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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l 18. 2024

“지능이 높은 사람은 좋은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가나자와 사토시의 《지능의 역설: 우리가 몰랐던 지능의 사생활》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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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높은 지능을 갖고 태어나기를 바라고, 할 수만 있다면 자녀의 지능을 높이는 일에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교사들은 지능이 학생들의 학업이나 학교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 관계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철수는 머리는 나쁘지만 착하다, 영희는 머리가 좋아 공부를 별로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온다 등등. 당신이 회사 대표라면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 아무래도 지능이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성과를 잘 내서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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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자로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가나자와 사토시는 이 책에서 지능에 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펀치를 날린다. 저자에 따르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좋은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좋은 남편이나 부인이 되지 못하고, 좋은 부모도 되지 못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 특히 지능이 높은 여성은 부모로서는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 그런 여성은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식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생각도 많이 한다.


뇌피셜에 기댄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저자가 지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간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활용한 데이터들(미국 종합 사회 조사; GSS, 청소년-성인 건강 장기 연구; Add Health, 영국 국립 아동 발달 연구; NCDS)은 미국과 영국에서 생산된 양질의 대규모 샘플들이다. GSS는 다양한 사회 의식과 사회 경향을 아는 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정보원이라고 한다. Add Health는 미국 전역에서 추출한 2만여 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계시 연구물로, NCDS는 영국의 특정 응답자 그룹을 출생 시부터 반세기 이상 추적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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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강력한 메시지가 향하는 표적은 “지능=인간의 가치”라고 하는 방정식이다. 저자는 지능에 대한 세상의 상식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점을 바탕으로, 비록 지능이 높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일들을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능이 높은 사람이 잘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는 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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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전제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지능이 긍정적인 형질이지만, 신장이나 체중처럼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 저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관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외모가 아름답고 키가 크고 건강한 것을 선호하지만, 그런 조건이 가치가 있으므로 모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능에 대해서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가치가 있으며, 혹은 이와 반대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가치가 있으므로 지능 또한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저자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존재는 실제로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진보적이고 신을 믿지 않는 것이 보수적이고 신을 믿는 것보다 훌륭한 것일까?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저녁형 인간이 되기 쉽다.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훌륭한 것일까?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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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인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지능이 높은 사람이 잘하는 일은 인류의 진화 역사 중에서 비교적 새로운 것들에 속한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이다. 우리 조상들이 당연한 것처럼 했던 일들, 가령 배우자를 찾아 짝이 되거나 부모가 되거나 친구를 만드는 일 등은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잘하지 못한다. 저자의 좀 더 자극적인(?) 말을 빌리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식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한다.”(315쪽)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는 없었던, 진화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기호와 가치관(즉 조상들과는 다른 기호 및 가치관)을 갖기 쉽다. 그러나 조상들의 환경에도 있었던, 진화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익숙한 기호와 가치관(즉 조상들과 같은 기호 및 가치관)을 가질지는 일반 지능과 관계가 없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진보적인 정치사상을 가지고 무신론자가 되기 쉽다. 지능이 높은 남성(여성은 아님)일수록 성적 배타성(단혼제 아래 서로 맹세한 한 사람의 상대와만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중요시한다.(한편으로는 지능이 높은 남성일수록 불륜을 저지르기도 쉽다.). 아침형 인간보다 저녁형 인간 쪽이 지능이 높다.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 쪽이 지능이 높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클래식 같은 악기 중심의 음악을 선호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약물을 사용한다. 지능이 높은 여성(남성은 아님)일수록 자식의 수가 적으며 자식이 없는 인생을 선택한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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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진화생물학자라는 점에서 독자에게는 특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가?’, 즉 기호와 가치관 문제도 중요하게 취급된다. 지능이 기호와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 지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각각 원하는 기호와 가치관과, 이때 차이가 생기는 원인 등을 함께 살핀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진화생물학의 차원에서 말해 보면 사람이라는 종이 진화 과정에서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에 달려 있다. 지능의 역설은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진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기호와 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지능이 높을수록 생물학적 설계를 외면하고 진화의 과정에서 뇌에 부여된 제약과 한계를 벗어나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생물학적으로 어리석은 기호와 가치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 지능의 역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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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에 성공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인간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디자인되었다. 저자는 그것이 생명의 의미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끝맺었다. 죄라는 단어가 자극적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공동체 해체’라는 말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천천히 곱어 볼 만하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로 자식을 가지지 않는 일은 자연에 대한 가장 큰 죄이다. 그런 까닭에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자연에 대해 가장 큰 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는 궁극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318쪽)


□ 가나자와 사토시(2020), 《지능의 역설: 우리가 몰랐던 지능의 사생활》, 데이원, 1만 4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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