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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May 13. 2023

딸아, 너는 어른이 되지 말거라.

그냥 멋진 성인으로 자라 줄래?

딸아, 난 이제 알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았다. 어른이 되는 가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은 사실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아침에 깨워주던 것도

누군가에 의해 차려져 있던 밥상도

오늘 입을 수 있었던 누군가가 세탁한 깨끗한 옷도

굴러다니던 먼지공이 사라졌던 것도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집이 있던 것도


그때는 나도 벗어나고 싶었단다.


나 혼자 아침에 일어날 수 있기에

밥도 스스로 차려서 먹을 수 있기에

세탁정도는 당연히 내가 할 수 있기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청소할 수 있기에

하루를 마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쉬고 싶었기에


그렇게 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자라 성인이 되는 것이었단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혹시 누군가가

아침에 깨워주고

밥상을 차려주고

옷도 빨아주고

청소도 해 주고

하루를 마치고 그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어린이가 나이를 먹은 거란다.


나이가 많다고 스스로 성인이라 어른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지도 않으니 혹 네가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너도 그리 놀라지 말거라.  아무리 그 사람이 괜찮아 보여도 속지 말고 그냥 조용히 피해라. 너 인생이 피곤해진단다.


난 알고 있지, 네가 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가 내 어릴 적 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는 것도.


나도 내 딸이 성인 되면 좋겠다.


알아서 일어나고

알아서 밥을 차려 먹고

옷도 스스로 세탁하고

방도 깨끗하게 관리하고

그럼 우리는 아주 멋진 하우스 셰어 메이트가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약속할게.

방세는 받지 않으마.


그리고 딸아. 나는 딸이 멋진 성인이 될 것이라고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인이 되는 것과 또 다른 것임을 알아두길 바란다.


딸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란다.


예를 들어


일어나지도 않아도 되는 시간에 일어나, 일어나기 싫어하며 화를 내는 어린이를 깨우며 아침부터 개빡칠수도 있으며

내가 먹지 않을 음식을 준비했는데 바쁘다며 손도 대지 않고 빨리 학교 데려 달라고 말하는 예의 바른 어린이를 만날 수도 있고

행여 내가 먹지 않을 음식을 같이 먹기라도 하는 날에는 식탁 위에 남겨진 내가 쓰지도 않은 그릇을 치우고 씻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미 결혼해 와이프가 있는데, 내 남자친구가 아닌 너의 남자친구가 생기기라도 하면,  

내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아닌데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하고,

그 아이가 어디가 멋있는지, 뭐가 좋은 지도 알아야 한단다.

혹 헤어질 때가 되면

방문너머로 들려오는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속상해하는 얼굴을 보며 같이 속상해해야 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정말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내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슬퍼해야 할 수도 있단다.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지.

궁금하지 않겠지만, 난 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세상에서 제일 슬펐단다!


또, 음…

할많하않!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니 난 내 딸이 이런 고통? 속에 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멋진 성인으로 자라 그렇게 멋지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단다.


그리고 행여 어른이 된다면 그때 우리 다시 만나 이 새끼 이야기도 하고 저 새끼 이야기도 하자.


그럼 나의 경험담을 마음껏 들려주마.

너에게만 들려주마

너는 나의 사랑하는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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