8. 2024

독고다이? 내가 대체 뭐라고?

가수 이효리 씨의 국민대 졸업식 축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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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덴마크 알보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벤 브링크만이 쓴《절제의 기술》(2020, 다산초당)을 읽다가 ‘얀테의 법칙’이라는 말을 처음 만났다. 덴마크를 포함하여 북유럽인 대부분이 일상에서 생활 규범처럼 자주 활용한다는 이 표현은, 브링크만의 압축적인 설명을 빌리면 ‘내가 대체 뭐라고?’를 바탕으로 하는 태도나 생각을 가리킨다.


얀테는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가 풍자소설 <도망자>(1933)에서 묘사한 허구의 작은 덴마크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북유럽인들 전체에 두루 통용되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얀테라는 말로 표현되는 태도가 이곳에 존재했던 것 같다.


인터넷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세칙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더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로 수렴된다고 한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2


문득 얀테의 법칙을 떠올린 건 며칠 전 가수 이효리 씨가 자신의 모교인 국민대학교 졸업식장에서 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인생은 독고다이. 마음 가는 대로 자신만 믿고 가라.”


언론에서는 이효리다운 파격 축사라며 찬사 일색이었다. 솔직히 나는 저 말을 듣고 우울하고 답답했다. 이효리 씨가 어떤 의도로 저 말을 던졌을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실제 독고다이처럼 사는 인생이 과연 세상에 있나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세상에 독고다이는 없다. 독고다이의 또 다른 유의어라고 할 수 있는 자수성가조차 사회, 타인, 가족이 배경과 토대처럼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자기 주변에 독고다이와 자수성가를 자랑스레 외치는 이들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당신이 떠올린 이가, 자기 주변과 약자를 억압하거나 그들의 헌신과 돌봄을 알게 모르게 착취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이른바 성공을 일군 사람이 아니기를 빈다.


아쉽지만 내게는 그런 독고다이주의자나 자수성가인이 없다. 나는 진정한 독고다이나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기대는 것은 그 자신의 근면과 성실과 진심일 것이며, 그러한 근면과 성실과 진심을 진정으로 알아 주는 주변 사람과 사회의 호응과 인정일 터. 그리고 이들은 독고다이나 자수성가를 자랑하지 않는다.


4


자신을 온전히 믿되, ‘내가 대체 뭐라고?’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더 의존하면 어떨까. 전도양양한 후배들을 마음껏 추어올리고 싶었을 이효리 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대다수의 평범한 후배들이 느꼈을 막막함을 떠올리니 씁쓸하다.


* 배경 사진은 <도망자>의 작가 악셀 산데모세이다.(사진 출처: https://no.wikipedia.org/wiki/Aksel_Sandem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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